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 해당화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게 아름다운 해당화 붉은 꽃에서 섬 색시의 소박한 이미지를 느낀다. 이 해당화는 예부터 원산 명사십리가 유명하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로 시작하는 민요도 있고, “이별한지 몇 해냐, 두고 온 원산만아, 해당화 곱게 피는, 내 고향은 명사십리”라는 백설화의 노래 ‘명사십리’도 있다.
해당화, 2019.8.18 삼척
우리나라의 문헌을 살펴보면 고려시대부터 해당화(Rosa rugosa Thunb.)를 해당海棠으로 부른 듯 하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청비록淸脾錄에 “명사십리에 해당화 붉은데, 흰 갈매기 쌍쌍이 가랑비 사이로 날아가네 (明沙十里海棠紅 白鷗兩兩飛疏雨)”가 고려의 중 선탄禪坦의 시로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구는 안경점(安景漸 1722~1789)의 유금강록遊金剛錄에도 인용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다. 이 전통이 이어져,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과 1944년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Rosa rugosa Thunb.’에 조선명 ‘해당화’를 붙인 듯하다.
지금도 우리는 명사십리에 피는 이 꽃을 해당화라고 하지만, 중국 고전에서 해당海棠 혹은 해당화海棠花는 <식물의 한자어원사전>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중국꽃사과나무(Malus spectabilis (Ait.) Borkh.)’라고 부르는 식물을 가리키므로 고전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관상수로 심는 서부해당화(Malus halliana Koehne)나 꽃사과나무 류가 이와 비슷한 나무이다. 강희안(姜希顔, 1417~1494)의 <양화소록>이나 정약용의 <아언각비>를 보면 우리 문인들도 일찍부터 이 차이를 알고 있었다.
즉, <양화소록>에서는, “세상 사람들은 꽃 이름과 품종에 대해 익히지 않아서, 산다山茶를 동백冬柏이라 하고, 자미紫薇는 백일홍, 신이辛夷는 향불向佛, 매괴玫瑰는 해당海棠, 해당은 금자錦子라고 한다. 같고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이 서로 뒤섞이는 것이 어찌 꽃 이름뿐이겠는가. 세상의 일이 모두 이와 같다.*”라고 했고, <아언각비>에서는, “해당에는 서부해당西府海棠, 첩경해당貼梗海棠, 수사해당垂絲海棠, 목과해당木瓜海棠, 추해당秋海棠, 황해당黃海棠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 나무의 높이는 한두 길이 되고, 창주해당昌洲海棠은 그 나무가 한아름 정도이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괴玫瑰 꽃을 해당으로 잘못 알고서, 간혹 ‘금강산 바깥의 동해 바닷가에, 모래 가운데 나는 꽃이 있는데 붉고 고와서 사랑할 만 하다. 이것이 진짜 해당이다.’라고 말하지만, 또한 틀린 것이다. 매괴는 일명 배회화裵回花이고, 곳곳에 있다. 나무에 가시가 많고 장미꽃 종류이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중국식물지>를 보면, 서부해당은 ‘Malus micromalus Makino’로 개아그배나무(제주아그배), 수사해당은 ‘Malus halliana Koehne’로 서부해당화, 목과해당은 ‘Chaenomeles cathayensis Schneid.’로 참명자나무, 첩경해당은 ‘Chaenomeles speciosa (Sweet) Nakai’로 명자꽃/산당화이다. 또한 추해당은 ‘Begonia grandis Dry’로 현재 우리가 베고니아로 부르는 초본성 꽃이고, 황해당은 ‘Hypericum ascyron L.’로 물레나물이다. 그리고 ‘Rosa rugosa Thunb.’는 매괴玫瑰라고 했다. 즉, 우리가 해당화라고 부르는 꽃을 중국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해당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매괴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선인들의 필독서였던 <고문진보古文眞寶>에는 소식蘇軾(1036~1101)이 지은 ‘정혜원 해당 (定惠院 海棠)’이라는 시가 있는데, 중국 고전에서 해당의 용례를 이해하기 위해 일부를 감상해본다.
江城地瘴蕃草木 강성 땅엔 습기가 많아 초목이 무성한데
只有名花苦幽獨 이름난 꽃이 그윽히 외로움을 견디며 있어라
嫣然一笑竹籬間 대나무 울타리 사이에서 방긋 웃는 아리따운 모습에
桃李漫山總麤俗 산에 핀 복사꽃 오얏꽃이 모두 속될 뿐이네
也知造物有深意 알겠구나, 조물주께서 깊은 뜻이 있어서
故遣佳人在空谷 가인을 조용한 골짜기로 보내셨음을.
自然富貴出天姿 풍성하고 귀한 자연스러운 모습은 하늘이 낸 자태이니
不待金盤薦華屋 금쟁반에 담겨 화옥에 바쳐질 날 기다리지 않네.
朱脣得酒暈生臉 붉은 입술로 술을 마셔 볼이 달아오른 듯
翠袖卷紗紅映肉 푸른 소매 걷으니 붉은 살결 비취네
林深霧暗曉光遲 깊은 숲 짙은 안개에 새벽 빛 더디니
日暖風輕春睡足 따뜻한 햇살, 산들 바람에 봄 잠이 족하구나
…
天涯流落俱可念 천애의 유배지에 떨어진 처지를 함께 생각하며
爲飮一樽歌此曲 한 잔 술을 마시며 이 노래를 부르네
明朝酒醒還獨來 내일 아침 술 깨어 홀로 돌아가볼 적에
雪落紛紛那忍觸 눈처럼 펄펄 꽃잎 떨어질까 어찌 차마 만지랴.
꽃사과나무, 2020.4.21 성남 - 중국꽃사과나무 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정혜원은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에 있는 절로, 소식이 유배되어 임시로 거처한 곳인데, 이 때 정원의 해당海棠을 보고 지은 시로, 해당海棠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꽃잎이 눈처럼 펄펄 날리며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이 해당이 장미과의 해당화가 아님을 확인해준다. 이 시의 해당화는 ‘중국꽃사과나무’ 류일 것이다. 또한 소식은 ‘해당海棠’이라는 다음 시도 지었다.
東風嫋嫋泛崇光 봄바람 산들산들 환한 빛 감도는데
香霧空濛月轉廊 향기로운 안개 자욱하고 달빛은 마루로 돌아드네
只恐夜深花睡去 밤 깊어지면 꽃이 잠들까 걱정되어
故燒高燭照紅妝 촛불 밝혀 높이 들고 붉은 모습 비춰보네
해당협접도海棠蛺蝶圖, 남송시대, 북경 고궁박물원 소장 (인터넷)
재미있는 것은, <군방보群芳譜>에 이 시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동파東坡의 해당海棠 시에서 ‘밤 깊어지면 꽃이 잠들까 걱정되어, 촛불 밝혀 붉은 모습 비춰보네 (只恐夜深花睡去 故燒銀燭照紅妝)’라고 했는데, 이 고사는 태진외전太眞外傳에 보인다. 명황明皇이 침향정沈香亭에 올라 태진비太眞妃를 불렀는데, 이때에 태진은 새벽까지 취해 깨지 못하였다. 고역사高力士에게 명하여 시녀가 부축해 이르게 하니, 태진은 취한 얼굴에 화장이 지워지고 흐트러진 머리에 비녀는 비스듬하고 재배再拜도 못하였다. 명황이 웃으며 ‘어찌 비가 취한 것이는가. 해당이 잠이 부족한 것이지’라고 말했다.”*** <태진외전太眞外傳>은 당 현종이 총애한 양귀비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런 때문에 해당海棠, 즉 ‘중국꽃사과나무’의 꽃은 술에 취해 잠든 양귀비를 비유하는 시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과나무속(Malus)의 ‘해당海棠’은 우리가 아는 장미속(Rosa)의 해당화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중국에서 해당을 그린 그림 ‘해당협접도海棠蛺蝶圖’ 등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 초기의 문신 성현(成俔 1439~1504)의 시 매괴玫瑰를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