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

- 설악산 토왕성폭포

by 악필

좀 지났지만, 지난 무척이나 더웠던 8월 어느 날, 설악산 산행이 기억나 기록해 둔다.


매년 가던 설악이었지만 이번 산행은 좀 특이했다. 암벽이나 릿지에 집중했던 산행은 점점 워킹이나 가벼운 트레킹까지 다양함을 추구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최근 충격을 받은 허리의 문제로 이러한 추세가 반갑기만 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며칠의 일정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토왕골 쪽의 워킹 산행이었다. 설악산은 많이 왔지만 항상 익숙한 곳만 다니다 보니 다소 지겨움이 있었는데, 같이 간 형님이 좋은 코스를 소개해 주었다. 시작 전부터 설레었다.


통상 더운 설악에서의 기억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화려한 경치를 보며 릿지를 하고 나서, 하산하다 만나는 계곡에 몸을 식히는 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엔 자일도 없고 안전벨트도 없이 그저 걸어서 낯선 길을 탐험하게 되었다.


코스는 급경사부터 시작하는데 신기하게 요리조리 아슬아슬하게 길이 잘 나 있었다. 그 길은 어쩌면 다소 거친 능선길이기도 했고 어쩌면 좀 쉬운 릿지 코스 같기도 했다. 바위가 많아서 바위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중간중간 올라서 보이는 설악의 풍경이 장관인 게 공룡능선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늘이 나오기도 했다가 태양을 피하기 어려운 곳을 한동안 지나가야 하기도 했다. 저 앞에 권금성도 노적봉도 확인할 수 있었고 아주 멀리 울산암도 보였고 한편으로는 속초 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였다.


동반자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던 걸 감안하면, 웬만한 트레킹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리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라고 봐야겠다.


전반이 릿지와 같은 느낌의 코스와 경치를 보여줬다면 중간 부분은 다소 다른 전개를 보였다. 풀과 나무가 우거져 밀림 지역의 한 복판을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꽤 높이 올라온 곳이었지만 맑은 계곡물이 풍성하게 흘러 마시고 씻고를 다 할 수 있었다.


숲 속이어서 이 더위에 그늘 속을 걷게 되니 좋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그늘임에도 나뭇잎 사이로 가끔 비쳐 들어오는 태양은 푹푹 찌는 더위를 더욱 가중시키며 답답함을 느끼게도 했다. 무엇보다 그 숲길은 경사가 급하고 풀잎과 나무에 가려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이 오르막인 데다 물기가 흐르는 바윗길도 있고 질척한 흙길도 있어 몸을 더욱 힘들게 했다. 몸에 열은 오르는데 이 산은 그 몸을 제대로 식혀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코스가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리고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때의 그 호기심에 대한 짙은 인상 때문일 것이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저 능선에 올라서면 어떤 경치가 펼쳐질까, 우리는 지금 어디쯤이고 어떤 길과 연결되는 걸까 등등. 숨이 턱에 차고 근육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며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은 그 호기심에 중독되어 혹은 그 욕망에 사로잡혀 지칠 줄 모르는 딱 그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때 그 설렘은 이 호기심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난 가보고 싶다, 난 느껴보고 싶다, 난 그 자리에 서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이런 거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산행이 어찌 이뤄지겠는가.


우리는 막연히 토왕성폭포를 향해 초행길을 천천히 길을 찾아가며 걸어갔다. 오르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수풀 속의 급경사를 오르고 올라서 옥녀봉 옆의 능선 무렵에 드디어 도착. 여기는 토왕골의 릿지를 타고나면 오르는 곳이어서 나름 익숙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호기심이 채워졌다. 퍼즐이 조금은 완성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토왕성폭포의 상단으로 가는 일이 남았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큰 호기심 대상이라고 봐야 했다. 토왕성폭포는 차로 소공원에 들어설 때 왼쪽 저 멀리에서 보이던 웅장한 자태의 폭포다. 동양 최대라던가. 폭포는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겨울의 빙벽등반지로 유명하다. 나 또한 산악부 1학년 시절 하단을 등반해 본 적이 있는데, 상단의 그 모습은 그렇게 가까이서 봤어도 - 아니 그래서 더 - 신기하기만 했다.

그 폭포의 자태는 꼭 하늘에서 물줄기가 내려오는 모양이어서 비현실적으로로 느껴지기도 하던 것이다(그러니 겨울에는 하늘에서 계단이라도 내려놓은 것 같이 보인다). 당연히 어딘가에 물이 있으니 떨어질 테지만, 소공원 가는 길에서 보이는 걸 봐서는 도무지 그 뒤 이면의 모습이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토왕성 폭포를 가까이서 바라다보며 등반하는 몇몇 릿지 코스를 하면서도 똑같이 느꼈다. 과연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그런 토왕성폭포의 그 물이 시작하는 부분을 직접 보러 가는 것이다.


능선에 올라와 고생은 대충 끝난 줄 알았는데, 여전히 길은 많이 남아 있었고 더위는 더욱 지친 몸을 괴롭혔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우리를 이끌던 형은 목적지를 발견한 듯했다. 일행을 대기시키고 길을 찾더니 그쪽으로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마무시하게 보이던 토왕성 폭포 상단에 도달하게 되었다. 계곡물은 얕았고 그저 놀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 폭포의 위용을 잘 알기에 그 떨어지는 물줄기 위의 계곡을 건너는데 등골이 다 오싹해졌다. 이 물이 그러니까 바로 요기로 떨어져 그 엄청난 벼랑으로 떨어진다는 말이지?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또 내가 여기 있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내가 발을 헛디뎌 계곡으로 미끄러져 저 아래 폭포로 밀려 내려간다면?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해졌다.


수시로 드는 무모한 생각이 있었지만 그 위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았다. 햇볕은 비쳤지만 물이 있으니 시원했고 물놀이하기도 좋았다. 신선이 놀다가 갈 만한 좋은 곳이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물로 몸을 식히고 앉아 느긋하게 간식을 까먹는다. 저 앞의 설악 풍경을 보는데 정말 짜릿함과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겼다. 이렇게 여기서 또 하나의 호기심이 채워졌다.

그런데 이 물은 또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을 따라 또 올라가 보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다.


천상의 놀이터에서 충분한 휴양을 즐기고 난 뒤, 하산을 진행했다. 근데 하산을 하려면 온 길을 가기보다는 현재 위치에서 가장 쉽고 편한 곳을 찾아야 한다. 날은 더욱 더워졌고 몸은 그간의 휴양에도 피로감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초등학생인 막내 대원의 체력 급감의 우려가 있어 최단이면서도 가장 쉬운 길은 불가피했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

그 쉽고 짧은 길은 어쩔 수 없이 초반 오르막이 있었고, 이미 산속 깊은 곳까지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랜 하산길을 감당해야 했다.


오르막을 한 30여분 올라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지치고 덥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뛰어난 등산 신동은 다시 어린이로 돌아와 남은 하산길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날이 더운 오후가 돼서 그런가 이상하게 벌레 파리 모기들이 극성이었다. 이건 지친 어린이에게는 여간 성가시고 짜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산 또 하산. 쉬었다가 또 하산. 우리가 얼마나 올라왔었는지 실감이 났다. 우리의 하산은 여관촌 쪽이었다. 차를 가져온 나와 또 다른 형이 먼저 하산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참 더운 날씨다. 이렇게 어른도 힘든 데 어린이가 오죽하랴.

먼저 잡힌 택시를 타고 소공원 주차장에서 차를 회수하고 여관촌으로 오고 나니 조금 있다 나머지 멤버들도 하산을 완료했다.


입엔 단내도 나고 몸은 지쳐있지만, 반드시 겪게 되는 성취감의 단계가 남아 있다. 목표한 바를 완성했다는 보람과 뿌듯함, 살아 돌아왔다는 희열, 그리고 우리의 일상이 그렇게 소중했었다는 충만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결국엔 우린 잘 태어났고, 행복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벅찬 희망도 빠뜨릴 수 없고 말이다. 이러니 산행을 마무리하고 생각하면 안 간 것보다는 분명 나은 점이 있다.


이렇게 산행은 일단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성취감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것은 또다시 내가 산에 오르게 되는 동기가 된다. 물론 ‘산이 거기 있어서’ 가는 것이 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악필, 202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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