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뭐 드릴까요
비행기에 실리는 음료 중 하나인 과일주스, 가장 기본인 오렌지 주스 외에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른 게 실린다. 핀에어는 빌베리 주스라고 블루베리 비슷한 맛 나는 보라색 주스가 있고, 어린 시절 처음 마셔보고 너무 신기했던 대한항공의 구아바 주스며, 미국 항공사들은 또 크랜베리 주스가 인기기 좋은 것 같다. 우리 회사 이코노미 클래스에는 오렌지 외에 사과, 토마토 주스가 실린다.
토마토 주스 하면 일단 내 머릿속엔 누군가가 사들고 온 “가야농장” “자연은” 선물 세트에 하나씩 들어있던 토마토 주스병이랑 생과일주스 가게에서 파는 시럽 듬뿍 넣은 달달한 그 맛이 떠오른다.
그런데 유럽 미국 등 서양의 토마토 주스는 한국 제품보다 훨씬 더 짜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주스라기 보단 진득한 토마토 수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 엄마 왈 파스타 소스 같던데~
음료 뭐 드릴까요?
라고 했을 때 토마토 주스 주세요라고 대답하는 승객들 중
이미 짠 토마토 주스에 소금 후추를 같이 달라고 해서 섞어 마시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일인이다. Tomatensaft mit Salz und Pfeffer.
비행할 때마다 정말 많은 독일인들이 토마토 주스를 시키고, 소금 후추를 꼭 달라기에 유럽 사람들 전부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한번 어떤 유럽인 커플이 토마토 주스를 달라해서 자연스레 “with salt and pepper?” 하니 깜짝 놀라며 ”what do you mean?”라고 되물었다. 독일인 승객들은 대부분 소금 후추 타서 마셔서 물어본 거야 하니, 자기네는 포르투갈 사람인데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것도 참 신기했다. 최근 몇 달간은 내가 에어 프랑스 다니나 헷갈릴 정도로 프렌치들을 많이 태웠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또 토마토 주스 자체를 거의 안 시키는 분위기다. 같은 유럽 대륙 안에서도 국가별로 차이가 큰 것 같다.
그리고 토마토 주스에 보드카를 섞은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를 달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나에게 말하는 영어 발음에서부터 미국인인 게 티가 나긴 하지만 블러디 메리 주문하는 걸로 확신을 가지고 You are American right? 하면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본다. „ well Germans don‘t drink bloody mary that much “ 가 나의 대답. 독일인들은 토마토 주스 자체만 즐겨 마시지 술로는 또 안 마시는 것 같다. 셀러리 꽂고 올리브랑 칵테일 새우 데코해서 마시는 내 사랑 블러디 메리~ 미국에선 브런치 식당이며 바 등에서 굉장히 흔한데, 독일에서는 블러디 메리 파는 곳도 드물고 찾아마셔도 미국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서양인들이 연령대 상관없이 토마토 주스를 마시는 편이라면 토마토 주스 시키시는 한국분들의 경우 대부분 건강 챙기시는 중장년층으로 보인다.
입사 초반에는 토마토 주스 달라는 한국분들께 한 컵 가득 따라드리곤 했다. 제가 또 술 포함 음료 넉넉하게 잘 드리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한 모금 마시고 “우웩 죄송한데 저 다른 걸로 바꿔도 돼요?” 하는 걸 보고 토마토 주스 달라는 대답에 말 몇 마디를 덧붙이게 됐다.
한국 거랑 맛 다른데 괜찮으세요? 좀 짜요~
조금만 드릴 테니 드셔보시고
괜찮으시면 더 따라드릴게요~
이 말 듣고 오케이 하시면 딱 한 두 모금 양으로 따라서 드리는데, 마시고 괜찮은데? 하며 더 달라시는 분 절반, 아.. 승무원님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네요 하고 다른 걸로 바꾸시는 분들 절반이다.
간간히 먼저 토마토 주스에 소금 후추 같이 달라고 하시는 한국분들이 있다면 바로 교민분들이다. 아무래도 독일에 오래 사셔서 독일 스타일이 익숙하신 것 같네요.
이 글 마무리하는 동안 비행이 있어서 우리 승객들 어떻게 드시나 혹시 좀 달라진 게 있으려나 하고 지켜봤다. 역시나 독일인 승객은 다들 토마토 주스에 소금후추를 쳐서 드셨고 토마토 주스 시키신 한국분들 절반은 리턴하고 다른 걸 시키셨고 절반은 어머 신기한 맛이네요 하고 좋아하셨다.
같은 음료 하나 두고 사람들 반응이 다른 게 신기하다. 승무원 안 했으면 몰랐을 일 중 하나다. 다른 동료들 말로는 런던이랑 이스라엘 비행에서도 토마토 주스가 끊임없이 나간다는데, 이 두 데스티네이션은 가본 적이 없어 보고서에 쓸 수가 없는 게 아쉽군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