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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일기] 퍼스트 클래스

누가 탈까요 퍼스트 클래스

by 플라워수


오랜만에 해가 뜬 베를린

얼마 전부터 다시 퍼스트 클래스가 있는 기종을 타게 됐다. 전 세계 항공사 대부분 비즈니스, 이코노미 클래스만 있는 비행기를 띄우는 추세라 내가 마지막으로 퍼스트 클래스 기종 탄 것도 한 5-6년은 된 것 같다. 오랜만에 타는 기종이라 이것저것 둘러볼 게 많은데 특히 퍼스트 클래스 구경하는 게 참 재밌다. 묵직하고 우아한 접시, 커트러리 등 식기류랑 디테일 살아있는 소금 후추 같은 제품들이며 와인도 잘 못 보던 거 실리니까 쓱 구경하면서 공부도 좀 하고... 또 애피타이저랑 디저트가 참 맛있거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본식으로 나가는 뜨거운 식사(핫 밀)는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비슷한 느낌. 비행기를 너무 오래 탄 건지 맛도 냄새도 다 그냥 그렇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이 제일 맛있는 11년 차 승무원 나야 나


우리 회사 퍼스트 클래스는 유럽인들이 주 고객이라 한국분들이 잘 없어서 어쩌다 한국인 손님이 타면 참 반갑다.



나는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하지 않는 포지션이지만, 승객 리스트 보고 퍼스트 클래스에 한국인이 있으면 내가 이코노미던 비즈니스에서 일하던 사무장한테 ‘나 한국 승객한테 인사하고 우리 비행기에 한국인 승무원 있다고 말하고 올게~’ 한다. 사무장들은 당연히 고맙다고 엄청 좋아하고요~ 옛날 옛날에 내 비행 퍼스트 클래스 타셨던 나이 지긋하셨던 한국 승객 한 분이 영어랑 독일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셔서 거의 그쪽에 있었던 적이 있어서 그 후로 생긴 버릇이라고나 할까요?


어느 날 갔던 비행에서 퍼스트 클래스에 딱 한 명 눈에 띄는 한국 이름~ “안녕하세요~ 탑승을 환영합니다~ 퍼스트 클래스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한 명도 없고 저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일하고 있으니까 혹시 영어나 독일어 도움 필요하시면 다른 크루한테 저 불러달라 하심 돼요~” 이러고 인사를 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1960년대 초반부터 독일에서 유학 오셔서 정착하신 분이었다. 당연히 나랑은 비교도 안 되는 독일어 레벨 ㅋ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네요 히히 하니까 그래도 너무 고맙다며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됐다.

처음 유럽 와서 고생하셨던 얘기며, 한국 들어갈 때마다 정말 많이 발전해서 참 뿌듯하시다는 얘기, 처음으로 독일-한국 직항 생겼을 때 얼마나 신이 나셨는지 등 하시는 말씀이 역시 한 5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셔서 사시는 우리 친척 할아버지랑 비슷해서 우리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참 이민 1세대들은 어디서든지 고생 많이 하셨구나 싶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 밀려오고~

피곤할 텐데 당신이랑 얘기하는 동안이라도 좀 앉아있으라 하시고 앞으로도 건강 챙기면서 비행 재밌게 잘하라고 좋은 말씀도 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또 최근 비행에서도 퍼스트 클래스가 있는 기종을 탔는데 어머나 린킨 파크 모 멤버가 거기에 탑승했다. 7시간이 채 되지 않는 중거리 비행이었는데 피곤했는지 비행 내내 꿀잠 주무시다가 내린 분.


승무원이라고 했을 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어느 클래스 승객들이 더 진상이냐.. 가 있는데, 재미없는 대답이지만 퍼스트 클래스는 위에도 썼듯 내가 항상 타는 기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맡은 포지션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승객들을 만나보지 못해서 나는 좋은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날의 퍼스트 클래스 승객 한 분께서 11시간 비행 내내 코를 파서 잡수셨다는 얘기 밖에 할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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