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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필 Sep 30. 2023

[가족] 졸업 기념 산행

- 아들과 산행

- 대상지 : 제주도 한라산
- 코스 : 관음사 탐방지원센터 ~ 백록담 ~ 성판악 탐방지원센터
- 일시 : 2023.1.5(목)
0800 관음사 탐방지원센터
1030 삼각봉 대피소
1230 백록담
1550 성판악 탐방지원센터
1700 관음사 탐방지원센터 차량회수

아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 점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작년 겨울에 내장산을 한 뒤로 겨울산이 전혀 무리가 없음을 확인했고 바위 시즌 단 피치 자연 암장에서도 나름 거부감은 없는 듯했다.

여행 상품권도 쓸 겸 제주도로 방향을 잡았는데 무심코 던진 한라산이 우리의 목적지가 되어 버렸다. 무리일까 싶어 엄마까지 해서 올레길 정도로 잡았다가 아들 녀석이 직접 한라산의 뜻을 비쳤다니 안 갈 수 없다.


졸업식이 끝나고 점심 후 바로 제주도로 향했다. 하룻밤을 자고 간신히 예약한 8시 관음사 코스를 위해 나섰다. 딱 하나 있는 식당에서 김밥과 함께 국수 한 그릇 뚝딱.

날은 포근했고 산행하기 딱 좋았다. 시작부터 눈이 많아서 등산로는 하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했다. 당연히 러셀은 잘 되어 있었다. 출발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묘한 미소를 짓던 아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쭉 빼며 평평한 산길을 걸어갔다. 12월에 폭설로 쌓인 눈이 여전히 많아 한라산의 겨울 설산을 제대로 만끽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이지만 이미 나름 많은 사람들이 산행에 나섰다. 아들과 나는 신나게 길을 걷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조금씩 고도를 높여 나갔다. 중간에 한번 쉬고 계단을 오르는데 어디서 많이 본 길이어서 생각해 보니 ‘미우새’의 그 길이었다. 아들 녀석한테 물으니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식당도 TV에 나온 걸 봤단다.

계단 이후 경사는 좀 더 심해졌다.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너무 잘 걸었다. 기회를 보다 아이젠을 신기기로 했다. 간식도 먹으며.

날을 더 밝아 해가 뜨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이젠을 신으니 훨씬 더 잘 걷는다. 2만 원짜리 네 발 아이젠인데. 계속 추월에 추월. 내가 벅찰 정도다.

산은 시작할 때의 큰 나무에서 조금씩 작은 나무로 변하긴 하는데 눈은 훨씬 더 풍성하다. 눈 쌓인 숲 속을 걷는 기분이 아주 그만이다.

몸에 땀도 나고 숨도 가빠질 무렵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1시간은 빨리 온 듯하다. 급할 거 없으니 간식 먹으며 휴식. 앞에 삼각봉이 거대하게 서 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컵라면이나 간식을 먹고 있다. 눈이 많고 날도 좋아 날은 제대로 잡은 듯하다.

화장실 갔다가 다시 출발. 대피소 이전보다 눈의 양이 훨씬 많아 보인다. 경치도 확 트여 사직 찍을 데도 많고. 많은 눈에 아들도 좋아하는 듯하다. 관음사 코스는 성판악 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경치도 좋다. 특히 눈이 온 경우 더 좋아 보인다. 아들을 앞에 보내고 사진 찍느라 진행이 안 될 정도.

햇빛이 비치는 설산은 겨울산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아들에게 이걸 보여줄 수 있어서 여간 기쁜 게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날에 오기 힘들 거 같다.

백록담에 가기에는 급경사를 좀 올라야 한다. 8부 능선에 오르기 전 급경사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 가는데 뒤에서 아들 녀석도 잘 따라온다. 급경사를 오르고 나니 확 트인 경치 좋은 구간이 나온다. 눈밭에 앉아 간식을 먹고 가기로 한다. 햇빛이 비치는 파란 하늘 아래서 아들과 눈 밭에 앉아 간식을 먹는데 행복한 기분이 샘솟는다. 아들아, 다음에 또 오자!!

눈 밭에서 사진도 찍고 거대한 까마귀도 보고 충분히 쉬고 백록담을 향해 다시 출발. 꽤 많이 올라왔기에 이제 좀 지칠 만도 하다. 아들 녀석도 나도 속도가 점점 준다. 그래도 경치가 좋아 사진 찍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저 아래 관음사 휴게소 쪽은 까마득히 보이고 다른 한쪽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구름 위는 햇빛이 쨍쨍. 멋진 한라산이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는데 ‘날이 다했다’며 날씨를 칭찬하고 있다.

지친 발걸음으로 나무 계단을 오르고 나니 멀지 않은 곳에 백록담의 일부분이 보인다. 평평한 나무 데크 길을 더 가니 백록담이다. 아들을 안고 축하를 해준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난 지난 겨울 47년 만에 처음 한라산에 와 봤는데, 아들은 생후 13년 만에 한라산 백록담을 보게 된 것이다. 지난 겨울엔 가스가 많이 끼어 있었는데, 이렇게 온전히 맑은 백록담은 나도 처음인 셈이다. 아들이 이렇게 아무 무리 없이 백록담에 올 줄이야. 건강하게 잘 커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

줄 서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을 무시하고 멀리서 우린 인증을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앉아서 컵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바람이 좀 불긴 했지만 백록담에서 컵라면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으니. 견딜만했고 컵라면도 김밥도 맛났다. 아들 녀석이 든든해 하니 덩달아 기분 좋다.

적당히 먹고 성판악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작년에 왔던 코스가 성판악. 작년엔 성판악으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갔으니, 오늘에야 제대로 산을 넘어가게 생겼다.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서 가느라 답답했다. 추월할 수 있는 대로 추월을 했어도 아무래도 빨리 내려가긴 어려웠다. 내려가는 데도 아들도 잘 따라와 줬다.


다시 진달래밭 대피소. 거기서 간식을 좀 먹고 다시 하산. 이번엔 추월을 좀 하며 내려갔다. 길긴 무지하게 길었다. 쉬어봐야 축 쳐지는 데다 시간만 늘어나니 끝까지 내리 걸었다. 드디어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성판악 탐방지원센터 도착. 아들도 나랑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런지 운행에 서로 전혀 지장이 없어 매우 성공적으로 산행을 끝냈다. 그래도 낯선 산행일 텐데 묵묵히 따라와 준 아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버스를 타고 차량을 회수하고 엄마랑 통화하는 기분이 최고다. 제주 흑돼지를 고대하며 호텔로 향했다. 오래 기억 남을 하루였다. (악필, 202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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