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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Mar 03. 2022

8시 육퇴를 위한 수면 여정

 수면 습관 잘~ 잡혀 있던 25개월 아기가 낮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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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낮잠을 거부한 게 아니라 '잠'을 거부한 것이었다. 낮잠 뿐만 아니라 밤잠도 거부하기 시작한 것... 둘째는 "코 시여~"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가져 오고 놀고 싶어 했다. 처음엔 습관 잘 잡아야겠다 싶어 단호하게 안된다고도 하고 방에 책이나 장난감을 못갖고 들어가게도 해보고 거실 불을 다 끄고 부부가 함께 아기방에 들어가 누워있기도 해봤다. 그렇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낮잠 시간에 안자고 씨름하다 늦게 자면서 수면시간이 밀리는 일도 생겼다. 그러다 결국 울면서 잠들거나 토닥이며 힘들게 잠드는 일도 생겼다. 원랜 방에 눕혀두면 쌍둥이 둘이서 조잘대다 스르륵 잠드는 평온한 일상이었는데...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와 잠이 오는데 분위기상 잠 못드는 아이와 괴로운 부모의 환장할 콜라보가 밤마다 이어졌다. 늦게 잠드니 더 늦게 일어났다. 이전엔 일찍 일어나는 패턴이라 어린이집 차량 시간도 일찍 맞춰두었는데... 더 악순환의 고리를 타기 전에 끊어야 했다.


우리 생각엔 둘째의 체력도 이전보다 더 생긴 것 같고, 놀이의 즐거움도 큰 것 같았다. 그리고 잠을 억지로 자게 되면서 점점 더 거부가 심해지는듯 했다. 그래서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차근차근 변화를 주기로 했다. 일단 체력을 정말 많이 소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아이 둘을 다 태우고 지하철을 이용해 근처 백화점의 야외공원을 갔다. 공룡 컨셉으로 너무 잘 꾸며놓은 공원이 있는데 주말에는 사람이 정말 많은 편이다. 오늘은 평일이고 어린이집 개학도 했을 시기라 오전시간엔 사람이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출발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처럼 사람도 정말 없는 날이었다. 넓은 정원을 쏘다니고 구경하며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다.


 한 네시간을 놀았더니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웨건에 앉은 채로 쓰러져 잠들었다. 나란히 넉다운된 모습에 오늘 하루 나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아주 뿌듯했지만 나도 눈이 감겨 괴로울 지경이었다. 이대로 집에 가서도 낮잠을 쭉 자주면 그것도 좋겠지만... 난 믿지 않았다. 분명 집에 가면 다시 깰 것이었다. 마음을 놓아선 안되었다. 마음을 놓고 아이들의 낮잠시간동안 나의 휴식을 기대하다 틀어지면 그 이후론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긴장을 놓고 퍼져버린 몸은 다시 추스리기 힘들고, 육체적 피로는 정신적 피로를 낳을 터.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 뻔한 상황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 쉬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해서 방으로 옮기던 중 개운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는 둘째와 눈이 마주쳤다. 모두 예상하고 있던 바, 잘 잤냐고 물어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개운하게 잤는지 빙긋 웃는 둘째. 아, 웃프다. 


 결국 둘 다 깨버렸다. 미처 못 씻겼던 손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았다. 아주 상쾌해보였다. 배가 고픈지 간식을 찾기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대령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행복한 아이들은 너무 귀엽지만 정신적 행복감과는 별개로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무거운 웨건을 끌고 이동한데다 아이들이 행여 다치진 않을까 집중하며 놀아준 터라 피로가 엄청 쌓인 상태였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파에 잠시 누웠다. 곧 둘째가 책을 가져와 내 옆구리에 쑤셔넣으며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지만 엄마가 영 불쌍해보였는지 혼자서 소리내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모른척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그러자 내 손가락에 반지를 슬그머니 빼보더니 히히 웃었다. 자기 손가락에 넣어보길 두어번 하더니 다시 내 손가락에 다시 끼워주었다. 그리고는 첫째와 책을 가지고 놀다가 서로 갖겠다며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짧은 15분의 휴식이었지만 그래도 훨씬 나았다. 일어나 아이들을 중재했다. 그리고 삼십분 더 놀던 차에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웨건에서 잔 것도 잠이라고 밤에 안자면 어떡하지? 오늘 낮에 놀고 온 시간이 수포가 될 순 없어!'

 다시 옷을 입혔다. 자, 이제 놀이터로 갈 시간이야!


그렇게 오늘 둥이들은 무려 6시간이나 밖에 있었다. 내 몸은 빠질 것 같았지만 아이들은 행복해보였다. 그 이후론 남편에게 토스했다. 집에 와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씻고나니 벌써 8시였다. 방안에서 가볍게 놀아주다가 이제 문 닫고 나가려고 하니 둘째가 울면서 쫓아왔다. 그래서 물병만 밖에 살짝 두고 다시 들어갔다. 낮에 많이 피로하게 놀아 그런지 평소처럼 하이텐션으로 또 놀자고 하지 않고 같이 누워달라고 했다. 인형을 찾아 누워보라고 가벼운 지시를 하니 잘 따랐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이불을 덮어주고 함께 누웠다. 아이들은 일어나지 않고 누운채 남편을 만져댔다. 첫째는 손, 둘째는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스르륵 잠들었다. 누운 시간부터 약 15분만에 잠이 들었고 움직임이 사라졌다. 깊은 잠으로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무사히 아기방을 나왔고 아직까지 잘 자고 있다.


 직접 해보니 최대한 피로한 상태를 만들어 수면 시도 30분 전에 잠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 이상 길어지면 체력을 충분히 소진하지 않았거나 과하게 들뜬 상태가 되어 잠들기가 어려운 듯 하다. 함께 놀아주는 부모의 체력도 잘 비축해두는 게 포인트.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면 짜증도 덜 내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참 잘 자는 편이었지만 사실 이만큼 오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잠투정도 물론 있었고 습관 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둘이라 더 어려운 점도 컸다. 잘 자다가도 아이가 자라며 패턴이 변하고 잠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제는 아이가 자랐구나 싶다.


내일은 둥이들의 새 어린이집 첫 등원. 적응은 잘 하리라 믿지만 적응기간이 너무 길어 그동안 준가정보육같은 느낌의 3월이 될 듯 하다. 내일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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