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원이라는 이름은 나의 필명이다. 굳이 이러한 이름을 붙인 이유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를 부여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영원'이기 때문이다.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시 이름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사대주의는 아니지만, 나는 해외의 '미들 네임' 문화가 조금 부럽다. 원한다면 어머니의 성을 붙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붙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한 개인을 특정 짓는 그 사람만의 개성이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한 살일 때 부모님 등의 의사로 멋대로 지어지는 것이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게 개인에게 중요한데도, 자신의 의지는 반영되지 못한다. 이름이 사회적인 시선에서 이상하거나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개명도 꺼려진다. 게다가 성씨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내가 스스로를 정의 내리고, 내가 원하는 울림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윤영원'이라는 이름을 만드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동안의 내 삶을 녹여낸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원이라는 단어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먼저, 한자어라서 중국과 일본식 발음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여태껏 그래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그 모든 국가 간의 이해관계와 역사적 아픔을 초월하여 우리를 한자 문화권이라는 영원한 틀로 잡아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또한 永遠이라는 한자의 형태도, 영원이라는 한글의 형태도 내 눈에 너무도 아름답게 인식된다. 한자로 썼을 때 부수 水와 辶가 흘러가듯 이어지는 것도 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한글로 썼을 때의 영원은 초성일 때의 음가가 존재하지 않는 'ㅇ'으로만 초성이 이루어져 있는 글자이고, 종성조차도 'ㅇ'의 부드러움과 'ㄴ'의 단호하면서도 다정한 마무리 발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원은 끝없이 존재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지만, 불교 사상에서 말하듯 실제로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조차도 50억 년 뒤면 폭발하여 지구를 집어삼킬 예정이지 않는가.
이처럼 무한히 이어지는 것을 뜻하면서도 그 무엇도 감히 영원이라는 수식어를 가볍게 붙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원은 꽉 차있지만 공허한 단어이다. 역설적이고, 그만큼 매력적이다. 손에 닿을 수 없을 만큼 허황되지만, 그렇기에 꿈꿀 가치가 있는 개념이다.
나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역설처럼, 영원을 쫓는 인간들도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해, 영원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영원이라는 단어에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렇다. 그들은, 우리는 언젠가는 오고야 마는 끝을 향해 오늘도 달려가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일이 올 것을 믿는다. 그런 우리의 용기와 꿋꿋함, 무지야말로 무언가가 영원하도록 세대를 이어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만 같다.
그러한 어떤 영원한 것을 만드는 게 내 꿈이다. 당연히 진짜 영원하진 않겠지만, 영원이라고 인간들이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이어질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가고 싶다.
아니, 사실은 우리 모두가 사는 동안 하나의 자그마한 영원을 남기고 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지식, 예술, 문화, 신화, 철학 등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무언가와, 다음 세대 그 자체를 남기고 간다.
내가 남길 영원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