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때문에 왔다고 해도 혼내지 않을게.
간호학 개론 첫 수업,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그 질문에 모두들 멍...
순서대로 대답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학생들이 한마디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희생과 봉사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언니가 친절해서 닮고 싶었어요.”
“전문직이라서요.”
차례대로 대답을 들으시던 교수님께서 빙긋 웃으시며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사실 그렇다.
나 역시도 간호학과에 입학한 이유는 순전히 취업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심리학과가 너무나도 가고 싶었다. 내면의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 공부하고 싶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상담을 하는 게 내 꿈이었다. 하지만 취업률이 점점 떨어지고 취업난이 지속된다는 소식에 부모님이 극구 반대를 하셨다. 물론 내가 꼭 여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우겼다면 아마 그냥 보내셨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인문계열의 취업은 너무 힘들어보였다. 좋은 학벌도 아니었고. 한 마디로 자신이 없었다. 들어가서 잘 해낼 자신이. 나는 배고파도 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이상주의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 수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일단은 밥벌이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직업을 먼저 갖고, 그 이후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그 때 돼서 내 꿈을 찾겠다고 하면 누구도 말릴 사람이 없을 거야.’
그리고 간호학을 선택한 이유를 좀 더 설명하자면, 간호학은 꽤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한 학문이다. 건강은 평생 사람과 떨어뜨릴 수 없는 주제이므로 조금이라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또 취업이 잘 되니 어쩌면 외국으로도 갈 수 있다. (갈지 안갈지는 모르지만 길을 열어두는 건 좋은 것 아닐까) 게다가 어디든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난리이니, 내가 살고 싶은 도시에 자리 잡기에도 취직이 편한 간호사가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간호사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게 좋았다. 또 기본 페이도 꽤 높은 건 꽤 괜찮은 옵션! 이런 이유들로 간호사 면허증은 내 인생에서 선택지를 많이 늘려줄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도 꽤 훌륭한 계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점만큼이나 감수할게 많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든 장점에는 단점이 따라붙듯 간호사 역시 그렇다.
취업이 잘 된다는 멋진 장점 뒤에는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는 숨은 이유가 있었다.
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숭고한 손길에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무거운 책임이 있음을 늦게 알게 되었다.
반짝반짝 고소득의 멋진 전문직이라는 이미지의 이면에는 빡빡한 근무강도와 근무시간이 숨어있었다.
내가 발령대기중인 병원은 월급이 세후 270정도 된다고 한다. 세상에, 신입에게 한 달에 300만원 가까이의 월급을 지급하는 직장이 얼마나 될까?(대기업에 버금가는 기업병원들은 더 페이가 높음)
하지만 이 월급 뒤에는 하루 평균 12시간(혹은 그 이상)의 초과근무시간과
한달 8-10개 정도의 밤 근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식사를 제대로 챙겨먹기 힘든 근무강도는 덤이다.
나도 반짝이는 간호사의 이면을 깨달으며 방황과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지금이라도 발 빼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기도 수차례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사람에게 치이는 일도 너무 괴로웠다.
또 나의 무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근무강도가 높다는 것도 정말 싫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그런 생각들이 더 자주 들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이 곳에 있다.
하루는 맥도날드에 갔더니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아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어딜 가도 인건비를 적게 쓰려고 인력을 딱 필요한 만큼만 둔다. 무슨 일을 하든 힘은 든다.
간호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무의식적으로 다른 일을 하면 조금 더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 간호사는 괴로운 단점만큼이나 반짝이는 장점이 있는 직업이다.
작은 경험이었지만 환자분들이 나를 보고 웃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그 순간이 정말로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면허증이 가져다주는 (비교적) 여유로운 취업과 높은 페이 또한 나에게는 매력적인 장점이다.
이직이 비교적 쉬워 내가 가고싶은 장소로 떠나도 먹고 살 방법이 있다는 것이 좋다.
그리고 높은 페이는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게 많은 나에게 금전적인 제약을 덜어줄테니까.
간호사가 되면 어떨까 고민하는 고등학생들
내가 지금 계속 이 과에 남아있어도 될까 고민하는 간호학도들
한번 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왜 여기에 지원하고 싶은지.
내가 왜 여기에 지원했는지.
그래서 나중에 제대로 선택했는지 다른 길은 없었는지 후회되고 머리가 복잡해진다면
처음의 마음을 다시 되새겨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