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쇼
비행기 탈 때 신나는 것 중 하나 기내식.
항공사마다 다르겠지만 중장거리 비행 (6시간 이상)의 경우 제대로 된 식사 외에 가벼운 간식이 한 번 더 제공된다. 피자빵,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주먹밥 등등 다양하지만 한국 사람들 머릿속에 비행기 간식이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컵라면!
나도 어린 시절 비행기 탈 때는 라면 먹을 생각에 신났었는데 승무원 되고 나서 보니 정말 달갑지 않은 존재다.
우리 회사의 경우 갤리(주방)에 라면을 놓고 원하시는 분 오셔서 드세요~ 가 아니라, 컵라면이랑 뜨거운 물 담긴 팟을 들고 캐빈으로 가서 서비스를 했다.
손님은 많고 주전자는 몇 개 없으니 주방에서 뜨거운 물을 계속 날라야 했는데 물 주고받다가 나도 동료들도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손님이 먹다가 쏟는 경우도 다반사. 우리나라 모 항공사에선 큰 화상 사고가 나서 이슈였죠?
이것 말고도, 똑같은 라면 나눠주는 건데 매워서 못 먹겠다고 바꿔달라는 서양인들, 밍밍하다고 더 매운맛없냐고 물어보는 한국인들..
또 기내에서는 압력 때문에 물이 최대로 끓어봤자 85-90 도 정돈데, 한국인들은 알잖아요 이 온도 라면 온도 아니라는 걸~ 미지근하다고 물 다시 해달라는 분들도 엄청 많았다.
또 우리 회사는 서양인 승무원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살면서 컵라면을 몇 번이나 먹어봤으려나, 딱 눈금까지 물 붓는 거야 서비스 시작 전 백번 말했는데도 어떻게 하는 건지 물이 너무 많다/적다고 다시 해달라는 승객들
정말 각양각색으로 힘들었다 ㅋㅋㅋ
뒤처리도 만만치 않았다.
먹다 남은 국물 버리면서 흰색 유니폼엔 물론 손이랑 눈에 튄 적도 있고, 젓가락이 쓰레기봉투를 찔러 국물이 주르륵 다 샌 적도 있고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코로나를 겪으며 위생, 안전 문제를 이유로 컵라면 자체가 사라졌다. 간간히 승객들이 어 여기는 라면 없어요? 하고 물어보시는데, 비행기 오래 타면 나도 얼큰한 라면 국물이 절로 생각나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들 생각하면 사라진 게 속이 다 시원하다.
모든 항공사가 라면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챙겨 온 컵라면 물 부어드리는 건 대부분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비상 간식으로 들고 타는 짐에 하나 넣어가셨다가 한번 살짝 부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