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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Mar 07. 2022

내가 부족해서 아이를 망쳐버릴까봐 걱정돼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들은 참 걱정이 많다.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그 영향이 아무런 잘못없는 순수한 아이에게 간다는 사실이 너무 걱정스럽기 때문일 터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기들은 훅훅 자라는데 그에 맞춘 적당한 장난감과 교구를 제공하지 못해 혹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항상 걱정했다. 그래서 개월수별 장난감을 매일 검색하고 비슷한 월령의 다른 아기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또 어느 정도로 발달했는지를 수시로 체크했다. 아기들이 돌 쯤 되었을 때,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직장 동료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 키우느라 많이 힘들고 바쁘겠다는 질문에 나의 걱정을 털어놓았다.


 "사실 몸 힘든건 애들이 순해서 괜찮아요. 그런데 아이를 제대로 잘 키우고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비슷할 월령의 다른 아기들은 책도 가져오고 그런다던데 얘들은 책은 씹어먹기만 하고... 작은 애들인데 챙겨줄 건 왜이리 많은지. 애들 금방 크니까 발달 개월수 따라서 장난감도 다양하게 필요하고... 그거 알아보는데 하루가 다 가요. 그러고도 불안해요. 애가 빼어나게 잘나진 않아도 본인 타고난 역량만큼은 자라야 할텐데... 제가 부족해서 그 역량만큼 아이를 키워주지 못할까봐 불안해요."


 그 분은 돌 안된 아기에게 무슨 교육이냐며 난색을 표했지만 당시엔 정말로 불안했다. 아기를 낳기 전이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육아는 너무 미지의 세계였고 아기는 너무 순백의 상태였다. 내가 색칠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순백의 스케치북. 물론 조금 자라면 스스로 스케지북을 채워나가겠지만 지금은 엄마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돌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구나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엄마가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기는 생각보다 스스로 자라는 힘이 강했다. 전문가들은 흔히 세 돌을 기준으로 많이 얘기한다. 세 돌까지 신경을 전달하는 시냅스가 발달하며, 그 시냅스를 발달시키기 위해 많고 다양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자극을 엄마가 챙겨줄 필요는 없었다. 

 아기는 스스로 성장하는 힘이 강했다. 자극이 필요한 만큼 스스로 자극을 취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했다. 아기들은 무조건 입으로 다 가져가서 빨고 뜯고 하지 않는가. 아기들은 스스로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자극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내 생각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쥐어주는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다.


 나의 주 고민은 아기들이 책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책을 물고 뜯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그렇게 책육아 책육아 하는데 나는 그 책육아의 발끝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아기들은 책을 내용을 보지 않고 물어뜯거나 던지곤 했다. 분명 비슷한 월령의 다른 아이는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본다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뭘 못해서 그런걸까 자책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이를 유도하지 말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조해주세요."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안다. 지금 어떤 감각을 발달시켜야 하는지도 안다. 내 아기들이 책을 물어뜯고 던지는 건 책 속 내용을 보고 익히는 것보다 당장 책의 질감이나 물체를 던지는 행위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는 건 충분히 직접 행동 해보고 탐색 해봐야 해소가 된다. 못하게 하고 다른 활동으로 유도하는 것보단 그 활동을 충분히 해보게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 활동을 한 아이는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다. 순백의 스케치북을 그리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스케치북을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말이다.

 그 깨달음을 얻은 뒤로는 아이를 유도하기 보단 보조하는 데 집중한다. 아이가 어떤 것에 관심이 많고, 어떤 상태인지를 유심히 관찰하며, 발달 단계에 따른 적절한 가이드를 공부하고 적용한다. 그럼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돌 때까지는 참 혼란스럽고 불안해하며 아기를 키웠다. 엄마가 된 것도 처음, 그렇게 어린 아기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혼란의 시기를 지나가며 나만의 육아관이 자리 잡히면 좀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육아를 즐기게 되었다.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은 당연하지만 그렇게 많이 겁 먹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스스로 자라는 힘이 강하며, 보통의 가정이라면 일상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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