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가 본 '셰익스피어 인 러브‘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를 보고

by 악필

그저 막연히 문화생활이 그리웠다. 산 타고 달리고 요통에 괴로워하고 회사일에 고민하고.. 그러는 사이 내가 깜빡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오페라를 볼까, 교향곡을 들을까, 실내악을 들을까, 연극을 볼까, 그림을 볼까..


이 모든 옵션을 고민 없이 받아 줄 수 있는 곳이 예술의 전당. 집에서 40여분 차로 가면 주차도 편하고 식사도 즐기며 아름다운 가을날을 만끽할 수도 있으니.


일단 프로그램을 알아보니 눈에 들어온 게, 오페라 ‘라 보엠’. 그러나 같은 시각 축구장 티켓이 생겨 인연을 못 맺었다. 그러다 내친김에 골드회원에 가입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일정에 맞는 걸 찾게 되었다. 그래, 연극을 보자. 셰익스피어 인 러브.

영화인지 연극인지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급 호기심 발동.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를 살살 꼬시니 어렵지 않게 동의를 해준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 산행지를 잡고 기다리는 것처럼 든든한 나만의 자산이 생긴 듯하다. 설레기도 하고 말이다.


오전 달리기를 마치고 잠시 쉰 뒤, 점심 먹고 출발. 그러나 너무 느긋했다. 예술의 전당 주차장에 도착하고 나니 공연시작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부지런히 뛰어 낯선 구조의 예술의 전당을 달려, 지체 없이 공연장에 도착. 늦은 사람이 익숙한 듯 직원들은 내 표정만 봐도 알고 전화번호 뒷자리를 물어보고 신속히 티켓을 뽑아준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 다음 안내 직원이 우리를 인도한다.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층의 저렴한 자리를 택했는데, 덕분에 우린 두 개층을 계단으로 뛰어올라야 했다.


간신히 자리를 찾아 앉으니, 막 안내 공지를 끝내고, ‘공연을 시작합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마치 우리가 앉는 걸 보고 공연을 시작하는 듯.

연극이 처음은 아니지만 참으로 오랜만이라 낯설기만 했다.


어쨌든, 자 이제 연극을 좀 보자. (스포 포함)


내가 선택한 자리는 3층의 중앙 앞부분. 무대에 연기자들이 올라오고 나서야 내 자리가 썩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어디든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선택했는데, 3층은 너무 위쪽이라 배우들과 아이컨택이 아예 불가능했다. 다음엔 2층 정도로 조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일반명상화 된 것처럼 작가 그 자체다. 그 셰익스피어가 사랑에 빠졌다니, 뭔가 썩 내키지는 않았다. 딱히 끌리지도 않았고. 그래서일까,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익숙한 제목. 그리고 연극의 주인공이 셰익스피어라니. 작가는 어떻게 얘기를 풀어나가려고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시작은 역시 셰익스피어가 작가라는 것을 한껏 강조, 재확인한다. 그래, 그런데.

그 셰익스피어는 공연에 올릴 대본을 기한 내 써내야 하는데 뭔가 써지는 건 없고 연극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일들이 이뤄지다 보니 혼란스럽고 뭔가 복잡하다. 무대도 그에 맞게 어수선하다. 그래, 그런데.

한편에선, 사랑의 대상자인 지체 높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의 딸인 여자 주인공은 연극을 너무 좋아하고 또한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좋아한다. 그러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갈 연극의 오디션에 남장(男裝)을 하고 참여한다. 그러다 맡은 게 로미오. 뭐 예상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근데.

도대체 로미오 역의 여자주인공하고 셰익스피어하고 어떻게 엮으려는 거지? 할 즈음.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의 대본과 그걸 100% 이해하고 잘 표현하는 훌륭한 배우(여배우)는 잦은 신체접촉과 정서적 대화 속에서 친밀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그 남장 여배우가 여자라는 것과 그 여자가 또 예쁘다는 것과 그 여자가 또 자기를 좋아한다는, 아니 사랑한다는 것 등을 알아가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중간쯤 오면 제목(Shakespeare in Love)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기본적인 호기심은 여기서 풀린다. 난 사실 쫌 작가가 똑똑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작가를 그의 희곡 속 주인공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절묘하게.

반쯤 오니 이제 작가는 이 얘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는 거지? 하는 또 다른 호기심을 만들어 냈다. 일단 휴식.


인터미션(intermission) 시간에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하나. 단지 안내에 따라 주차권 사전정산을 위해 나가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전부 다 여자였다. 나가다 뒤늦게 들어온 젊은 남자 한 명 발견. 주차정산 후 물을 하나 들고 자리에 돌아와 다시 주변을 보니 내 자리에서 왼쪽으로 5미터 전방에 또 다른 남자 한 명 발견.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나갈 때까지 내가 본 관객 남자는 그게 다였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서둘러 들어올 때 직원들이 친절했던 게 내가 아내를 위해 딱히 원하지도 않는 공연을 일부러 와 주는 남편으로 알고 이를 가상히(?) 여겨 잘해 준 게 아닌가? 쩝.

그나저나, 왜 이 공연엔 남자가 없을까. 내가 괜한 선택을 한 걸까. 남자가 보면 뭔가 안 되는 게 있는 걸까. 여자들 보는 데 내가 괜히 끼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그래도 아내가 있으니 최소한의 명분은 있어 그나마 다행.

아마도 남자들은 여자들이 많은 어색함이 싫어서 안 오는가 보다. 아니면 아예 남자라는 족속은 이런 거 싫어하니 남자들이 없는 이런 곳에 여자들끼리 편히 즐기려고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색함과 잡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을 때, 후반 공연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전반은 80분, 후반은 85분의 긴 공연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배우들은 어떻게 저런 긴 대사를 NG 한 번 없이 잘 맞추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어쨌든, 이 연극의 작가는 결말을 어떻게 낼까, 궁금증이 증폭된 채 관람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이제 주인공은 셰익스피어와 여주인공간의 구도가 확실히 잡혔고, 성춘향과 이도령 역구조 비슷하게 이젠 신분을 넘는 사랑 정도까지 안정적인 이야기 틀이 되어갔다. 빈털터리의 극작가가 부잣집 딸과 사랑을 하게 되고, 그 딸은 이미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정적 스토리지만 신선하진 않다. 그래도 다른 뭐가 또 있겠는가.

하여튼 부잣집 딸은 아버지와 약혼남의 맘도 모른 채 셰익스피어에 빠져있고, 그 상태에서 연극 준비는 계속된다.

조연들의 활약이 후반에 더욱 빛난다. 몇 년 전 런던에서 봤던 레미제라블의 분위기를 제대로 내며 유럽의 술집 문화를 재밌게 묘사해 내는데, 조연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기에 박수를 보냈다. 춤도 어찌나 잘 추던지, 난 아무래도 연극 배우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했다. 일단 저런 춤과 액션을 하려면 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쩝.

연극 준비 과정에서 셰익스피어와 여주인공의 비밀스러운 사랑은 들통나고, 여주인공은 배역에서 잘리고, 대신 로미오 역은 셰익스피어가 맡는다. 그럼 대충 후반을 예상할 수 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연결하지? 어떻게 줄리엣 역을 여주인공으로 대체하지?

작가는 다 생각이 있다. 공연이 좌초될 위기를 겪었음에도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공연일은 임박하고 준비는 얼추 마무리되어 간다. 공연 당일 2천여 명의 관객 앞에서 대성황을 예상하는 공연은 줄리엣 역을 한 여장(女裝) 남자의 갑작스러운 목소리 문제로 공연이 망(亡)할 위기에 처한다. 시대상황상 풍기문란의 문제를 들어 여자는 연극배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하튼 여자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상황에서 여장을 한 배우는 여자 목소리가 안 나온다. 최대 위기이자 가장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며, 예상대로 여주인공이 (배우를 못하게 되어 떠날 때 셰익스피어로부터 넘겨받은) 대본을 외운 상태에서 공연을 보러 오게 되고, 다급한 상황을 만들어 여주인공이 줄리엣 역을 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럴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결시켰고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현실에서도 연극 속에서도 사랑에 빠질 수가 있었다. 작가에게 큰 박수를.

물론 여주인공이 약혼남과 결혼하지 않고 셰익스피어와 계속 사랑에 빠져 있다면 현실성에 의심을 받았을 것. 결국 셰익스피어는 혼자 남아 극작가로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본 연극을 마무리한다.

끝나는 공연에서 새삼 느끼는 건, 주인공 못지않게 모든 조연들은 훌륭했다는 것. 연극하는 사람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다 끝나고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대단히 멋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흠. 난 좋았고 아주 많은 문화적 치유를 받았다.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혹시 내가 나이 먹어 남성성이 떨어져 그런 건 아니겠지?

젊어서는 아무래도 이런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 그러니 지금 내가 이렇게 자꾸 공연장을 찾고 싶은 건, 그러니까 과거 나의 불완전했던 시절의 나를 치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난 너무 치열했고 난 너무 생존에 온 신경이 팔려있었다. 불쌍했던 나의 젊은 날이여.

남은 인생 동안 지난 인생을 있는 대로 사랑하고 보듬고 치유해서 다이내믹했지만 아름다웠던 날들이었노라고, 잘 가꾸고 보살펴서 그래도 재미있는 인생 었노라고 죽을 때 말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아마 더더욱 문화의 치유를 갈망할 것 같다.

내가 본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나의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악필, 202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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