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를 잃지 않기 위한 나의 다짐
오늘도 그녀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언어의 온도에 유독 민감하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좋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바르고 고운 말 ,다정한 말을 건네려 늘 의식한다.
나는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을 힘들어한다. 자기 기분이 좋을 때는 헤헤 웃다가, 자기 기분이 나쁘면 인사조차 받지 않고 툭 내뱉는 말마다 묘한 가시를 품은 사람. 그런 사람 앞에 서면 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럼에도 선뜻 모진 말을 하지 못하는 나는 결국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그때마다 두통이 찾아온다. 오늘도 결국, 그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이들이 있는 교실은 언제나 시끌벅쩍하다. 우는 아이, 징징거리는 아이, 기분 좋아 소리 지르는 아이, 깔깔 웃는 아이들까지. 여기에 교실의 소음이 더해지면 때때로 정신이 아득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청각에 유독 민감한 아이들이 소리로 세상을 배우고 즐긴다는 것을. 노래를 부르거나 동요를 틀면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웃고, 하나둘 모여들어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 옹알이를 하며 행복해한다. 그때 교실은 우리만의 작은 축제가 된다.
그 행복한 순간, “아 시끄러! 선생님 노래 좀 꺼요.” 짜증 섞인 큰 소리가 교실을 가른다. 아이들이 흠칫 놀라고, 나는 입을 다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화가 치밀지만, 나는 꾹 삼킨다. 가끔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그래 니 똥 굵다. 흥짓뿡이다.’ 속으로만 그렇게 말하며 웃음으로 넘긴다.
하지만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는 금세 굳은 얼굴이 되고, 조용히 침묵한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걸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해야 하는 상황, 그건 참 힘들다. 역시 낯선 곳에서의 적응은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내년이면 조금은 나아질까. 세상 속 친구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친해지면 그만이지만 이곳은 ‘직장’이니깐.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한결같은 다정함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다정함은 언젠가 전염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