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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pr 23. 2021

열매가 닮은 명자꽃과 모과나무, 그 혼동에 대하여

목과木瓜, 목리木李, 명사榠樝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정원에 명자꽃이 활짝 피면, 너무 화사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해는 유난히도 일찍 4월이 되기 전에 벌써 피었다. 중국과 미얀마가 원산지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적으로 정원을 가꿀 때 심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 명자꽃 열매는 모과와 대단히 비슷한데, 크기만 길이 4~6cm로 모과보다 훨씬 작다. 모과와 명자꽃 열매 모양이 비슷한 데서 그 근연 관계를 알 수 있는데, 모과나무(Chaenomeles sinensis [Thouin] Koehne)와 산당화라고도 불리는 명자꽃(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은 모두 장미과 명자나무속(Chaenomeles)에 속한다. 원산지는 모두 중국 남부지방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 두 나무의 열매가 시경에 채록된 고대의 시 한편에 같이 나온다.


명자꽃, 2020.3.28 성남


投我以木瓜 내게 목과(木瓜)를 던져주기에

報之以瓊琚 아름다운 패옥으로 답례했네.

匪報也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永以為好也 길이길이 좋은 짝이 되자고.


投我以木桃 내게 목도(木桃)를 던져주기에

報之以瓊瑤 아름다운 옥으로 답례했네

匪報也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永以為好也 길이길이 좋은 짝이 되자고.


投我以木李 내게 목리(木李)를 던져주기에

報之以瓊玖 아름다운 구슬로 답례했네.

匪報也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永以為好也 길이길이 좋은 짝이 되자고.


모과나무 꽃, 2023.4.9 안동 풍산


<시경> 위풍衛風에 나오는 시 목과木瓜인데, 목도木桃와 목리木李도 등장한다. 나는 언젠가 이 고대의 서정시를 읽고 나서, 목과木瓜가 우리나라에서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심는 모과나무의 열매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동의보감>도 목과木瓜에 한글로 ‘모과’라고 훈을 달아 놓았으니 내 믿음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시의 목도木桃와 목리木李가 무슨 나무인 지 문헌을 살피다가 내 굳은 믿음이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현대 본초학本草學 서적들*에서 목과木瓜의 학명을 “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 즉 우리가 봄 꽃을 즐기는 ‘명자꽃’의 학명을 기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목리木李의 학명을 “Chaenomeles sinensis (Thouin) Koehne”으로 기재하고, 이명으로 명사榠樝, 목리木梨 등을 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서 ‘모과나무(Chaenomeles sinensis (Thouin) Koehne)’라고 부르는 것을 중국에서는 ‘명사榠樝 ‘라고 하고, 우리가 ‘명자꽃(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이라고 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목과木瓜’라고 하는 셈으로, 서로 반대로 부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참고로, 본초학 서적에서 시경의 목도木桃는 ‘Chaenomeles cathayensis (Hemsl.) Schneid (중국명자꽃)’으로 보고 있다.

모과, 2018.5.26 안동 임청각

일본에서 간행된 <식물의한자어원사전>에서도, 목과木瓜를 ‘Chaenomeles speciose (명자꽃)”, 명사榠樝를 ‘Chaenomeles sinensis (모과나무)’라고 설명하고 있어, 중국 본초학 서적과 일관된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또, 중국에서 ‘Chaenomeles sinensis (모과나무)’를 고대에는 명사榠樝라고 했지만, 지금은 목과木瓜라고 하고, ‘Chaenomeles speciosa (명자꽃)’을 옛날에는 목과木瓜라고 했다가 현대에는 첩경해당貼梗海棠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식물지>를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글의 맥락에 맞게 옮겨보면, <시경>의 목과木瓜는 <본초강목>에서 무楙라고도 했으며, <군방보>의 첩경해당貼梗海棠인데, 현대 중국명 추피목과皺皮木瓜로 ‘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 (명자꽃)’이다. <시경>의 목도木桃는 <군방보>의 목과해당木瓜海棠인데, 현대 중국명 모엽목과毛葉木瓜로 ‘Chaenomeles cathayensis (Hemsl.) Schneid. (중국명자꽃)’이다. <시경>의 목리木李는 <본초강목>의 명사榠楂로, 현대 중국명 목과木瓜로, ‘Chaenomeles sinensis (Thouin) Koehne (모과나무)’이다.  흥미로운 점은 ‘명자꽃’, ‘중국명자꽃’ ‘모과나무’의 현대 중국명에 모두 ‘목과木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이 점은 아마도 목과가 모과나 명자꽃 열매 등 명자나무속의 열매를 총칭하는 단어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명자꽃 열매, 2017.7.9 성남

이제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자. <훈몽자회>에 “무楙 모괏무 俗呼木瓜(세칭 목과)”, “榠명쟛명”, “樝 명쟛쟈”가 나온다. 여기에서 명사榠樝의 16세기 발음을 ‘명쟈’임을 알 수 있고, 모과를 목과木瓜와 무楙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동의보감탕액편>에는, 목과木瓜를 ‘모과’, 명사榠樝를 ‘명쟈”로 훈을 달았다. 그리고 명사榠樝에 대해, “그 모양이 목과木瓜와 아주 비슷하고 차이가 적으므로, 구분하자면 꼭지 사이를 봐야 하는데, 젖꼭지와 비슷하게 꼭지가 겹으로 되어 있는 것이 목과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명자이다. 효능은 목과와 대동소이하다.”**라고 했다. 이러한 설명은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본초강목>이나 기타 중국의 본초학 문헌의 설명과 일치다.


<물명고>는 ‘목과木瓜’와 ‘모楙’를 ‘모과’로 설명했고, <광재물보>는 “목과木瓜는, 잎이 광택이 나고 두텁다. 열매는 작은 참외 같은데 꽃이 떨어진 흔적이 있다. 진액이 많고 맛이질박하지 않은 것이다. 맛이 질박한 것은 명사榠樝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도 본초강목 등 중국 본초학 서적을 인용한 것이다. 명사榠樝에 대해서는, <물명고>에서 “목과와 비슷하지만 겹꼭지가 없다. 혹자는 목과보다 작다고 하고 혹자는 크다고 한다. ‘사금’이다.”로, <광재물보>는 “사금. 그 모양이 목과木瓜와 아주 비슷한데 크고 황색이다. 꼭지에 겹 꼭지가 없는 것이다”****로 설명했다. 그리고 <물명고>와 <광재물보> 공히, “목도木桃는 사자樝子”로 “목리木李는 명사榠樝”라고 설명하고 있다.


(좌) 모과나무 꽃, 2023.4.9 안동 풍산, (우) 명자꽃, 2020.4.25 성남 - 겹꼭지(重蒂)가 화경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할까?


이러한 조선시대 문헌의 내용은 대체로 중국 본초학 문헌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중국과 동일한 약재와 나무를 설명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본초강목>에서 목과木瓜와 명사榠楂의 특징을 더 살펴보면, 목과木瓜는 작은 참외(小瓜) 크기에, 꽃이 방을 만들어 열매를 맺는데 열매 모양은 하늘타리(栝樓) 같고, 봄 느즈막히 심홍색 꽃이 피며, 꼭지 사이를 보면 겹꼭지가 있고, 꽃이 진 흔적(鼻)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에 반해 명사榠楂는 목과에 비해 크고 황색이며 겹꼭지가 없다. 이러한 설명에서 유의할 점은 명자 열매가 모과 열매보다 크다고 한 점이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명자꽃 열매는 <본초강목>이나 <광재물보> 설명과 달리, 모과보다 훨씬 작다. 이로써, 중국원산인 모과나무와 명자꽃을 수입해오면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명사榠樝를 속칭 ‘모과나무’로, 목과木瓜를 속칭 ‘명자꽃’으로 부르게 되면서 굳어진 듯 하다.


노랑하늘타리, 2019.10.6 보성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은 ‘Pseudocydonia sinensis Schneider’을 ‘모과’로, ‘Chaenomeles trichogyna Nakai’을 ‘명자나무’로 정했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간에서 사용하는 이름과 문헌상 이름을 먼저 채택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추정해보면, 조선시대에 한약재로서 모과와 명자꽃 열매인 명자(榠樝)가 혼동되기도 했지만, ‘목과木瓜’는 ‘명자꽃’이 아니라 ‘모과’ 혹은 ‘모과나무’를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은 조선명 ‘모과나무’의 한자명으로 ‘목과木瓜’, ‘명사목榠樝木’, ‘목리木李’등을 들고 있다. 정태현 선생은 본초학 서적의 명사榠樝와 목리木李가 ‘모과’를 지칭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명자꽃’의 조선명을 ‘산당화’, 한자명으로도 ‘산당화山棠花’를 기재하고 있다.


아마도 현재 중국에서 명자나무속의 나무 대부분의 이름에 ‘목과木瓜’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고대 중국에서도 지방에 따라 ‘명자꽃’과 ‘모과나무’ 열매를 총칭해서 ‘목과’로 불렀을 개연성도 있다. 그리고 약재로는 목과木瓜와 명사榠樝 열매가 혼용되므로, 중국에서 먼저 들어온 나무에 편의상 ‘모과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했을 수도 있다. 이제 이 ‘명자꽃’과 ‘모과나무’사이의 혼동을 해소하기 위해 쓴 조금은 장황한 글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고전 번역서들을 살펴보면, ‘목과木瓜’는 한결같이 ‘모과’로, ‘목리木李’는 ‘오얏’ 혹은 그냥 ‘목리’로 번역하고 있고, ‘목도木桃’도 식물 종을 밝히지 않고 그냥 ‘목도’라고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고전에서 목과木瓜를 만나면, 그 출전이 <시경>이면 ‘명자꽃’으로, 그렇지 않으면 ‘모과나무’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고전에 나오는 ‘목리’와 ‘명사榠樝’도 ‘모과나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의 ‘명사榠樝’는 문맥에 따라 ‘명자꽃’을 가리킬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목도木桃’는 ‘중국명자꽃’일 것이다. 다시 위풍衛風의 시 ‘목과木瓜’ 첫 구절을 감상해보자.


投我以木瓜 내게 명자를 던져주기에

報之以瓊琚 아름다운 패옥으로 답례했네.

匪報也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永以為好也 길이길이 좋은 짝이 되자고.


이 시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시편이나 선물을 주고 받는 상황에서 수없이 인용한 구절이다. 이때 목과木瓜, 즉 명자꽃열매는 상대가 나에게 준 하찮은 선물을 말하는데, 이에 대해 귀중한 물건으로 보답하는 것은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주고 받으면서 유지되는 것 같다. 이 시는, 받은 것 보다 더 값진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좋은 관계 유지의 길임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끝 2020.4.4>


*<중약대사전>에서 목과木瓜의 학명을 Chaenomeles lagenaria (Loisel.) Koidz., 이명으로 貼梗海棠, 楙라고 했다. <중약채색도보>은 목과木瓜를 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 이명으로 첩경해당貼梗海棠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Chaenomeles lagenaria (Loisel.) Koidz.는 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 (명자꽃)의 동종이명이다. 우리나라의 현대 본초학자 신길구申佶求(~1972)도 <신씨본초학>에서 목과木瓜와 명사榠樝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설명하면서, 학명으로 Chaenomeles cathayensis (Hemsl.) Koehne (중국명자꽃)과 Cydonia sinensis Thouin (모과나무)를 기재하고 있다.

** 榠樝 … 其形酷類木瓜而差小 欲辨之看蔕間 別有重蔕如乳者爲木瓜 無此者爲榠樝 功用與木瓜大同小異. – 동의보감탕액편

*** 木瓜, 其葉光而厚 實如小瓜而有鼻 津潤 味不木者也 味木者乃榠樝也. – 광재물보

**** 榠樝, 一如木瓜以無重蒂 或云比木瓜小 或云比大, 사금 – 물명고. 榠樝, 사금, 其狀都似木瓜 而大而黃色 蔕間又無重蔕者也 – 광재물보

***** ‘Pseudocydonia sinensis Schneider’은 ‘Chaenomeles sinensis [Dum. Cours.] Koehne.’의 동종이명으로 ‘모과나무’이고, ‘Chaenomeles trichogyna Nakai’는 ‘Chaenomeles japonica [Thunb.] Lindl. ex Spach’의 동종이명으로 ‘풀명자’이다. 현재 조경사들은 명자꽃과 풀명자를 혼용해서 식재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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