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조금 알게 된 슬픔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아기였을 때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아빠의 동생만 데리고 새시집을 가버렸다. 그렇게 아빠는 할아버지 밑에서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다.
내가 처음 만난 아빠는 욕설과 행패, 주변 사람들을 밤새 괴롭히며 자주 술을 마셨다. 폭력적이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지만,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쯤부터였을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야지.’
‘그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도 바르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렇게 우리를,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를 미워했다.
정작 나는 부모 없이 자란 서러움이 어떤 건지도, 그 공허함이 어떤 건지도 모른 채 원망했다.
그리고 어느덧 내 나이 마흔 초중반.
엄마와 아빠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모르게 ‘고아가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고 자식도 있는 내가,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아 막막하고 힘들었다.
그제야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어린 나이에 부모 없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잘 살아보려고 애썼겠지.
공부도 잘해서 대학도 갔고, 그림의 재능도 있어 화가가 되었지만,
아빠 마음속 그 텅 빈 공간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살이가 어디 만만하기라도 한가.
그렇게 힘든 시간 속에서, 아빠가 찾은 유일한 위로가 술이었나 보다.
자신의 슬픔을 알아달라는 몸부림이었을까.
좋은 방법은 아니었기에 우리 가족 모두 오랜 시간 힘들었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그때의 어린 아빠가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나마 내가 이 정도로 바르게 성장한 건,
부모가 내 곁에서 ‘부모’라는 자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거라 착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부모보다 잘난 건 하나도 없는데… 외모도, 재주도, 삶을 살아내는 태도조차도.
그 힘든 삶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고,
그때 내가 조금 더 따뜻하지 못했던 게 미안하다.
이제는 안다.
다른 사람의 고통, 아픔, 힘듦을 섣불리 판단하며
‘적어도 나는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건… 결국, 오만이었다는 걸.
살아보니 알겠는 것들이 자꾸 늘어가는데,
이제는 말해줄 수 없어…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