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행일기] 청량음료가 뭐예요?

한국인 승객들이 보여주는 한국의 변화

by 플라워수


인터넷 덕분에 엄지 손가락 두 개로 베를린 지하철 안에서 제일 핫한 한국 맛집 뭔지 구경할 수도 있고, 승무원 일 하며 외국 사는 다른 교민들보다 자주 한국에 가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한국 살 때만큼 한국 돌아가는 사정을 알기가 쉽지 않다. 실감이 잘 안 난달까? 아니면 바이럴 인가 의심 될 때도 있고?


한국 요새 유행이 뭔지 사람들 관심사나 성향이 뭔가 확실히 알려주는 나만의 지표가 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바로 한국 비행에 탑승하는 한국인 승객들. 거주지 나이 성별 연령층 다양한 한국 분들을 동시집약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 아니겠어요.


기내 방송하는 중



요새는 기내 엔터테인먼트보다 본인 전자기기를 점점 더 많이 쓰는 추세다. 많은 손님들이 미리 다운로드하여온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로를 보는데 특정 시기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들이 있으면 아 요새는 이거구나~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폭삭 속았수다, 흑백 요리사, 솔로지옥 보시는 분들 많은데 그래도 제일 핫했던 건 전청조 사건! 넷플릭스보다 유튜브 다운로드해온 걸 보는 승객이 많던 것도 한 줄 건너 한 줄 꼭 보는 사람이 있던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행들끼리 그 주제로 열심히 대화도 나누시더라. 일하면서 나도 너무 궁금해서 귀 쫑긋 눈 번뜩 장거리 12 시간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네요.


십 년 전 나 처음 비행 시작 했을 때만 해도 한국인 승객들에게 와인이란 레드가 전부였는데 최근 3,4 년간 이코노미고 비즈니스 클래스고 화이트 와인을 찾으시는 분들이 더 늘어났다. 적포도주 찾으시던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조차 점점 화이트 와인 달라는 게 너무 신기해서 기사 찾아서 따로 글 썼던 적도 있다.

한국 사람들 취향이 더 다양해지고 와인 세계를 탐방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화이트 와인 러버인 나는 이 변화가 너무 반갑다. 한국 수입 와인 가격도 낮아지길 사심 품어서 한번 바래본다.


한국 남자 외국인 여자 국제커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 반대인 한국여자 외국인 남자 커플에 비해 숫자는 턱없이 적지만 오랜만에 비행 같이한 동기랑 “우리 입사 때보다 확실히 늘었지?” 하며 입을 모았다. 인종이나 종교도 다양한데 개인적으론 한국남자분이 히잡 쓴 여자분이랑 유럽으로 가는 내 비행기 손님으로 타셔서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국 여자분이 무슬림이나 아랍 남자분 승객이랑 같이 커플로 타신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유럽 항공사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외국인 남자, 한국인 여자 커플은 비즈니스 석에서도 항상 보이는데 아직 한국 남자 외국인 여자 커플을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본 적은 없다. 이것도 신기하죠?


기장이 밀라노 공항에서 사왔다고 나눠준 빵


글 제목인 청량음료는 어디서 나왔냐면, 우리 회사는 이코노미 클래스에도 메뉴가 나간다. 식사랑 물 탄산수 맥주,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과일 주스 그리고 청량음료라고 한국어로 적혀있다. 그날도 열심히 음료 어떤 거 드시겠어요 하는데 14살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청량음료가 뭐예요?” 묻는 게 아닌가. 생전 처음 듣는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아 청량음료.. 탄산음료요! 콜라 제로콜라 사이다 있어요~”라고 안내를 했다. 아 그럼 사이다 주세요! 하고 받아갔는데 혹시 교포인가 싶어서 한국 놀러 가는 길이냐 물어보니 아니란다 유럽 여행하고 한국에 들어가는 한국 학생이라고.

한국 레이오버 동안 친구들을 만나서 이 얘기를 했다. “아니 청량음료가 뭔지 모르더라고~” “어머 그럼 청량한 여름 이런 단어도 모르는 거야?” 우리 다들 놀랐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구가 “요즘 애들 다 그래.” 란다. 진짜 요즘 애들은 청량음료라는 단어를 잘 안 쓰는 걸까? 내가 어릴 땐 광고에서도 편의점에서도 흔하게 보던 단어였는데. 언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흘러가는 거긴 하겠지만 ‘청량’ 이란 단어가 주는 그 시원하고 파란 느낌이 좋은데 이걸 나눌 수 없다니.


이런 순간들이 그 자체로 한국의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는 것 같다. 승객들을 만나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작은 변화를 발견하면서 때때로 놀라고 아쉽고 반가운... 다음엔 또 어떤 변화가 내 눈에 띄게 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행일기] 대답하기 힘들었던 유럽인 동료들의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