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날씨가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산책을 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날의 오후 3시 50분, 걷다 보니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등굣길이었다.
횡단보도 반대편, 나보다 대여섯 살 즈음 어린 중학생들이 우르르 모여있었다. 파란 불은 금방 켜졌다. 횡단보도에서 그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나 많은 중학생들 중 나를 알아보는 이는 물론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이 당연한데도 괜스레 시원섭섭했다. 내가 저 교복을 입고 있을 땐 중학생들의 키가 이렇게 작은 지 몰랐는데. 어느새 난 이렇게나 커버린 걸까? 해봤자 아직 스무 살인 사람이 하기에는 다소 우스운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사회적으로 많든 적든, 나는 점점 그 시절의 나와 멀어져만 간다. 우주가 지금도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것처럼.
그 날 산책에서 찍은 중학교 사진
물론 난 나이를 먹는 것이 그다지 서글프진 않다. 내가 아직은 어려서 그런 거라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하면 얼마나 인생살이가 서글퍼지겠는가. 니체 철학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긍정심리학이 말하듯, 날 힘들게 하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힘 그 자체인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중학생의 내가, 고등학생의 내가, 살아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나'들이 지금의 나를 위해서 살아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떨쳐낼 수 있다.
사실 난 중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이 많이 없다. 과거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인데도, 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난 그때 나름의 상황과 감정에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난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의 모든 괴로움과 불안과 나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를 미워하진 않는다. 그때 나를 괴롭혔던 모든 인연조차 나의 성장의 토대가 되어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힘든 일들이 어떻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줄지, 어떻게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지 생각하면 마음이 설렐 정도이다.
내 장래의 직업 목표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모교에 우선 배치되는 편이니, 나는 결국 내가 졸업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아직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멋진 어른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직 성장 중인 학생들에게 지식 외에도 보고 배울 점이 있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