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된 하루
장관의 비서는 목소리처럼 상큼하고 키 크고 잘 생긴, 그야말로 장관의 비서다운 외모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정작 우리가 만나야 할 대륙의 장관은 너무나 바쁜 듯이 회장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비서를 통해 연락을 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고 비서 역시 나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보고 장관의 스케줄을 보고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장관의 차에 올라타 가버렸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회장님들에 대한 특별 대우는 없는 듯 해 괜히 옆에 있는 나까지 뻘쭘해지는 순간이었다. 뭐 물론 공항에 차를 보내고 예약한 호텔로 안내해 준 것이 이미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최대의 손님맞이를 해준 것이겠지만 정작 중요한,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부탁'을 하는 시간을 갖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회장님들은 내일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 하고 그 안에 빨리 장관을 만나 '부탁'이란걸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회장 1님께 장관과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약속하고 오신 건 확실하냐고 여쭈었고 회장님은 "그럼~ 만나주지. 분명히 만나주지.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하지만 해가 넘어갈 때쯤 되어도 연락이 없자 회장님은 비서에게 연락 한 번 해보라고 하셨고 나는 긴장감을 가지고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다시 상큼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나의 이름과 회장님의 이름을 말하며 내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야 해서 그 안에 장관을 만나야 한다. 언제 만날 수 있느냐 등을 물었다. 비서의 대답은 지금 장관님이 너무 바빠서 아직 좀 더 기다려야 알 수 있다.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꼭 물어볼 테니 기다려라였다. 걱정스러운 내 마음과는 달리 그래도 회장 1님은 뭐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분이 혹시 착각과 짝사랑을 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밀려왔다.
두 회장님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북경 오리 정통 식당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고 난 그들을 모시고 버스를 타고 치엔먼(前门)으로 갔다. 치엔먼에는 '전취덕'이라는 가장 오래된 유명한 북경 오리집이 있는 곳으로 야경도 예쁘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니 베이징 여행을 계획하는 분이라면 꼭 들려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또 짝퉁북경오리 매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정통 베이징 카오야를 먹고 싶다면 꼭 치엔먼으로 가시길... 베이징 유학하면서 비싸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베이징 카오야를 회장님들 덕에 이렇게 먹게 되었다. 한 마리에 당시 한국돈 4만 5천 원 정도였고 세 명이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양... 물론 매우 맛있었지만 오리 기름이 안 맞아서인지 하루 종일 긴장을 했던 탓이어서인지 배탈이 나서 집에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급하게 내려 또 KFC 화장실로 달렸던 기억이 난다. KFC는 그렇게 언제나 나의 비상 탈출구가 되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는 도중 다행히 비서에게 연락이 왔고 내일 아침 몇 시까지 장관이 묵는 호텔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회장님이 해야 할 '부탁'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배탈의 해결과 장관의 약속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난 또다시 KFC에서 나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