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배운 식탁의 태도
유럽에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특히 독일에 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문화적 차이가 있다. 바로 자신의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는다는 것.
식당은 물론이고, 비행기 기내식까지 숟가락만 빼고 다 먹는 독일 사람들을 보며, 어릴 적의 내 식습관을 돌아보게 됐다. 특히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오뎅탕이나 닭볶음탕을 안주로 시켜놓고, 한두 입만 먹다 마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물론, 독일 사람들이 모든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편식은 다들 어찌나 심한지! 해산물 절대 안 먹는 사람들도 많고, 이건 마늘 냄새가 난다는 둥 저건 맵다고 손도 안 대는 둥... 게다가 온갖 글루텐, 너트 등 알러지는 어찌나 많은지.
하지만,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걸 시키고는 웬만해서는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남았을 때 음식을 싸가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코로나 동안 비행이 없어서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손님이 다 먹은 것 같아 치우러 가면 밥 한 톨 없이 빈 접시가 태반이었다. 혹시라도 다 못 먹었을 땐 남은 걸 싸가게 포장 용기를 요청하는 손님이 많았고,
음식이 남은 접시를 치울라치면 너무 맛있었는데 양이 많아서 다 끝낼 수 없었다라고 대부분 말을 덧붙였던 기억이다. 한 번은 빈 접시를 치우면서 접시가 참 깨끗하다! 하니까 한 독일인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식탁에 올라온 건 수저 빼고 다 먹어야 한다고 했어!”
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사는 베를린 집 근처에 한식당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온 단체 손님들이 다녀간 날이면, 식당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나에게 종종 묻곤 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먹지도 않을 걸 시키냐고… 출장 와서 법카로 음식 잔뜩 시켜놓고 감자탕도 볶음밥도 김치전도 한가득 남기고 가는 걸 자주 봤다. 냉장고나 조리 시설이 구비된 숙소가 많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본인의 양을 알 텐데...
어느 날 비행에서 “8A, 8C 손님들이 음식을 거의 다 남겼네. 맛이 없나? 뭐가 문제였나?”라고 묻던 독일인 동료. 한국에선 음식 남기는 게 어쩌면 너무 당연했던지라 나는 그런 궁금증을 크게 가져본 적도 없어서 당황했다. 물론, 비행기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다. 탑승 전에 라운지에서 배불리 먹었을 수도 있고, 기내식이 항상 맛있는 것도 아니니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건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나 어릴 적 음식 문화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기도 했던 것 같다.
알러지나 음식 제한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섬세하지 않았고, 나는 우유를 전혀 마시지 않는데 우유 급식을 무조건 신청해야 했었다. 정해진 시간에 다 함께 우유를 마신 후, 선생님은 빈 우유갑을 머리 위에 뒤집어 ‘정말 다 마셨는지’ 확인하곤 했다. 나는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는데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태도, 그리고 식탁 위의 작고도 깊은 존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