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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Apr 07. 2021

아기가 자랐는데 왜 나는 우울한가

세가지 고민

지난 글에 이어서.


아기가 쑥쑥 자라 13개월쯤 접어들자 심각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기들은 아주 잘 자랐다.


이제 아기들은 둘(남아 쌍둥이)이서도 잘 놀기 시작했다.

서로의 물건을 뺏거나 싸워서 중재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항상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다.

제법 잘 걸어다녔고 집안의 어떤 부분이 위험한지를 깨닫고 피해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전보다 비교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혼자 밥도 잘 먹게 되었다.

아직 숟가락질은 잘 못하지만 손으로는 아주 아주 잘 먹는 아기들이 되었다.

하나하나 떠먹여줘야 했던 과거의 이유식 시절은 안녕...

이제 밥과 반찬을 차려주면 손으로 얼마든지 먹고싶은 대로 먹는 아주 튼튼한 둥이들이다.


잠도 잘 잔다.

많은 눈치게임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제 제법 내공이 쌓여 언제쯤 눕히면 잠에 잘 들지를 파악할 수 있다.

몇가지 신호를 캐치하고 방에 눕히면 둘이서 뒹굴다 잔다.

조금 울다가 자는 날도 있지만...

자기 싫어 찡얼대는 울음과 진짜 엄마를 찾는 울음도 얼추 구분할 수 있다.


가끔은 이제 졸리면 혼자 방에 들어가서 코~ 하기까지...

(물론 안그런 날이 더 많음..)


뿌듯하다. 그간의 결실을 보상받는 듯 매우 뿌듯했다.

이제 제법 키워놨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잘 자라준 아기들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번째 고민

아기들은 더이상 '이전만큼'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여유가 생길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손에서만 자라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학교까지 가게 될테니까.

나는 그에 따라 더 많은 심력을 소모하고 고민하게 되겠지만 

몸은 이전보다 덜 힘들겠지.

나의 시간도 더 생기겠지.


지금은 엄마가 전부인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점점 더 비중이 적어질 것이다.

앞으로 선생님도 친구도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더 자라면 연인도 만나게 되겠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아이들이 많은 일을 겪고, 또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는 법을 배우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고나면?

그 뒤는?

그 뒤는 뭘까?


아이들의 독립?


그래. 무사히 잘 키워 독립시키고 나면 그 다음은?

내 인생은 그걸로 끝인가?


아이를 길러내는 게 목표라면 그걸로 임무완수다.

하지만 아이들이 독립하고도 내 인생은 아주 많이 남았겠지.

그러면 그땐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하나...


흔한 고민이었다.


나는 나를 채울만한 나만의 일이 필요하다 느꼈다.



두번째 고민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가르쳐줘야 할까?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결론은 그렇다.

그건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그걸 내가 특정지을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부모는 자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기를 바랄 터, 나 역시도 그렇다.

많은 긍정적인 가치중에 가장 우선했으면 하는 가치는 '행복'이다.

나는 내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슬프게도, 이 생각의 이면은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자신에게 가장 부족했던 부분, 아쉬웠던 부분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나는 오랜 시간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그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든 아니든 내가 즐겁게 할 수 있고 만족할만한 일이 무엇일지를 말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 10년은 고민한 것 같은데 아직도 명쾌한 답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조금씩 갈피를 잡고 있긴 하다.


어쨌든 나는 나의 행복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 문제를 10년간 고민했다면 나는 앞으로 올 10년도 이 문제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나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마 쉽사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 혼자만 고민하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고 

내 인생의 아쉬움 때문에 

내 자식의 인생에 나의 목표를 투영하게 된다면 그건 더 곤란하겠다 싶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세번째 고민

금전적 여유에 대하여.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곧 일하러 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의 시간이 생긴다면 그 시간을 보다 발전적인 곳에 써야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돈은 점점 더 많이 들어갈테고...

그럼 이제 어떤 일을 할까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제일 쉬운건 갖고있는 면허를 활용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이전보다 워라밸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문제를 여유롭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세가지 고민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니 우울감이 들 수밖에.

그러니 답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내가 만족하는 나의 일을 찾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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