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벗어나 서울로 향하다
그런 나에게 가장 먼저 날아온 기회는 ‘교내 독후감 공모전’이었다.
교내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공모전.
좋아. 이거다!
교내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라 일단 좀 만만해보였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아마 가장 영어 말하기 대회였으면 더 갈등이 커져갔겠지만, 독후감 공모전은 도전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출하면 끝이니까!
지겨울 때도 있었고 잘 써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내 이야기를 담아 독후감을 마무리 지었다.
이 독후감은 내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제대로 끝낸 일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발표된 사실이지만 뜻하지 않게 상도 수상했다.
거의 잊을만할 때 도서관 홈페이지에 과와 이름이 떠서 어찌나 자랑스럽고 기뻤는지!
먼저 교내에서 진행하는 것부터 일단 지원서를 던지고 보았다.
봉사활동, 교내 채플 후기 공모, 교환학생, 아르바이트까지!
적극적인 사람에게는 참 별 것 아닌 이 일들이 나에게는 정말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전에 비해 많이 적극적으로 변한 내가 꽤 만족스러웠다.
나는 가장 안에 있는 내 틀을 깬 것이다.
그 뒤로 도전했던 것들은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내심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도전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성취감을 안겨주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도전은 계속 이어져 교외 활동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다.
하루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그때는 국가장학금이 처음 도입된 때였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공고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지도자 멘토링 프로그램이었다.
사회 지도계층의 멘토 1명이 대학생 멘티 10명을 데리고 진행하는 멘토링 프로그램.
약 300여명의 멘토가 함께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이었다.
멘토들의 이력도 대단했다.
마케팅, 경영, 자기계발 등 여러 가지 부서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성공한 멘토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대학에서는 좀처럼 찾아뵙기 힘든 분들이 멘토로 모셔져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활동을 하시는 멘토님은 얼마나 깊이가 깊으실지. 또 같이 모인 멘티 들은 어떤 사람일지! 나도 이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이 마구 솟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병원 관련 카테고리는 없었고 간호사 멘토는 더더욱이나 없었다. 더 안타까운 건 부산에서 만날 수 있는 멘토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에 비하면 서울에서 활동하시는 멘토님은 정말 많았다. 거의 대다수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 어떡하지.
이거 진짜 하고싶은데.
음...
그래. 굳이 부산에서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이것만 봐도 부산이 얼마나 좁은지, 서울에 얼마나 자원이 많은지는 충분히 알겠네.
서울로 가자!
가면 되지!
그렇게 새로운 열망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저렇게 큰 프로젝트에 어떻게 우리가 뽑히겠냐며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2학년이 얼마나 바쁜데 저런걸 할 여유가 있겠냐고 걱정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안되면 말고 하는 생각으로 꿋꿋히 작성하고 제출했다.
결과는 합격!
그렇게 지도자 멘토링 3기에 선발되었다.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진행된 첫 발대식을 첫 발대식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이름이 적힌 목걸이와 팀별 티셔츠를 받으니 꽤 거창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뭐 하나 하고 있구나 싶은 기분!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틀을 깨부수었다.
나로서는 정말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도전을 했고, 기회를 얻었다.
3기 멘티들은 나름 경쟁을 제치고 선발된 멘티들이었고, 그 중에는 몇 해 째 도전해서 이제야 선발된 멘티도 있었다. 그리고 멘토님께 정말 함께 하고 싶었다고, 선발되지 못해 안타깝지만 인사라도 드리러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나는 못한다는 생각에 갇혀 이것저것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시작을 여는 것임을 나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1년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1년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소개서에는 멘토링을 시작할 때 성취하고 싶은 목표를 기술하라는 칸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서울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작성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내심 지방에 남아있는 내가 부끄러워 열등감을 느꼈다.
서울은 뭐가 달라도 다를거라며 서울로 가지 못한 스스로를 깎아내리곤 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강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1년을 보내며 나는 서울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말이다.
나에게 서울은 단순히 멘토링을 위해 방문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서울이 좋았다.
서울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기회가 적었고,
나에게는 오로지 나의 꿈과 성취가 존재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정말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멘토링을 위해 올라온 김에 여러 명소를 둘러보았다. 또 부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다녔다. 서울은 확실히 넓었고 부산에서 볼 수 없었던 물건이나 사람들도 많았다. 나보다 발달된 좋은 사례를 보는 것은 확실히 좋은 기회였다.
강남역 카페에 앉아있으면 유창한 외국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세대학교 교정을 걸으면 외국인 유학생과 함께 어울리는 학생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더구나 스케일이 다른 연세대학교 아카라카는 정말 문화충격이었다.
생소한 장면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직접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렇게 나의 영역을 벗어나 과감히 넓은 땅으로 향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성장하는 나를 바라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성취감이 들었고 자신감이 생겼다. 가슴이 뛰는 경험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더 큰 도전을 꿈꾸게 되었다.
1년간의 멘토링을 통해 얻은 것은 성취감, 자아 효능감 그리고 도전정신이었다.
멘토링이 끝날 때쯤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은 작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허물을 벗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몇 개의 허물을 벗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허물을 벗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끊임없이 허물을 벗는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마침내 멋진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펼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