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먼히 Mar 19. 2021

비누

헤어지고 쓰는 편지

우리가 헤어지고 한 달이 지날 때쯤 강남역에 있는 러쉬 매장을 들르게 됐어.

  저녁 나는 소개팅으로 녹초가 되어 있었고 너만큼 익숙하고 편한 친한 언니 불러냈어.


언젠가는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날 거란  알고 지만, 이 과도기적 때로 닥쳐오는 감정의 동요와 쓸쓸함의 파도를  감당해야 하잖아. 가장 익숙했던 너는 없지만, 그래도 너만큼 친하고 익숙한 언니는 아직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


정말 구경만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힘이 빠져있는 나에게 언니가 새해 선물이라며 장미향의 비누를 선물해줬어. 내가 맡은 향은 분명 장미였는데, 검색해 보니 실제론 베르가못과 크랜베리가 섞인 이국적인 향의 비누였어. 100그람의 작은 비누였지만, 언니의 비누 선물에  기분은 행복해졌어. 너가 들으면 역시 선물을 좋아한다며, 건에 욕심이 많다며 진담  농담 반으로 놀렸을 테지.


언니는 비누를 주면서, 기를 정화하고 새로운 사랑이 들어오라는 의미로 선물한다 했어. 그리고 나는 언니의 소망에 맞장구치며 좋은 사람을 만나자고 다짐했어.


코로나 통금 시간이 다가와서야 언니와 헤어졌고, 강남역 1 출구의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혼자 기다렸어. 너가 지내는 동네여서인지 나는 주변을  번씩 훑어보며 괜스레 혼자 나를 의식했어. 바로  앞에서 우리  가는  번째 버스를 놓치고는  번째 버스를 기다려야 했지. 어쩐지 쓸쓸하고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나는 언니가  러쉬 쇼핑백에 담긴 포장된 비누를  번씩 내려다봤어.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비누로 샤워를 했어. 크랜베리라기보다는 장미향이랑 풍선껌 향이 섞인 굉장히 특이한 향인데 너에게  향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어. 너는 향수를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고 향에 민감하잖아. 내가 쓰는  가지의 바디워시 향을 너도  알고 있잖아. 그중 하나는 너가  선물로 사줬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튤립향이고, 우리    튤립향을 참 좋아했었지. 너가  크랜베리의 비누를 써봤다면 너는  향을 좋아했을까?


여하튼 나는  비누를 반으로 잘라 하나는 배게 맡에 두고, 하나는 샤워를   쓰기로 했어. 배게 맡에 두니까 잠을 자다 뒤척일 때마다 크랜베리가 섞인 장미 향기가 지나가서 기분이 따뜻해지더라. 너랑 함께  때에도 이렇게 비누를 배게 맡에 뒀더라면, 우리가 조금  포근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어.


그러고   달이 지났고,  비누가 베개 밑에 깔려 버렸는지, 요즘은    비누향을  맡아. 하지만 여전히 가끔  비누로 샤워를 하는데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비누엔 손이   가게 되잖아. 근데 가끔 그렇게 언니가  분홍빛 비누가 눈에 띄어서  비누로 샤워를  때면 이상하게 너를 떠올려. 아직 헛헛한 나의 기분을 조금은 몽글몽글하게 채워주면서도 둘일 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상한 비누야.


우리가 헤어지고 한 번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그때 꼭 이 비누향을 맡게 해 줘야지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한지 한 달이 되다 보니 이제는 비누가 배게 맡에 있었는지도 잊게 되었어.

아마도 이 비누가 다 쓰여 없어질 때까지도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면, 언니의 소망대로 난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있겠지?


아주 오랜만에 쓸쓸한 기분이 드는 오늘은 비누를 베개 위에 두고 잠을 청해야 겠어.



2021년 3월 19일 금요일 밤,

먼히가

























매거진의 이전글 휴식 중인 나를 점검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