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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May 07. 2021

사랑의 뽕나무와 활을 만드는 몽고뽕나무

상桑과 염檿

燕草如碧絲        연燕 땅의 풀, 실처럼 돋아날 때쯤

秦桑低綠枝        진秦 땅의 뽕나무는 가지가 무성해지는 때

當君懷歸日        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생각하는 무렵

是妾斷腸時        이 몸은 애간장 끊어지는 때이옵니다.

春風不相識        봄바람은 이런저런 영문도 모르고

何事入羅幃        어쩌자고 비단 휘장 젖히고 들어오는지?


무성한 뽕나무 잎, 2017.7.15 성남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지는 이백李白의 시 ‘봄시름(春思)’으로, 이병한李炳漢 교수 번역*이다. 벌써 20여년 전에 나는 이 시를 처음 접하고 봄의 애수에 젖었던 적이 있다. 봄이 깊어 뽕나무 가지에 잎이 무성해진 모습을 볼 때면 님을 그리워하며 애태우는 심정을 묘사한 이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4자성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말해주듯이, 상桑은 뽕나무(Morus alba L.)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이 뽕나무는 예부터 남녀간의 사랑이나 밀회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시경> 용풍에 나오는 시 ‘뽕밭(桑中)’이라고 할 수 있다.


爰采麥矣           밀을 베러

沬之北矣           매 고을 북쪽으로 갔지.

云誰之思           누구를 생각하며 갔나,

美孟弋矣           어여쁜 익씨네 맏딸이지

期我乎桑中        뽕밭에서 만나자 하고

要我乎上宮        상궁으로 나를 맞아들이더니

送我乎淇之上矣   기수 강가까지 나를 바래다 주었지.


뽕나무 단풍, 2018.11.3 창경궁


고전 번역에서 상桑이 뽕나무라는 사실은 혼동이 없었다. 아마도 양잠 위해 중국 원산의 이 뽕나무(Morus alba L.)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역사가 깊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고전에는 뽕나무 종류를 나타내는 글자로, 흔히 ‘산뽕나무(山桑)’로 해석하는 염檿과 자柘도 있다. 자柘는 꾸지뽕나무(Maclura tricuspidata Carriere)인데, 뽕나무과의 나무이긴 하지만 속이 다르므로 산뽕나무로 번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만 밝히고, 이 글에서는 염檿에 대해서 살펴본다. 염檿은 <동주열국지>에서 서주西周가 쇠퇴하는 역사적 길목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다음과 같은 노래에 나온다.


月將升              달은 장차 떠오르고

日將沒              해는 장차 지려 하네

檿弧箕箙           염檿으로 만든 활과 箕로 만든 화살통

幾亡周國           주나라가 망해가네**


또한, 염檿은 <시경> 대아大雅, ‘위대하신 상제 (皇矣)’ 에도, “염檿과 꾸지뽕나무(柘)를 걷어내고 배어냈네 (攘之剔之 其檿其柘)”에 나온다. 이러한 염檿에 대해, <이아爾雅>에서는 “염상檿桑은 산에 자라는 뽕나무(山桑)이다”라고 했고, 주소註疏에 “뽕나무와 비슷한데 재목은 활이나 수레의 멍에를 만드는데 적당하다. … 활을 만드는 사람이 몸체에 쓰는 나무로, 꾸지뽕나무를 제일로 치고 염상檿桑이 그 다음이다”***라고 했다. 즉, 예로부터 염檿은 산에 자라는 뽕나무를 지칭한 것이고 그 줄기로 활을 만들었던 것이다. <본초강목> 목부木部의 뽕나무(桑) 편에서는 여러 종류의 뽕나무를 설명하고 있는데, “염상檿桑의 실은 거문고와 비파의 줄로 적당하다.”****라고 했다. <시경식물도감>은 이 염檿을 몽고뽕나무(Morus mongolica Schneid. 중명 몽상蒙桑)로 해설한다.


몽고뽕나무, 2019.7.7 정선


우리나라의 <훈몽자회>는 “檿 묏뽕염, 본국에서 속칭 꾸지나모”라고 했다. 참고로 <훈몽자회>에서 ‘속칭’은 당시 중국 민간에서 부르는 명칭을 말하지만, 여기에서는 한글로 ‘꾸지나무’라고 했고, 앞에 ‘본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일 것으로 추정한다. <광재물보>는”염檿은 산상山桑이다. 실(絲)은 거문고와 비파의 줄로 적당하다.”라고 하여, <본초강목>의 설명과 일치하고 있다. <전운옥편>도 “檿염, 산상山桑이다. 재목은 활의 몸체와 수레의 멍에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선석요>, <한선문신옥편>, <한일선신옥편> 등도 “檿염, 산뽕나무염”으로 적었다. 그러므로, 고전 번역에서 염檿을 ‘산뽕나무’로 번역하는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산뽕나무라고 하면 ‘산에 자라는 뽕나무’를 뜻할 수도 있지만, 종(species)으로서의 산뽕나무(Morus australis Poir.)를 가리킨다는 점은 기억해두자.


산뽕나무, 2020.5.16 남한산성


다시 서주西周가 망해가던 시대에 유행했던 속요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노래를 들은 주선왕周宣王(재위 기원전827~782)은 “산상山桑으로 만든 활과 箕로 만든 화살통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고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즉, 염檿과 산상山桑을 섞어 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고전을 번역하면서, 염檿을 만나면 문맥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뽕나무로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몽고뽕나무와 산뽕나무는 모두 중국에 자생하고 있으므로, 당시에 이 두 종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현대의 <중국식물지>에서 산상山桑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를 찾아보면, 산뽕나무(Morus australis Poir. 중국명 계상鷄桑)과 몽고뽕나무(Morus mongolica [Bureau] C.K.Schneid, 중국명 몽상蒙桑)의 이명으로 나온다.


중국에 자생하는 산뽕나무와 몽고뽕나무는 우리나라에도 자생하고 있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산뽕나무가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에 자라는데 반해, 몽고뽕나무는 강원도와 충청도의 석회암 지대에서 제한적으로 자라고 있다. 산뽕나무(檿)가 시어로 나오는 시 중에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김좌현金佐賢 상우商雨와 창수하다’의 일절을 읽어본다.


산뽕나무, 2018.9.26 청계산


山楡野檿葉鬖髿             산에 느릅나무 들에 산뽕나무 잎은 무성한데+

紅豆胡麻欲吐芽             팥과 참깨는 싹이 나려 하는구나

半世窮經成底事             반평생 공부하여 무엇을 이루었나

十年游宦夢田家             벼슬살이 십 년에 시골집 그리워라

日沈西閣流雲氣             해가 지니 서쪽 누각으로 노을이 지고

風捲南湖蹴浪花             바람 부니 남쪽 호수에 물결은 일렁이네

將就小園心計熟             전원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해져도

一帆高處是生涯             돛대 위 위태한 곳이 바로 이내 생애라오


김상우金商雨(1751~?)와 시를 주고받던 당시 정약용은 벼슬살이 중이었으므로 서울에 거처했을 것이다. 몽고뽕나무가 강원도와 충청도의 석회암 지대에 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의 염檿은 산뽕나무일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시인은 야염野檿을 산상山桑의 대구對句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염檿을 산상山桑이라고 했듯이, 상桑을 야염野檿으로 표현한 것이 되므로, 야염野檿이 들에서 재배하는 산뽕나무, 즉 뽕나무를 뜻하게 된다. 굳이 뽕나무를 왜 야염野檿이라고 했을까?


몽고뽕나무 잎, 2019.7.7 정선 - 산뽕나무에 비해 몽고뽕나무 잎의 톱니는 훨씬 더 날카롭다.


정약용 선생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므로 이 시를 지었을 때가 38세 무렵인 1799년 경이다. 이 시기는 아직 정조가 왕위에 있으면서 선생을 후원하고 있었지만 천주교와 관련한 탄핵으로 삶이 위태로운 때였다. 시골로 낙향할 뜻이 아무리 깊다고 한들, 함부로 몸을 뺄 수 있었겠는가? 시를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상상해보자면, 이러한 위태로운 형편 때문에 편안한 글자인 상桑 대신에 활의 재료가 되는 위력적인 글자인 염檿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2019년 7월 정선 지방에서 말로만 듣던 몽고뽕나무를 처음 보았는데 날카로운 톱니가 인상적이었다. 깊은 결각의 몽고뽕나무 잎 가장자리는 사람이 함부로 만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지, 독이 잔뜩 오른, 금방이라도 찌를 것 같은, 뾰족한 침을 톱니마다 장착하고 있었다. 몽고뽕나무 만큼은 아니지만 산뽕나무 잎도 톱니가 뽕나무보다는 날카롭다. 아무래도 사랑을 은유하는 시어로는 날카로운 이미지의 염檿 보다는 예부터 누에에게 잎을 먹이기 위해 동네 뽕밭에서 재배하는 친근한 나무 상桑이 어울린다.


<끝 2020.10>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月將升 日將沒 檿弧箕箙 幾亡周國 - <東周列國志>. 여기에서 기복箕箙의 복箙은 화살통이다. 기箕는 그 화살통을 만드는 재료일 것인데, 이것이 키箕나 고리를 만드는 데 쓰인 키버들이나 대나무라는 설과, 기초箕草하는 설이 있다. 중국 문헌을 찾아보면, 중국에서 석기초席箕草, 급급초芨芨草 라는 풀이 있는데 학명이 “Achnatherum splendens (Trin.) Nevski. (혹은 Stipa splendens Trin.)”로 옛날에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쓰였고, 또 광주리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檿桑 山桑. 注- 似桑 材中作弓及車轅. 疏- … 冬官考工記云 弓人取榦 柘爲上 檿桑次之是也 – 이아주소

**** 檿桑 絲中琴瑟 – 본초강목

***** 檿염, 山桑 材可弓幹車轅 – 전운옥편

******不許造賣 山桑木弓 箕草箭袋 違者處死 – 東周列國志

+楡는 비술나무이고 檿은 몽고뽕나무를 지칭하지만, 시를 지을 당시 정약용은 느릅나무와 산뽕나무라는 이름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표지사진은 2020.5.31 여주에서 촬영한 뽕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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