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제주도에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울창한 삼나무 숲의 일부를 베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삼나무는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로, 임경빈의 <나무백과 5>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부산시 상수도 수원림을 조성할 때 삼나무가 편백과 함께 많이 심어진 후, 우리나라 남부 지방 곳곳에 자라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도입된 삼나무는 제주도에서 방풍림으로 많이 심어졌다고 하므로, 예의 도로 확장 공사에서 베어진 삼나무들도 그 중 일부일 것인데, 결국 여론이 나빠지면서 벌목은 중단되었다. 이 때 도입종 나무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도 논쟁 거리였는데, 보호 필요성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도입종과 자생종이 그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나무 중에 은행나무, 회화나무, 백송 등 도입종들이 많기 때문이다. 방풍림이나 도로 확장의 편익과 숲의 가치를 잘 고려하여 결정할 문제인데, 지금은 공사가 재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삼나무 숲, 2019.10.6 순천 - 단정하고 곧게 하늘을 향해 뻗은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숲을 그윽하게 만들고 있다.
영어로 Japanese red cedar로 불리는 삼나무(Cryptomeria japonica [Thunb. ex L. f.] D. Don)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수로 일본이 원산지이다. 이 삼나무의 일본명은 ‘스기’인데, 한자 삼杉을 쓰고 있어서 우리나라에 도입될 당시부터 ‘삼나무’로 불리었을 것이다. 삼杉은 중국과 우리 고전에 가끔 등장하는 글자이다. <당시식물도감>이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을 참조해보면, 중국 고전에서 삼杉 혹은 삼목杉木은 우리나라에서 넓은잎삼나무(Cunninghamia lanceolata)로 부르는 나무로 영명이 Chinese fir이다. 이 나무도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근래에 조경수로 도입된 나무이다. 즉, 삼나무나 넓은잎삼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은 나무이고, 조선시대까지는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나무라서 우리 고전에서 삼杉이 무슨 나무인지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이제 우리 선조들이 삼杉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아본다.
우선, 삼杉은 우리 옛말의 보고인 <훈몽자회>에는 나오지 않는다. <전운옥편>에는 “杉삼 나무이름이다. 소나무 비슷하고 선재船材로 쓰인다”라고 설명했다. 유희의 <물명고>에는 ‘익가’, <광재물보>에는 ‘익가나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1800년대 당시에는, 우리나라 금강산 이북의 높은 산지에서 자라는 ‘잎갈나무 (Larix gmelinii [Rupr.] Kuzen.)’를 삼杉으로 이해한 흔적이 보인다. 정약용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아언각비>에서 이 글자를 다음과 같이 고증하고 있다.
즉, “삼杉은 여러 층을 이루면서 곧게 자라는 나무이다. [젓나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익가弋檟라고 했다. [익가나무]. 그리고는 진짜 삼杉을 회檜라고 일컬었다. 한번 잘못되고 두 번 잘못되니 바로잡을 때가 없다.”*고 적고 나서, <본초강목>의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삼나무 구과, 2018.4.16 여수 금오도 - 풍나무 열매 모양과 비슷하지만 더 작다.
“삼목杉木은 삼煔이다. [음 또한 삼杉이다]. [강목綱目에 이르기를] 일명 사목沙木이다. [본초本草에 이르기를] 일명 경목㯳木이다. … 남중南中 심산深山에 많이 있는 나무이다. 소나무 류로, 곧고 바르며 잎은 가지에 붙어 자라고 바늘 같다. [이아爾雅 주에 이르기를] 곽박郭璞이 말하기를, 삼煔은 송松과 비슷한데 강남江南에서 자라고, 배(船)와 관棺의 재목으로 쓸 수 있다. 기둥을 만들어 묻으면 썩지 않는다. 또한 인가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통이나 판을 만들면 물에 잘 견딘다. 구종석寇宗奭이 이르기를, 삼杉의 줄기는 바르며 곧다. 대체로 소나무 같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 다만 잎이 넓어지면서 가지를 이룬다. … 이시진李時珍이 이르기를, 삼杉나무 잎은 바늘처럼 단단하고 작고 모가 나 있다. 풍나무 열매와 같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몇 가지 전거를 더 든 후, 정약용은, “이러한 여러 문헌을 고찰해보면, 삼杉은 민간에서 말하는 이른바 젓나무(檜)이다. 관재棺材로는 삼杉 만한 것이 없는데, 이름과 사물이 한번 잘못되니 배를 만드는 재목으로만 알게 되었는데, 애석할 따름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정약용은 삼杉을 전나무(젓나무)로 보고, 이를 잎갈나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의 다른 글에서, 당시 사람들이 회檜를 젓나무로 잘못 알고 있다고 보고, 회檜는 만송, 즉 향나무라고 밝힌다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삼杉을 다시 회檜자를 써서 전나무로 설명한 것은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위에 인용한 본초강목의 나무 설명을 보면, 열매 모양이 작은 구 모양의 풍나무(楓香樹, Liquidambar formosana Hance.) 열매와 같다고 했으므로 전나무의 원추형의 큰 구과毬果 열매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삼나무가 자생하지 않은 현실에서 정확한 나무 종을 식별하는 것은 정약용 같은 대학자에게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전나무, 2019.3.23 장성
황필수黃泌秀(1842~1914)의 <명물기략名物紀畧>에는 삼杉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삼杉나무는 수간樹幹이 단정하며 곧고, 대체로 소나무 같으며 겨울에 시들지 않는다. 다만 잎이 단단하고 조금 모가 나있는데 가지에 붙어서 나고 가시 바늘 같다. 풍나무(楓) 열매 같은 열매를 맺는다. 기둥으로 만들어 묻으면 썩지 않는다. 정다산丁茶山이 이것을 ‘젼나무’로 판별한 것이 이 나무이다. 대개 삼杉을 점煔으로도 쓰는데 그 음音이 ‘졈’이다. 그래서 민간에서 바뀌어서 ‘젼나무’로 된 것인데 이는 잘못이다. 예전에는 나누지 않다가 중간에 와전되어 회檜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즉 황필수黃泌秀도 정약용 선생이 삼杉을 전나무로 본 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좀더 문헌을 살펴보면, 구한말에 출간된 <자전석요>는 “杉삼. 나무 이름, 수긔목 삼”, 1913년 간행 <한선문신옥편>은 “杉 삼나무 삼. 나무 이름, 소나무 비슷, 선재船材”, 그리고 1930년대의 <한일선신옥편>은 “杉 수긔목 삼, 일본명 ‘스기’,”로 설명했다. 현대의 <한한대자전>은 “杉 삼목 삼”으로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석영의 <자전석요>에서 훈으로 단 ‘수긔목 삼’의 ‘수긔’가 일본명인 ‘스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때에는 부산 지방에 삼나무가 일본으로부터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조선시대 때 일부 문헌에서 잎갈나무나 전나무로 봤던 삼杉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삼나무가 도입되면서부터는 상대적으로 혼란이 줄어든 듯 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 고전을 번역할 때 출전이 중국 고전이면 삼杉을 ‘넓은잎삼나무’로보는것이타당할것이다. 그렇지만, 한시를번역할때 "넓은잎삼나무"로번역해야할지, 그냥 "삼나무"라고해야할지는잘판단이서지않는다.
정약용 선생이 밝히려고 했던 삼杉은 중국고전의 나무이므로 넓은잎삼나무일 터인데, 현대 식물분류의 향명으로는 일본에서 도입된 나무에 '삼나무'라는 이름을 먼저 부여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이 나무는 '넓은잎'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것이리라. 이러한 사정과 시어임을 감안하여 삼나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주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넓은잎삼나무는 잎이 뾰족한 바늘형이고 열매가 둥글다는 측면에서 삼나무와 비슷하지만 삼나무와는 속이 다른 나무이다. 이제 두보의 시 ‘영회고적詠懷古跡’ 한 편을 읽어본다.
蜀主征吳幸三峽 촉나라 임금 (유비가) 오나라 치려고 친히 삼협에 왔다가
崩年亦在永安宮 돌아가신 해에도 영안궁에 있었네
翠華想像空山里 쓸쓸한 산 속에서 화려한 임금 행차 생각하니
玉殿虛無野寺中 궁전은 허무하게 들판의 절이 되었구나
古廟杉松巢水鶴 옛 사당의 삼나무***와 소나무에 학이 둥지를 틀고
歲時伏臘走村翁 계절마다 지내는 제사에 촌로들이 달려가네
武侯祠屋常鄰近 제갈량의 사당도 그 곁에 있으니
一體君臣祭祀同 임금과 신하가 한 몸 되어 제사도 함께 받는구나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에서 삼杉을 만나면 문맥에 따라 ‘잎갈나무 (Larix gmelinii [Rupr.] Kuzen)’나 전나무로 해석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잎갈나무의 중국명은 낙엽송落葉松인데,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금강산 이북이 높은 산지 능선 및 고원에 자생하는 나무라고 한다. 허목許穆(1595~1682)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 ‘오대산기五臺山記’라는 글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글의 삼杉은 잎갈나무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본다.
“장령봉長嶺峰 동남쪽이 기린봉麒麟峰이고 그 위가 남대南臺이다. 그 남쪽 기슭에 영감사靈鑑寺가 있는데, 이곳에 사서史書를 보관하고 있다. 상원사上院寺는 지로봉地爐峰 남쪽 기슭에 있으니, 산중의 아름다운 절이다. 동쪽 모퉁이에 큰 나무가 있는데, 가지와 줄기가 붉고 잎은 전나무(檜)와 비슷하다. 서리가 내리면 잎이 시드는데 노삼老杉이라 부르며, 비枇라고도 한다.”****
일본잎갈나무 (좌) 수피, 2019.9.9 금대봉, (우) 익어가는 구과, 2020.5.22 용인 - 잎갈나무와 같은 속의 일본잎갈나무인데, 구과 모양이 삼나무 구과와 비슷하다.
잎갈나무 (좌) 수피, (우) 구과, 2021.4.10 오대산 상원사 근처 - 이 잎갈나무가 허목이 묘사한 노삼老杉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당시 절에서 노삼老杉으로 불리는 나무로 서리가 내릴 무렵 잎이 지고 전나무 비슷하다면 잎갈나무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아주소>나 <중약대사전>에는 피柀를 삼杉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 글의 비枇는 피柀의 오기가 아닐까 의심된다. 한편, <동국여지승람>에 실려있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대구십영大邱十詠’중 하나인 ‘북벽향림北壁香林’에도 삼杉이 나온다.
古壁蒼杉玉槊長 절벽의 창삼蒼杉은 옥 같은 긴 창대 같은데
長風不斷四時香 거센 바람 끊임없어 사계절 내내 향기롭네
慇懃更着栽培力 은근하게 다시 심고 힘써 북돋아 주면
留得淸芬共一鄕 온 고을에 맑은 향기가 함께 머무르리라
대구 지방은 잎갈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이다. 이 시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구시 동구 도동의 측백나무 숲을 읊은 것이라고 하므로, 서거정은 측백나무를 삼杉으로 썼던 것이다. 참고로,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을 보면 잎갈나무를 계桂로 쓰기도 했다고 하고, 또 조선시대 문인들이 금강산 유람을 하고 나서 쓴 글의 계桂는 모두 잎갈나무를 말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말 고전의 나무 이름을 정확히 밝히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풍나무 단풍과 열매, 2020.10.24 성남 - <본초강목>에서 풍楓 열매와 삼杉 열매가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2018년 4월에 열두달 숲 모임을 따라 여수 금오도를 여행할 때 삼나무를 처음 만났다. 날카로운 가시 모양의 잎이 가지에 한 몸인 냥 부착되어 있는 모습과 가지 끝에 매달려있는 둥근 구과를 볼 수 있었다. 그 후, 영광, 순천, 보성 및 제주도 이곳 저곳에서 삼나무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미국풍나무가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가을에 단풍도 아름답지만, 지름 3~4cm 가량의 우둘투둘한 둥근 열매도 인상적이다. 이 열매가 중국에서 풍향수라고 불리는 풍나무(楓) 열매와 비슷하고, <본초강목>에서 설명한 대로 삼나무 열매와 비슷할 터이다. 실제로 삼나무 열매는 이 미국풍나무 열매와 모양이 비슷한데 크기가 더 작다.
삼나무 어린 모습, 2020.11.14 제주도 - 근처 삼나무의 씨앗이 날아와서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지난 가을 제주도에 갔을 때에는 어미 삼나무에서 씨앗이 날아와 자연 발아된 삼나무 어린 것도 만났다. 사람의 도움 없이도 개체를 증식시키고 있는 이 모습은 삼나무가 제주도 자연의 일원임을 웅변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