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봉 & 우치텔봉 등반기
일시 : 2023.7.28(금) ~ 2023.8.6(일)
장소 : 키르기스스탄 알라 아르차(Ala-Archa) 국립공원
어쩌면 이제 이런 형태의 대규모 원정(15명이면 대규모로 느껴진다)은 철 지난 것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대도 각자 하는 일도 다양한 멤버들이 모여 하나의 산을 오른다는 것은 지금처럼 스마트하고 스피디한 시대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같이 한번 해보기로 했다.
(여행 1일차 : 7/28, 인천공항 → 비슈케크)
재학생 2명이 포함된 선발대(3명)가 출국한 이후 본대 11명은 인천공항에 모여 사진 하나 찍고 알마티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분은 미국에서 오시기에 현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의 일정은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경유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향하기로 되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아내가 추천해 준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 되니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비슈케크 공항에서 미국에서 오신 J형을 만나고 현지 여행사의 안내에 따라 우선 식당으로 향했다. 중앙아시아의 건조하고 광활한 느낌의 풍경은 낯설었지만 새로운 세계에 왔다는 설렘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일단 한국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동시에 빼놓을 수 없는 보드카로 멋진 휴가의 시작을 축하했다. 한국보다 맛있는 김치찌개도 보드카도 후식으로 나온 수박도 모두 훌륭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첫 밤은 도시 외곽의 정원이 있는 독채에서 보냈다. 샤워를 못해 개운치는 않았지만 긴 비행의 피로로 금방 잠이 들었다. 신이 난 후배들은 그 밤에 수영도 하고 추가로 소주도 먹으며 첫 밤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듯하다.
(여행 2일차 : 7/29, 비슈케크 → 라첵산장)
아침부터 상쾌한 날씨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경관들이라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롭다. 짐정리를 하고 아침식사를 위해 차에 올랐다. 오늘은 식사 후 두 조로 나누어 라첵산장으로 향하는 날이다.
일단 키르기스스탄 식의 카페테리아 식당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조별로 버스를 나눠 타고 일정을 시작했다. 내가 속한 조는 한국에서 가져온 짐(물론 현지 포터를 통해 옮긴다)과 함께 먼저 라첵을 향하고 후배들이 속한 조는 현지 식량을 구입해서 후발대로 따라오기로 했다.
믿음직스러운 후배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벤츠 버스에 올라 카라반 여행을 시작했다. 과거 러시아의 엘부르즈 산행 때의 기분 좋음을 느끼며 설렘을 만끽했다. 중간에 마트에서 와인 두 병과 현지 과일(멜론, 살구)도 샀다.
기대보다 짧게 1시간도 채 안 되어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저 멀리 흰 산이 얼핏 보였다. 설렘은 계속된다. 포터들을 만나 짐을 분배한 후 기념촬영과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소나무인지 전나무인지 침엽수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우리가 가려는 라첵산장은 고도 3,300미터의 곳으로 고소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천천히 산행을 즐기기로 했다.
우리의 산행은 일이 아니다. 휴가이고 취미이고 노는 것이다. 후회 없이 마음껏 즐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곳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은 충분히 아름답고 웅장했고 시원했다.
Broken Heart를 넘어 점점 고도를 높여 나갔다. Platau지역(평평한 지역)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점점 더 많이 들리더니 저 위 산 중턱에서 말 수십 마리가 일정한 방향으로 줄지어 가는 게 보였다. 우리가 가는 방향과 같았다. 드디어 만나고 나니 우리가 말들을 이끄는 형국이 되었다. 말들이 가는 곳은 우리가 가는 길과 만나는 계곡. 물을 먹기 위해 말들이 가던 것이었다. 가까이서 말 50여 마리가 물을 먹는 것을 신기하게 관찰했다.
한참 동안 말구경을 마치고 계속 길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산을 뒤덮은 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보라색의 꽃들은 고지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다들 신나 했다.
라첵을 오르는 여정의 딱 중간에는 Waterfall로 표기된 폭포가 있었다. 그 밑에서 일단 점심을 먹고 폭포를 보기로 했다. 점심은 비슈케크에서 싸 온 닭고기. 거기에 마트에서 사 온 멜론과 살구를 먹는데 맛이 끝내줬다.
점심을 과하게 먹은 후 폭포를 향하는데 물이 의외로 맑았다. 5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폭포였다. 사진 찍고 기념을 남기고 또 다음 길을 재촉했다.
이제부터는 경사도 있고 조금씩 고소증세가 나타나는 구간이었다. 점점 고소에 무게를 느끼는 사람들은 처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맑아서 갈증해소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 발 한 발 디뎌 드디어 라첵의 텐트 사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계곡 옆에 많은 캠핑족들이 자유롭게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반갑고 또 신기했다.
캠핑 사이트를 지나 좀 더 오르니 드디어 라첵산장이 나왔다. 선발대도 만나게 되었다. 이 고소에 마을이 구성되어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데, 숙소도 있고 바도 있어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또한 바로 앞에 시원하고 맑게 떨어지는 폭포가 있어 물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할 게 없었다.
후발대가 올라오는 동안 짐을 정리하기 위해 일단 텐트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베키 쉘터였는데 숙소 바로 앞에 좋은 자리를 뺏길까 봐 서둘러 자리를 차지했다. 고소이다 보니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폴대를 끼며 쉘터를 쳤다.
드디어 하나 둘 후발대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하이파이브 혹은 포옹을 하며 그들을 맞았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후배들은 지쳐 보였지만 얼굴은 밝았다.
숙소 바로 앞에 우리 인원에 딱 맞는 식당텐트가 있었는데 누구의 반대도 없이 우리가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사용하면서 느낀 거지만 그 텐트가 없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닐 뻔했다.
짐들을 정리하고 저녁 식사 시간에 다들 모였다. 식사 전 집회에서 향후 등반에 대한 이견들을 조율하고 방향을 확정하여 대원들에게 공유했다. 고소의 열악한 환경이지만 다들 긍정적인 마인드로 의견 조율을 이해해 주었다.
다들 한 마음으로 한 장소에 드디어 모인 것이다. 박수로 우리의 보금자리 구축을 축하했다. 산행 중 먹으려던 와인을 먹고 즐거운 산행 얘기를 하며 고소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여행 3일차 : 7/30, 라첵산장 → 코로나봉 무인산장 → 라첵산장)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한 날이다. 아무리 낮은 곳이라도 우리가 자고 일어난 곳은 어디나 고소에 해당되므로 고소증세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 몸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대원들의 상태는 각양각색이지만 어쨌든 고소의 영향이 왔음은 알 수 있었다. 심한 사람, 느리게 오는 사람, 약간의 호흡에 불편함이 있지만 거의 증세가 없는 사람 등등.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도 다 알면서 우리는 이곳에 왔다.
계획은 코로나봉 무인산장(ABC)에 갔다 오는 것이었지만 각자의 컨디션에 맞게 자유로운 선택을 하도록 했다. 가볍게 주변 산보하는 팀, 코로나봉 무인산장에 다녀오는 팀으로 나누어 컨디션을 조절했다.
나는 코로나봉 팀 멤버들과 함께 무인산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고산등반인데 나름 적응할 만했다. 첫 고산등반에서 많은 요령과 나의 신체반응을 알아서인지 고소에 올 때마다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르는 길은 다소 지저분한 편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거대한 산들과 빙하의 풍경에 압도되어 내가 높은 곳에 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가이드를 따라 너덜지대를 지루하게 올랐다. 앞사람으로 인한 낙석도 잘 피해야 했고 움직이는 돌을 잘 피해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디뎌야 했다. 악사이 빙하를 오른쪽에 두고 너덜지대를 오르는데, 빙하에 흐르는 빙하물은 종종 많은 양의 바위 모래 흙 등을 데리고 내려가고 있었다. 산은 점점 깎이고 내려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10년 후에는 우리가 오르는 곳의 앞산(프리 코리아 등)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헛되게만 보이지 않았다. 이런 느낌은 내려오면서 더욱더 들었다. 실제로 이 빙하에는 4천 미터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얼음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10년 전에는 온통 하얀 얼음과 눈이 쌓인 지대였다고 한다. 지구는 그리고 산은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
너덜지대가 끝날 무렵, 드디어 빙하다운 빙하가 나왔다. 그 위에 물이 흐르고 거길 건너 약간의 크레바스 지역을 넘어가면 코로나봉 등반 입구와 무인산장이 보인다.
전날 선발대가 쳐 놓은 작은 텐트가 무인산장 옆에 있었다. 고소적응이 잘 된 대원들은 등반대장과 가이드와 함께 쉴 틈도 없이 코로나봉 코스를 탐색하고 있었다. 막상 대상지를 보니 힘이 솟아났다 보다. 과거 초모랑마 봉우리 보고 고소가 씻은 듯이 나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 루트 점검도 하고 휴식도 취한 후, 재학생을 포함한 선발대를 남겨 두고 베이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코로나봉은 왼쪽의 너덜지대로 오르는 게 가장 짧고 쉬워 보였으며, 어쩌면 거기가 성공을 위한 유일한 코스로 보였다. 다만 너덜지대의 낙석위험에 대원들이 노출된다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하산하면서 우박과 비바람을 만났다. 이 고소에서 비바람이라니. 경치 좋고 온화해 보이던 산은 갑자기 화가 난 거대한 괴물같이 돌변했다. 그리고 또 언제 그랬나 싶게 개이고. 너덜지대를 지루하게 내려가는데 빗물로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마지막 베이스 부근까지 너덜지대가 괴롭혀 대원들은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고소적응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의 등반을 위해 저녁을 먹고 다들 컨디션 조절을 하며 잠을 청했다.
(여행 4일차 : 7/31, 라첵산장 → 우치텔봉 → 라첵산장)
우치텔봉을 오르는 날이다. 동시에 코로나봉 팀은 내일 등반을 위해 장비 및 식량을 지고 무인산장에 오르는 날이다.
일단 우치텔봉 팀 먼저 출발(새벽 5시). 고소적응 정도는 제각각이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일단 계획대로 6명 전원 출발. 헤드렌턴을 켜고 출발을 했지만 오래지 않아 날이 밝아지고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J형이 속도가 점점 느려지며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에서 오셨으니 시차에다 고소까지 겹치니 다른 대원들보다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이 많은 듯했다. 더욱이 원정대 최고 학번(77) 형님이시다 보니 많이 힘에 부치셨나 보다.
느릿느릿 컨디션 조절을 하며 올라갔지만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B형은 J형과 별도 속도로 오르기로 하고 나머지 대원들을 먼저 올려 보냈다. B형은 아버님의 병환으로 이번 원정에 못 올 뻔하다가 (사전 양해를 구하고) 뒤늦게 합류한 경우다. 자발적으로 J형을 챙기며 동시에 후배들이 계획대로 등반하도록 배려를 해 주신 것이다.
감사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이 혼재된 가운데 평평한 지형(Platau)에서 가이드와 함께 다시 등반에 나섰다. B형은 J형과 최대한 오를 수 있는 곳에 오르되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두 분을 뒤로하고 우치텔봉 등정을 위해 우리는 속도를 냈다. 경사는 더욱 급해졌고 너널지대는 지루했다. 저 오른쪽 앞에 정상이 보였다. 가이드 뒤에 바짝 붙은 형수님은 남편인 P형의 코치를 받아 참으로 잘도 올랐다. 제대로 된 고소는 처음일 텐데 적응력도 뛰어났고 멘탈 또한 강했다. P형 부부의 원정대 참여는 우리 산악회에서 그 차체만으로 기록적인 일이다. 50대 부부가 평소 남편 따라 산을 열심히 다니며 체력과 기술 그리고 멘탈을 익혀 4천 미터대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형수님은 거기다 원정대의 식량 담당으로 식당 텐트 안에서 조용한 카리스마로 많은 일들을 원활하게 해주고 계셨다.
한편 이번엔 원정대 중간 세대인 I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였다. I는 멀리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같이 산행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용기 내어 원정에 참석했다. 아무래도 평소 산행량이나 운동의 기회가 적어 다소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I는 과거 레닌봉 등반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포기하지 않고 느릿느릿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올랐다.
오늘의 날씨는 아주 훌륭했다. 코로나봉 무인산장으로 오르는 대원들도 좋은 날씨를 이용해 무사히 도착했다는 무전이 왔다. 우치텔봉은 급경사이다 보니 오를 때마다 시야가 넓어지고 대자연의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풍광들이 많았다. 저 아래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의 시작점부터 계곡을 따라 악사이 빙하를 따라 쭉 시선을 올리다 보면 프리코리아를 중심으로 한 산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왼쪽 정점인 코로나봉이 명확히 보인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천천히 그러나 나름 엄중하게 움직이고 있어 언제든 우박이나 소나기를 쏟아부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는 날씨였다.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손에 닿을 듯 보였다. 저 멀리 앞서서는 가이드와 형수님 그리고 P형이 정상에 닿기 직전이었고 한 10여분은 뒤에 떨어져서 I와 내가 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부분은 완만한 능선 구간인데 왼쪽에는 단단한 설벽이 펼쳐져 있어 경치는 더욱더 극에 달했다. 나는 못 참고 설벽 위에 서서 어린아이처럼 지친 I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드디어 정상. 이미 정상에 올라 기쁨을 만끽하던 P형 부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 멀리 코로나봉이 선명하게 보였고 프로코리아봉 거쳐 우리 베이스캠프 뒤에 높게 솟은 봉우리까지 아름다운 산군이 하얗게 때론 삭막한 암릉 혹은 퇴석지대의 모양으로 펼쳐지는 게 보였다. 저 건너 설산을 올라도 좋겠지만, 이곳 우치텔봉에서 보는 설산의 경관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악사이 산군을 즐기기엔 우치텔봉 오르기가 아주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 많은 사진과 무지 많은 감탄과 무지 많은 기쁨으로 우리는 휴가의 정점을 찍게 되었다. 아쉬움이 안 남을 만큼 정상에서의 시간을 보낸 뒤 하산을 시작했다. P형은 그래도 뭔가를 남겨야 하겠다는 듯이 세종대왕이 보이도록 정상 표지 말뚝에 만 원짜리를 묶어 놓기도 했고 나는 코로나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설정샷을 찍으며 코로나봉 팀의 성공을 빌기도 했다.
하산은 고도를 낮추게 되니 가벼운 마음이겠지만 한편으로 몸이 지친 상태이니 조심해야 한다. 올라간 순서대로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J형과 B형이 같이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일 코로나봉 팀이 등정을 하고 일찍 내려온다면 마지막에 한 번 더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며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기로 한다.
지루하고 지루한 너덜지대를 지나고 Platau지역에 도착할 무렵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악사이 산군 일대는 오후에 한 번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나 우박이 내리는 듯했다. 이미 가이드와 P형 부부는 저 아래 내려가고 있었고 I와 나는 천천히 빗속을 내려가고 있었다.
I는 지친 상태 같았는데 느리지만 계속 움직이면서 일정한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베이스가 보이는 구간에 도착했을 때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가 먼저 내려가게 되었는데 걱정되어 자꾸 뒤를 돌아보니 급하면 휘슬을 불 테니 먼저 가라고 나를 보낸다.
하여튼 드디어 베이스캠프 복귀. 일단 첫 번째 등정은 마무리되었다.
우치텔봉에서 무전할 때 얘기한 대로 내일 날씨를 확인해서 어렵게 어렵게 무전으로 코로나 팀에 전달해 주었다. 내일 등반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모양이었다.
(여행 5일차 : 8/1, 라첵산장. 코로나봉 팀 등정일.)
전날 과음을 했는지 몸이 무거웠다. 그렇게 안 되던 무전이 코로나봉 팀이 코로나봉 중턱에 오름 시점에 우리에게도 드디어 무전이 들렸다.
대략적으로 확인된 상황은 이랬다.
코로나a팀 5명은 새벽 12시 이전에 출발했다
코로나b팀 4명은 대략 4시간 뒤 자체 판단하여, 내일 등반하는 대신 오늘 오르기로 했다.
코로나a팀은 설벽구간을 이미 지나 정상 부분 암벽지대에 도착했다.
코로나 b팀도 너덜지대를 지나 설벽을 오르고 있다.
일단 초반의 너덜지대를 지났다는데 안도를 했다. 정상 등정이 가시권으로 들어온 듯했다. 날씨가 좋다 보니 b팀이 하루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일찍 등반을 시작한 것이 이런 결정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았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a팀은 자일을 깔고 b팀은 그 자일을 이용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후배들이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는 베이스에서 쉬면서 등반팀들이 무전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끊겼다 들렸다 하는 중에 대충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B형은 J형과 내일 우치텔봉 재도전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고 계셨다. 베이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수까지 산행을 하고 온 것이다. 어느새 우치텔봉 재도전의 불씨를 만들어 가고 계셨던 것.
코로나팀의 등정소식이 전해지면서 베이스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동시에 하산을 잘해야 한다는 걱정도 함께였다. 경험이 없는 재학생들이 무사히 내려간다면 큰 무리 없을 것으로 보였지만 뭐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오후 늦게까지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봐선 a팀은 안전하게 하산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일단 성공 등반의 가능성이 커졌다. b팀이 늦어져 걱정이지만 경험자들로 구성되어 다소 안심은 되었다.
과도한 걱정으로 불필요한 무전은 등반 팀에 방해가 되므로 걱정은 이 정도로 하고, 우린 내일 우치텔봉 재도전 팀과 코로나봉 팀 지원조 그리고 호수 트레킹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다.
코로나 팀의 건강한 모습을 간절히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 6일차 : 8/2, 라첵산장 → 무인산장(ABC) → 라첵산장)
우치텔봉 재도전 팀(J형, B형)은 새벽 3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코로나 팀이 빠져 여유로운 산장에서 형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코로나 팀은 모두 무사할 거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인지, 이제는 두 분의 우치텔봉 등정이 간절해졌다.
전날 자기 전 형수님이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주먹밥을 J형은 정말 맛나게 드셨다. 아닌 게 아니라 형수님 댁에서 가져온 멸치볶음과 김을 넣고 알파미에 넣어 섞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군침이 돌 정도였다.
B형도 이번엔 J형 등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짐도 최소화하고 보온통도 준비하고 무전기도 확실히 챙겼다.
환송을 하는데 발걸음이 가벼워 보여 기대가 좀 되었다. 그러나 설사 완등을 못하더라도 두 번의 도전은 가치 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게 무리하지 않고 내려오길 바랄 뿐이다. 가장 연장자이신 77학번 J형은 평생 처음 접하는 고소 앞에, 거기에 시차까지 겹쳐, 그야말로 분투를 하고 계셨다. 성공적인 등반을 간절히 빌었다.
P형과 나는 7시쯤 코로나봉 팀을 만나러 플래카드와 간식만 든 거의 빈 어택을 지고 나섰다. 나는 두 번째, P형은 첫 번째 길이었다. 다들 무사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온전히 걱정을 씻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중간쯤 올라 무전을 해 보니 연락이 되었다. 다들 무사!! 9명이 하루에 코로나봉을 깔끔히 해치운 것이다. 너무나 큰 일을 해냈다. 고마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인산장(ABC)에 도착하니 불러도 대답이 없다. 에코를 외쳐 보니 3개의 텐트에 나눠 자고 있던 대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다들 하산 후 뻗어 버렸단다. 다들 너무 반가웠다. 훌륭하고 기특하다.
텐트를 걷고 짐 챙기는 걸 도와주는데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고 하산할 무렵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우박까지 쏟아졌다. 천둥번개의 날씨가 좀 더 일찍 시작한 것이다. 우치텔봉 오르는 형님들이 걱정이 되었는데, B형은 배터리를 아낀다고 무전기를 꺼 놓고 있었다. 정상 등정할 시간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다. 불길했다.
우박과 빗속을 뚫고 내려가는데 잠시 천둥번개가 잠잠해질 때쯤 B형의 무전이 들렸다. 정상에는 올라갔고 하산 중인데 악천후로 위기상황이 있어서 무전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상황이 나아진 것 같았지만 아주 식겁한 듯한 목소리였다. 축하인사도 귀에 안 들어오시는 듯. 반면 나는 위기상황은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겠지만, 일단 정상 등정을 했고 위기상황이 지났다는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슬금슬금 전원 등정이 다 이뤄진 것이다. 나의 발걸음은 급해졌다. 어서 내려가 짐을 내려놓고 형들의 남은 안전한 하산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베이스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식사 후, 형수님의 도움으로 따뜻한 물과 꿀 그리고 비상식을 챙겨 서둘러 우치텔 코스로 향했다. B형 무전은 또다시 꺼져 있는 상태. 다행히 비는 그쳤고 날은 개였다.
한 4,50분쯤을 올라가니 저 멀리 위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만나고자 했던 그분들이다. 걸음걸이가 나쁘지 않았다. 꿀을 한 숟가락 드시고 한 번 더 달라는 J형을 보고 형의 컨디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물까지 드시고 내려가면서 불쑥 하시는 J형의 첫 마디.
“이 회장, 캐나다 벤프라고 있는데, 다음엔 거길 가지!”
본인이 숙소도 알아보시겠다며. 아직 우린 1시간 정도는 더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형은 벌써 마음은 다음 원정을 생각하신 것. 내가 어찌 이 제안을 망설이겠나.
“형님, 당연히 가야지요~”
형은 기분도 좋아 보였고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잠시만 며칠 전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베이스에 거의 도달할 때쯤, J형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형수님이 갑자기 저 멀리서 웃으면서 달려오고 계셨다. 내 뒤에 P형이 있어 그러시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J형을 안고 축하하는 모습을 보다 눈물이 맺혔다. 선글라스에 가려 안 보여서 다행이지 민망할 뻔했다. 내가 본 이번 원정 최고의 장면!
J형과 B형은 15명이 온 이번 원정의 대미를 확실하게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했고 서로를 배려했다. 본인의 컨디션에 신경 쓰는 것도 본인의 고소적응에 집중하는 것도 같이 하는 다른 대원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나 아닌 다른 동료의 성공을 이렇게 기뻐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식당 텐트는 오랜만에 다시 왁자지껄 해졌다. 뭔가 목표한 바를 이룬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꽉 찬 에너지. 이건 돈으로 살 수도, 기다린다고 우연히 나오는 것도 아니다.
P형 부부가 나눠주는 부대찌개는 맛있었고 축배는 달콤했다. 대원들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었고 각자의 감격에 취해 있었다.
어느새 누가 나서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각자의 스토리를 풀어냈다. 이게 사는 거 아니겠나. 이거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걸 느끼기 위해 우린 이곳에 온 것일 테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 아닐 수 없다. 잠결에 나와 저 멀리 코로나봉 쪽을 보니 휘영청 달이 코로나봉 설벽보다 커 보였다. 키르기스스탄의 달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여행 7일차 : 8/3, 라첵산장 → 비슈케크. 하산.)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하산을 준비한다. 짐을 정리하고 우리의 숙소를 빼 줄 준비를 한다. 없어진 거 같던 짐들이 신기하게 다 나온다.
그렇게 오려고 했던 이곳을 이제는 어서 집에 가고 싶다며 서둘러 짐을 싸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올라오자마자 천국이나 다름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나도 불과 이틀을 보내고 바로 불평의 소리를 냈더랬다. 익숙함 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다가왔는가 보다. 등반을 마쳤으니 어서 집에 가고 싶다.
포터들이 짐을 들고 내려가고 본인 짐을 지고 대원들이 내려간다. 그래도 또 코로나봉 쪽을 보니 살짝 아쉽기는 하다. 정도 들었고. 멋지게 사진도 찍었으니 미련 없이 가기로 한다.
내려가며 본 풍경이 또 다른 건 한국이나 이곳 키르기스스탄이나 똑같은 듯. 올라올 본 것 보다 훨씬 큰 꽃밭이 화려하게 펼쳐진 것을 내려갈 때 봤으니. 또한 장쾌하게 펼쳐진 풍경이 새삼스럽다. 날은 또 얼마나 좋은가. 오늘도 또 누군가는 코로나봉을 오르고 있겠지.
국립공원 초입에 도착할 때는 몸이 지쳐 있었다. 짐도 다 내려왔고 우리는 늦게 온 대원들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다시 첫날의 그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대원들이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각자 취향대로 사우나와 휴식을 즐기며 금방 또 속세에 적응을 해갔다.
(여행 8일차 : 8/4, 비슈케크 관광)
부담 없는 날이다. 시내구경, 박물관 구경, 맛집 투어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중간에 일이 생겨 B형은 먼저 귀국을 해야 했다.
저녁은 특별히 미국에서 오신 J형이 쏘셨는데, 현지식 ‘샤슬링(?)’은 이번 원정 최고식이었다. 찍어 먹는 식초까지 싹싹 비울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남은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까지 목표한 바를 이룬 자들만이 느끼는 뿌듯함으로 키르기스스탄의 마지막 밤을 즐기며 보냈다.
(여행 9일차 : 8/5, 비슈케크 → 공항)
남은 시간 시내 여행을 좀 더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오버차지에 대한 논란으로 수속이 지연되었으나, 센스 있는 젊은 대원들의 기지로 무사히 출국을 할 수 있었다.
(여행 10일차 : 8/6, 인천공항 도착)
경유지 알마티 공항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인천공항 행 비행기에 올랐다. 알마티에서 마신 맥주 덕에 비행기에서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항공기 지연으로 무지 오래 기다렸을 텐데 산악회 선후배님들이 마중을 나와 축하를 해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안고 집에 가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또 하나의 원정을 마무리했다. (악필, 2023.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