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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먼히 Mar 19. 2021

새 출발

이별 후의


마음의 병은 몸으로 나타난다.

오늘은 속이 곪고 뒤틀리는 마냥 배가 아프고, 몸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옅은 오한에 기력이 죽죽 가라앉는 하루였다.


차트 공부를 한답시고 어제 읽던 주식차트 책을 펴서 실전 차트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분명 상승 후의 비석형 캔들 후에는 매도를 했어야 했건만, 나는 왜 또다시 가격이 떨어지고서야 후회를 하는가. 역시 이론을 실전에 접목시키기란 쉽지가 않다. 하루 종일 변동이 오락가락했던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멍해진다.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연락을 시작한 몇 명의 사람들과는 매일매일 카톡을 이어나가지만, 그 몇 마디의 연락마저도 오늘의 나에겐 벅찬 숙제와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젠가는 얼굴을 마주해야 노력의 매듭이 지어질 텐데 싶다가도, 카톡으로도 느낌이 오질 않는데 그냥 다 관둘까 하는 고민에 다시 빠진다.


이럴 때면 다시금, 2020년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헤어진 그가 떠오른다.

그냥 편하게 볼 수 있고 같이 있을 때 편안하던 사람. 연락에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사이.

하지만 어느 관계에서든 좋은 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감정이 100인 시절에는 가끔 드러나는 거슬리는 부분들을 못 본 척 노력할 수 있지만, 감정이 조금씩 이성과 섞일 때 즈음에는 관계의 부정적인 부분들에 대해 더 심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나의 고민의 결론은 정다웠던 날들을 매듭짓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마무리였다. 언제나 내 직관과 느낌을 신뢰하던 나는 내 결론이 옳다고 확신했고 그도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몇 주간의 혼란스러운 날들이 지나갔고, 또 얼마간의 침울했던 날들도 지나갔다.

어쩐지 아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은 아니라며, 내 애정이 적당히 깊었기에 다행이라는 엉뚱한 자찬도 해가며 어딘가 텅 빈 마음을 나만의 이상한 방식으로 달래었다.


그리고 네이버 오늘의 운세가 참 좋았던 어느 날, 우리는 서로의 바닥을 보여주는 사건을 만들며 서로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쏟아냈다. 우리는 그렇게 한번 더 이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증의 감정에 복받쳐 그 사건의 발단을 후회하면서도, 끝을 볼 수 있게 해 준 그 날이 다행스러웠다.


그 날 이후로 나의 의도나 노력 없이도 그의 얼굴이나 기억은 한층 더 잊혔고, 내가 그토록 바랬던 내 안의 평화를 얻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은 헤어지고 가끔 오던 그의 카톡이나 전화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그보다 더 누군가를 빨리 만나야 한다는 조급증도 갖지 않게 되었다. 그 날 운세 풀이가 잘못되었다 생각했더니, 운세가 좋았던 것이 맞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얼마간의 평화로운 날들이 지나가고, 또 얼마간의 그저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운세가 좋았던 날의 나쁜 감정들이 희미해질 때쯤,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었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의 수가 늘어 있었다.  


별 일이 없고 별 감정의 동요가 없이 사는데 가끔 몸이 아픈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가끔은 마음이 아픈 건가 싶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원했던 새 출발을 두 번씩이나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의 의미를  나름의 의미로 이제야 남몰래 이해해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돌아갈  없는 과거 앞에서는 지금이  맞다며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 결국 맞지 않나 생각한다.


끝과 시작은 어쩐지 가위로 종이자르듯 뚝 끊어진 것은 아닌가보다.

여전히 나는 새 출발의 선로를 위태위태하게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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