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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먼히 Sep 21. 2021

[여행일기] 함께라는 기분은 좋다

빅서의 앤드류 몰레라 

[2021년 9월 18일 토요일의 1/2]


이 날은 빅서(Big Sur)와 페블비치(Pebble Beach)의 17 마일스 드라이브를 여행했다. 사건은 17 마일스 드라이브 중에 터졌기 때문에 아쉽게도 17 마일즈에서의 사진은 초입을 제외하고는 남긴 것이 없다.


우리는 빅서에서 포인트 로보스(Point Lobos)부터 시작해 앤드류 몰레라(Andrew Molera) 주립 공원을 거쳐 파이퍼 비치(Pieffer Beach)까지 여행할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여행을 하지는 못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몰릴 것을 염려해 우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오전 9시쯤 호텔을 나섰다. 아침부터 아주 화창한 날씨였다. 그는 근처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고 차 앞유리를 깨끗하게 닦았다. 여행을 하면서 보니 차 안에서도 사진이 깨끗하게 나와서 아침에 유리창을 닦길 잘했다며 그에게 고마워했다.


오전 9시 40분경 첫 번째 목적지인 포인트 로보스 주변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차들이 입구부터 긴 행렬을 만들고 있었고 주변의 길거리에 차를 주차한 사람들은 걸어 들어갈 모양인지 운동복 차림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또는 얼마나 걸어 들어가야 할지 몰랐기에 포인트 로보스를 과감하게 지나치며 다음 행선지인 앤드류 몰레라로 향했다.


빅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구간이 많아 지도나 음악을 미리 다운로드하여두는 것이 좋다. 우리도 지도에 갈 곳을 미리 표시해 두었었지만, 막상 네트워크가 터지지 않으니 길 찾기를 실행하는 것에도 꽤 애를 먹었었다. 그래서 그나마 폰이 터지는 구간이 나오면 주변에 주차를 한 후에 경로를 확인하고는 했었다. 여행 계획을 잘하고 준비성이 있는 그는 우리가 차 안에서 들을 음악을 미리 다운로드해 두었었고, 덕분에 우리는 하와이에서 처음 들었던 말리말리 음악을 함께 들었다.


빅서로 향하는 길에서 첫 번째 사진의 작은 섬과도 같은 경관이 보여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선배가 추천해줬던 앤드류 몰레라에 도착했고, 주차장 이용 금액은 $10였다. 차를 주차하고 보라색 모래를 볼 수 있다는 앤드류 몰레라의 바다를 보기 위해 트레일 길을 밟았다.

 

세 번째 사진의 위태로운 나무다리를 잠깐 건너면 바다로 향하는 트레일이 나오는데 일찍 도착해서인지 아주 간간히 바다 방향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트레일에는 거의 우리 둘 뿐인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을 알아서인지 그와 여행하면 걸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빅서를 여행하면서까지 나는 플립플롭 슬리퍼를 신고 왔고, 20분 정도 걷자 슬리퍼 끈을 따라 발등이 살짝 까졌다. 얼마나 걸어야 바다가 보일지는 예상을 못했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힘들지 않을까 자꾸 걱정했다. 하지만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이는 풍경을 천천히 관찰하며, 나무와 풀에서 나는 냄새가 바람에 섞인 공기를 그대로 마시며, 함께 손을 잡았다가 허리에 손을 둘렀다가 자세를 바꿔가며 오붓하게 걸은 그 시간이 나는 힘들지 않았다. 함께 하는 경험들 중 꽤 다른 경험이었기에 오히려 더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된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하고 걷는 길은 더 길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길에 끝이 보였다. 걷는 것이 지쳐갈 때쯤 바다 냄새를 맡았다. 우리는 드디어 바다와 가까워진 것 같다며, 서로 장난을 칠 때 사용하는 말투(미드 '로스트'에 나왔던 를 흉내 내며 함께 웃었다. 우리는 트레일에서의 많은 시간을 말없이 걸으며 자연을 즐겼는데 이때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할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네 번째 사진이 앤드류 몰레라의 바다인데, 선배가 말했던 보라색의 모래는 아주 소량이 흩어져 있었고, 바닷물에 휩쓸려 모래사장까지 떠밀려 온 해초들 때문인지 파리떼들이 들끓고 있었다. 파리들이 너무 많아 모래에서 앉거나 즐길 수는 없었지만 꼭 와보고 싶었던 바다였던 만큼 한 가지를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이상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라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래사장 위에 흰 나뭇가지들을 모아 세워둔 흔적들이 특이했다.


바닷가에서 20분 정도 머무르며 사진을 찍고 다시 걸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오전 11시쯤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은 들어오는 길보다 짧게 느껴졌고, 우리가 들어올 때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종 “Morning”하며 인사하는 미국인들이 있었고 우리도 함께 웃으며 인사했다.


여섯 번째 사진은 앤드류 몰레라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의 윗 뚜껑을 열고 하늘을 만끽할 때 찍은 사진이다. 이파리들이 춤을 추듯 하늘거리고 구름은 연기처럼 움직이며 흩어졌다 뭉쳤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깐 휴식하며 손을 꼭 잡고 넋을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함께라는 기분은 참 따뜻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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