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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Sep 28. 2024

생애 첫 번째 숙제

I. 여행 이전의 세계

  2020년 12월 31일. 초침이 몇 번만 더 째깍이면 수십만의 열아홉은 멀리서만 바라봤던 어떤 자유를 부여받게 될 것이었다. 술집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과 다를 바 없던, 가볍고 서툴렀던 자유. 우리는 술보다도 어른이 되었다는 설렘에 취해있었다. 다시는 볼 일 없는 친구들과도 연락하여 서로를 축하하며 우리는 조금은 의무적으로 소주를 마셨다. 실없는 대화와 취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술기운을 머금었던 소란은 가라앉았다.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수다, 화려한 술집의 조명, 이성과의 영화관, 당구장 내기가 사라진 세상. 시간을 흘려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즐겨 사용하던 장치들이 소거된 세상. 그 세상은 마치 짧고 강렬한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서 깊은 곳에 가라앉아있던 옛날의 질문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어른의 자유라는 건 뭐지? 생각보다 술은 맛이 없고, 담배는 역하기만 했다. 누군가와 실없이 대화하는 것도 돌이켜보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어른의 자유라는 것은 단지 스스로 술집에 들어가거나 담배를 살 수 있게 되는 것 그 이상의 어떤 것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문장이 나에게서 도저히 튀어나오지 않았다.

 답답했다.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글자는 읽을 수 있으나 그 이상을 읽어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직감적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에게는 언어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해오던 언어로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어떤 것을 말해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역의 가장 큰 도서관에 갔다. 그 날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숲 속을 거닐듯이 책의 제목들 사이를 걷는 일이었다.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펴볼 뿐이었다. 미약하지만 심장은 분명히 빠르게 뛰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기쁨도 행복함도 아닌 두려움에 가까웠다. 세상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구나, 그런데 나는 정작 나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구나.  대학 입시라는 목표 하나를 좇아 달려오는 동안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놓치고 있었구나. 그날 집에 돌아와 스스로의 힘으로 겨우 적을 수 있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왜 나는 사유할 수 없는가?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먼저 해야할 것은 바로 언어를 얻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말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독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생에  번째 숙제가 되었다. 가슴을 뛰게 하는  번째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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