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는 친언니가 있다. 그리고 우리 언니는 보아를 좋아한다. 어릴 때 강원도를 가기 위해 산을 넘어가며,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라는 곡의 리듬과 함께 자동차도 이리저리 넘실댔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라고 들었다.
그리고 2020년 8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는 볼빨간사춘기라는 가수에 의해 커버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었고, 중학생 때부터 듣던 볼빨간사춘기 특유의 음색을 여전히 좋아했다. 커버된 곡은 내가 듣기에 너무도 좋았고, 나는 그 노래로 인해 원곡을 찾아 듣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 귀엔 볼빨간사춘기 버전이 좀 더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아틀란티스 소녀'처럼 노래의 가락과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창법은 변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어느 정도 편곡이 되지만 노래 가사에 담긴 시대를 거스르는 감성은 이어진다. 2,30년의 차이는 분명하게 한 세대로 엮을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곡 하나로 충분히 이어지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내가 볼빨간사춘기의 커버곡으로 보아의 원곡을 듣던 언니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던 것처럼.
사람들은 종종 커버곡의 가치를 무시하고 원곡만 찬양하거나, 원곡은 옛날 곡이라며 리메이크된 것이 훨씬 요즘 감성이라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대 차이를 느끼고 세대 간 간극을 상기시키며 차세대와 현세대가 교감할 수 없는 것 마냥 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음악적 우열 문제를 뒤로하고, 원곡이 커버되는 과정 또한 문화의 전승이라고생각한다.
과거에 서로 다른 지역의 아리랑을 부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 지역에서 만나게 된다면 서로 자기 지역의 아리랑이 곧 진리고 진짜 아리랑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모인 각 지방의 사람들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아리랑은 진도아리랑이든 밀양아리랑이든 모두 아리랑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고 우리가 자랑할 전통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원곡과 커버곡의 우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산물이 보란 듯이 미래로 계승되었다는 점이다.문화란 어쩔 수 없이 국경과 시대의 영향을 받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우리를 미래로 이끈다.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도 이러한 것과 같다.
대중음악이 예술인지 상업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결국 명곡이라는 것은 커버되더라도 차세대에게 공감받고 사랑받는 곡이다. 한 세대에게만 사랑받고 후대에 전승되지 못하는 문화는 결국 잊힌다.
과거에서부터 쭉 나타났던 현상 중 하나가 있다. 바로 거의 한 세대만 향유했던 특정 문화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야기함으로써 향수를 느끼고 그 세대 간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내집단 간의 소속감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대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외집단으로 밀어버리는 행위이다.
인류는 시대를 뛰어넘는 문화를 통해 이어진다. 그렇게 사상과 지식과 아름다움은 전승된 뒤 변화한다. 역사는 전승되어야지 비로소 미래를 향한 도약이 된다. 애초에 다른 동물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부족한 인간이 생태계의 정점에 오르도록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계승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밈(Meme)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했고, 이것을 쉽게 풀어준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세대 갈등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듯 좋아하는 곡이 커버되는 현상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후대에 전승되는 걸 막는 길이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가 도래하여 쉽게 소비되고 쉽게 잊혀지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더욱 그 많은 콘텐츠 중에서 자신이 향유한 문화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뉴비' 유입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유입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오래된 곡에 있어서는 현재의 대중 입맛에 맞는 편곡과 현 유명 가수의 커버곡인 셈이다.
유행하는 문화는 '빨리빨리' 바뀌고, 세대갈등은 점점 심해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성숙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