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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 Apr 29. 2022

채식하는 필라테스인이 채식하는 이유

나는 내 인생의 비타민 캔디형 주인공이 되기를 갈망했다.

좌절해도 망해도 또 일어나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언제나 피부가 맑고 몸은 가볍고 울어도 눈물이 짜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체력이 약하고 뒷심이 부족해 마치 생일 초 같았다. 활활 타오르다 후~ 불면 한 번에 꺼지는

따뜻한 엄마 품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하며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의 밥심으로 그나마 채워졌던 생일 초의 에너지는 아예 불이 꺼져버렸다.

방광염, 질염, 비염, 소화불량, 다크서클, 칙칙한 피부, 좁쌀여드름, 늘어난 모공, 마른 상체에 비해 튼튼한 하체, 스무 살 대학생에겐 과제보다도 무거운 숙제들이었다. 온갖 화장품에서부터 체형을 보완해줄 유행에 맞는 옷, 항생제 약들..


그러다 이런저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채식의 세계로 이끌었다.

편견을 하나씩 부수는 과정이 충격적이고도 재미있었다. 우유는 당연히 키를 크게 하는 줄 알았고 힘내려면 고기는 당연히, 제철 해산물도 당연히 필수 영양소로 꼭 섭취해야 하는 의무였는데 모조리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바나나우유는 바나나향 때문에 맛있었고 닭볶음탕은 엄마가 맛깔나게 버무린 양념 때문에 (그리고 당면 때문에) 맛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나는 우유, 고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편견과 함께 본래 나의 모습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채식에 퐁당 빠지는  좋았는데 헤엄치는 방법을 몰라  힘들었다.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로푸드(Rawfood)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배운 데로 식습관을 하나씩 적용해나갔다. 문제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빵과 디저트로 풀게 되었다.

배운 로푸드 레시피와 유튜브 영상을 참조해가며 열심히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조금씩 즐기려고 만들어 먹는 게 아닌 욕구를 풀어내려고 디저트에 집착하듯 만들고 먹는 나를 발견하니 싫어졌다. 그러니 만들기도 싫어졌다.

로푸드(Rawfood)와 로디저트(Rawdessert)

만들고 감탄하고 사진 찍고 허겁지겁 먹고 나면 허무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오래 고민도 해보고 그냥 대충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안일하게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좋아졌던 피부가, 잊혔던 질염이 다시 스멀스멀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여러 질환들이 다시 시작되자 컨디션에도 영향을 주고 일의 능률에도 영향을 주었다. 거뜬하던 수업들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예민해졌다.

몇 달을 방황을 하다가 여전히 나는 고기와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동물이 친구처럼 느껴진지가 오래되어서 다시 먹으라고 해도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 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채소들을 보니 채소들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마구마구 느껴졌다. 그 에너지를 내가 감사히 잘 먹으면 다시 비타민 캔디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다시 시작해보기로 다짐하고

디저트가 먹고 싶으면 최대한 성분을 따져 먹되 억지로 참지 않기,

채소를 다양한 색으로 구입해 생으로 먹기 힘든 채소는 살짝 익혀먹기,

천천히 먹기,

하루에 두 끼 챙겨 먹기

정도를 지키며 식습관의 변화를 다시 일으켰다.


겨울이 가고 봄이 다시 오듯 내 혓바닥에도 봄이 왔다! 채소들의 고유의 맛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고 에너지가 느껴지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피부가 다시 맑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져 일의 능률이 오르고 각종 염증질환이 사라지고 아침이 개운했다.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이 즐거워졌고 속이 편안하고 끼니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채소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니까!


필라테스로 몸(신체)을 제어한다면 채식은 제어력(에너지)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필라테스와 채식을 합치니 효율은 배가 되었다. 운동하니까 닭가슴살, 소고기 챙겨 먹어야 하고 다이어트하니까 샐러드 아니면 채식을 해야 한다고 하고 세상이 박아놓은 편견이다.

편견을 부수고 새로운 장면을 마주하면 삶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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