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의
마음의 병은 몸으로 나타난다.
오늘은 속이 곪고 뒤틀리는 마냥 배가 아프고, 몸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옅은 오한에 기력이 죽죽 가라앉는 하루였다.
차트 공부를 한답시고 어제 읽던 주식차트 책을 펴서 실전 차트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분명 상승 후의 비석형 캔들 후에는 매도를 했어야 했건만, 나는 왜 또다시 가격이 떨어지고서야 후회를 하는가. 역시 이론을 실전에 접목시키기란 쉽지가 않다. 하루 종일 변동이 오락가락했던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멍해진다.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연락을 시작한 몇 명의 사람들과는 매일매일 카톡을 이어나가지만, 그 몇 마디의 연락마저도 오늘의 나에겐 벅찬 숙제와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젠가는 얼굴을 마주해야 노력의 매듭이 지어질 텐데 싶다가도, 카톡으로도 느낌이 오질 않는데 그냥 다 관둘까 하는 고민에 다시 빠진다.
이럴 때면 다시금, 2020년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헤어진 그가 떠오른다.
그냥 편하게 볼 수 있고 같이 있을 때 편안하던 사람. 연락에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사이.
하지만 어느 관계에서든 좋은 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감정이 100인 시절에는 가끔 드러나는 거슬리는 부분들을 못 본 척 노력할 수 있지만, 감정이 조금씩 이성과 섞일 때 즈음에는 관계의 부정적인 부분들에 대해 더 심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나의 고민의 결론은 정다웠던 날들을 매듭짓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마무리였다. 언제나 내 직관과 느낌을 신뢰하던 나는 내 결론이 옳다고 확신했고 그도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몇 주간의 혼란스러운 날들이 지나갔고, 또 얼마간의 침울했던 날들도 지나갔다.
어쩐지 아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은 아니라며, 내 애정이 적당히 깊었기에 다행이라는 엉뚱한 자찬도 해가며 어딘가 텅 빈 마음을 나만의 이상한 방식으로 달래었다.
그리고 네이버 오늘의 운세가 참 좋았던 어느 날, 우리는 서로의 바닥을 보여주는 사건을 만들며 서로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쏟아냈다. 우리는 그렇게 한번 더 이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증의 감정에 복받쳐 그 사건의 발단을 후회하면서도, 끝을 볼 수 있게 해 준 그 날이 다행스러웠다.
그 날 이후로 나의 의도나 노력 없이도 그의 얼굴이나 기억은 한층 더 잊혔고, 내가 그토록 바랬던 내 안의 평화를 얻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은 헤어지고 가끔 오던 그의 카톡이나 전화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그보다 더 누군가를 빨리 만나야 한다는 조급증도 갖지 않게 되었다. 그 날 운세 풀이가 잘못되었다 생각했더니, 운세가 좋았던 것이 맞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얼마간의 평화로운 날들이 지나가고, 또 얼마간의 그저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운세가 좋았던 날의 나쁜 감정들이 희미해질 때쯤,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었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의 수가 늘어 있었다.
별 일이 없고 별 감정의 동요가 없이 사는데 가끔 몸이 아픈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가끔은 마음이 아픈 건가 싶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원했던 새 출발을 두 번씩이나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한 영화 제목의 의미를 내 나름의 의미로 이제야 남몰래 이해해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앞에서는 지금이 더 맞다며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 결국 맞지 않나 생각한다.
끝과 시작은 어쩐지 가위로 종이자르듯 뚝 끊어진 것은 아닌가보다.
여전히 나는 새 출발의 선로를 위태위태하게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