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 아회阿灰와 납매蠟梅 (향토문화의사랑방안동 2022년 1,2월)
보들보들한 작은 털모자 방울같은 노란색 꽃이 생강나무에 피면 누구나 봄이 왔음을 느낀다. 생강나무 꽃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봄 꽃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옛 문일들도 이 사랑스러운 생강나무 꽃을 노래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고전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몇 해 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내 고향 안동에서 영원한 스승으로 추앙 받는 퇴계선생도 생강나무를 노래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잠시 기쁨에 젖었었다. 조선 중기에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유학의 종사宗師가 되신 퇴계선생은 일천여 수가 넘는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셨다. 이 중, ‘아회화 시를 차운하다 (阿灰花韻)’라는 시가 <퇴계선생문집>에 있는데, 바로 이 ‘아회화’가 생강나무 꽃이다. 이제 이가원의 <퇴계시역주>에서 시 전체를 인용하면서 아회화가 바로 생강나무임을 추적해본다.
無房無瓣匪花裁 방도 없고 화판 없으니 꽃으로 심음 아니었고
著莢偸春傍磵隈 봄빛 빌어 열매 열어 시내 곁에 위치했네
向使蠟梅同此輩 만일 납매로 하여금 이 무리와 같았다면
黃陳安肯首頻回 황산곡과 진간재가 즐겨 머리 돌렸으리
퇴계의 제자인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1516~1577)이 무진戊辰(1568)년에 지은 시에 퇴계선생이 차운한 것인데, 이 시에는 “언우彦遇는 아회阿灰가 납매蠟梅인 줄 알고 있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납매蠟梅는 송나라의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1045~1105)이 시로 읊어 유명해졌는데, 간재簡齋 진여의陳與義(1090~1138)는 “화방이 얼마나 작은지, 청동가위로 황금을 발랐네 (花房小如許 銅剪黃金塗)“라고 묘사했다. 아마 퇴계선생은 황정견과 진여의가 시에서 묘사한 납매가 직접 관찰한 ‘아회화’와 다름을 지적했을 것이다.
<본초강목>에서는 “납매蠟梅, 황매화黃梅花이다. … 이 식물은 본래 매화 종류는 아니지만, 매화와같은 시기에 피고, 향기도 서로 비슷하며, 밀랍 같은 색깔 때문에 이 이름을 얻었다. … 납매는 작은 나무로 가지가 빽빽하고 잎은 뾰족하다. … 늘어진 방울 같은 열매를 맺는데,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 남짓하며 그 속에 씨앗이 있다. 수피를 물에 적셔 먹을 갈면 광채가 있다”**라고 했다. <중국식물지>나 <중약대사전>을 참조해보면, 황매화黃梅花로 불리기도 한 납매蠟梅는 학명이 Chimonanthus praecox (L.) Link이고, 현대 중국명도 납매이다. <국가표준재배식물목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납매’라고 부른다. 중국이 원산지인 납매가 지금은 우리나라의 일부 식물원에 식재되어 있지만, 퇴계선생 당시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던 듯하다.
납매로 생각했던 ‘아회화阿灰花’는 분명 퇴계선생과 김부필이 살았던 안동의 예안, 도산 지역 계곡에 자생하는 식물임에 분명한데, 이른 봄에 ‘화방도 꽃잎도 없이 (無房無瓣)’ 노랗게 피는 꽃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그 단서는 양예수楊禮壽(?~1597)의 <의림촬요醫林撮要>에서 신이화辛荑花에 대한 주석으로 “곧 황매화黃梅花다. 민간에서는 아회화阿回花라고 부른다”***라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아회화’가 황매화라고 했는데, 황매화는 <본초강목>에 납매의 이명으로 나온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김부필이 당시 민간에서 ‘아회화’라고 부르던 꽃을 납매로 봤을 것이다.
그리고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 ‘만물문萬物門’에서, “속명이 아해화鵝孩花라는 나무가 있는데, 노란 꽃술에 거위 새끼 털 같이 많은 솜털이 있고, 냄새는 생강과 흡사하고, 향약방鄕藥方에 들어 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아해화’와 ‘아회화’는 모두 우리말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므로 같은 꽃일 것인데, ‘많은 솜털이’ 꽃술에 있고 생강 냄새가 나는 노란 꽃은 생강나무 꽃을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정조대왕(1752~1800)도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상지다桑枝茶를 … 만약 황매黃梅 가지와 함께 쓰면 자못 차가운 맛을 제어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는데, 황매黃梅에 대해 “민간에서 생강나무(生薑木)라고 부른다”*****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정조 치세 시기인 1799년 간행된 <제중신편>에도 황매黃梅를 한글로 ‘생강나모’라고 했다. 즉, 이익은 ‘아회화’를 생강나무라고 했고, <제중신편>에서 납매의 이명인 황매黃梅를 생강나무라고 했으므로, 김부필이 말한 ‘아회화’가 바로 생강나무 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은 ‘서교만보西郊晩步)’라는 시에서, “그늘진 언덕에도 얼음과 눈은 다 녹았고, 아롱진 납매 꽃이 벌써 보이네 (陰崖氷雪盡 已見蠟梅斑)”라고 읊었는데, “민간에서 아회화阿灰花로 부르는 것이 납매蠟梅이다”라는 주석을 이 시에 달고 있다. 이로 보면 조선 중기에는 안동 지방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생강나무를 ‘아회화’로 불렸던 듯하다.
또한, 1870년에 간행된 <명물기략名物紀畧>은 “蠟梅랍매, 작은 나무로 가지가 빽빽하고 잎은 뾰족하다. 작은 꽃이 피는데 색은 밀랍 비슷하고 향기롭다. 나무 맛이 생강처럼 맵다. 민간에서 생강나무[생양나무]라고 부른다. 또 황매黃梅라고 한다. … 수피를 물에 적셔 먹을 갈면 빛이 난다.”******라고 했다. 즉, <본초강목>의 납매 설명을 인용하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 ‘생양나무(生薑樹)’를 채록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생강나무를 납매로 이해한 정황을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1943년 간행된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정태현은 Lindera obtusiloba Bl.의 조선명으로 ‘생강나무’, ‘아위나무’, ‘동백나무(강원)’를, 한자명으로 황매목黃梅木을 채록하고 있다. 일제시대까지 민간에서 생강나무를 ‘아위나무’로도 불렀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아회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면, 생강나무 꽃을 조선시대에 민간에서 ‘아회화’ 혹은 ‘아해화’로 불렀고, 한자로 황매黃梅 혹은 황매화黃梅花로 적었는데, 일부 문인들이 이것을 납매蠟梅로 오해하기도 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황매黃梅는 누런 매실을 가리키기도 하므로 고전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한다. 즉, 하지夏至 전에 매실이 익을 무렵 내리는 비를 황매우黃梅雨라고 하므로, 황매를 만나면 문맥상 이른 봄인지 여름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이제 생강나무 꽃을 읊은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1571~1629)의 ‘우음偶吟’을 감상한다.
春雪飄零拍老顔 봄 눈이 나부끼며 늙은이 얼굴 치는데
黃梅花發好折攀 생강나무(黃梅) 꽃 피니 꺾어 가기 좋아라
溪邊藤刺拘衣破 개울 가 덩굴 가시에 옷이 걸려 찢기니
採藥山中亦不閒 약초 캐는 산중에도 한가할 틈 없어라
녹나무과에 속하는 생강나무는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 모두 자생한다. 중국에서는 삼아오약三椏烏藥(Lindera obtusiloba)이라고 하며, 감강甘橿이나 산강山姜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자라며, 암수 딴 그루인데 봄에 풍성한 꽃이 피는 것은 대개 수 그루이다. 수꽃에 비해 암꽃은 조금 더 작고 더 듬성하게 핀다. 아마도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가 주인공을 아찔하게 만든 생강나무도 수 그루였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김유정이 소설을 쓸 당시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로 불렀고, 이 사실은 <조선삼림식물도설>에도 채록되어 있다.
사실이지 나는 봄에는 풍성한 꽃을 자랑하는 생강나무 수 그루에 눈길이 더 가지만,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갈 무렵부터는 동그란 탐스러운 열매를 달고 있는 암 그루에 더 눈길을 주게 된다. 더 예쁜 것들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퇴계선생의 유풍이 남아있는 내 고향 도산의 산골 동네도 생강나무 노란 꽃으로 봄은 시작되었다. 꽃 이름을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봄이면 그 꽃을 꺾어 금복주 병에 꽂아 놓곤 했었다. 당시 동네 어른들에게 이 꽃이 뭐냐고 묻고 다녔다면, 누군가 “이게 아회화지, 아회나무 꽃이야! 퇴계선생은 이 꽃이 납매일 리가 없다고 하셨어”라는 대답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곧 겨울이 물러가면서 식물원의 납매 꽃눈이 먼저 터지고, 곧 이 산 저 언덕의 아회화도 보송보송한 노란 꽃이 부풀어오를 것이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96호, 2022년 1/2월, pp.76~83.>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162~170. 초고>
* 彦遇 疑阿灰爲蠟梅 滉以爲非也 – 퇴계집
** 蠟梅, 黃梅花 … 此物本非梅類 因其與梅同時 香又相近 色似蜜蠟 故得此名 … 蠟梅小樹 叢枝尖葉 … 結實如垂鈴 尖長寸余 子在其中 其樹皮浸水磨墨 有光采 – 본초강목
*** 濕癬 初用辛荑花 [卽黃梅花 俗名阿回花也] - 의림촬요
**** 木有俗名鵝孩花者 黄蘂繁毳如鵝兒毛 有臭類生薑 入扵鄕藥方 - 성호사설星湖僿說
***** 桑枝茶 … 若以黃梅枝 [俗所謂生薑木] 兼用 則頗制凉味 -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
****** 蠟梅랍매, 小樹叢枝尖葉 開小花色似蜜蠟而香 木味辛如薑 俗言生薑樹생양나무 又曰黃梅황매 … 皮樹浸水磨墨有光 - 명물기략名物紀畧
+표지사진, 생강나무 수꽃차례, 2022.3.20 성남 율동공원
추기1: 나는 니텐스납매는 홍릉수목원에서 감상했지만 납매는 아직 감상하지 못했다. 일전에 납매를 찾으러 한택식물원에 갔으나 찾지못했고, 12월 23일 여의도공원에서도 찾지 못했다. 한택식물원 납매는 2월이나 3월에 핀다고 하니, 새봄이 되면 납매 꽃을 감상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추기2: 납매꽃을 감상하러 2월 초순에 한택식물원에 갔으나, 꽃은 만나지 못했다. 다시 한달여가 흐른 3월 중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봄비가 내리던 날, 인천수목원으로 가서 드디어 납매를 감상했다. 잎이 나기 전에 노란 꽃이 피니, 멀리서 보면 생강나무 꽃과 비슷한 면도 있겠다 싶어서, 납매를 볼 수 없었던 옛 문인들이 생강나무 꽃을 납매로 비정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계선생은 중국 송나라 시인들이 납매를 읊으면서 묘사한 특징과 직접 관찰한 생강나무 꽃 모양이 다름을 추론하셨으니, 대단한 관찰력이고 격물치지를 실천하신 것으로 보인다. (202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