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행일기] 음식을 남기지 않는 유럽 사람들

독일에서 배운 식탁의 태도

by 플라워수


유럽에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특히 독일에 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문화적 차이가 있다. 바로 자신의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는다는 것.


식당은 물론이고, 비행기 기내식까지 숟가락만 빼고 다 먹는 독일 사람들을 보며, 어릴 적의 내 식습관을 돌아보게 됐다. 특히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오뎅탕이나 닭볶음탕을 안주로 시켜놓고, 한두 입만 먹다 마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물론, 독일 사람들이 모든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편식은 다들 어찌나 심한지! 해산물 절대 안 먹는 사람들도 많고, 이건 마늘 냄새가 난다는 둥 저건 맵다고 손도 안 대는 둥... 게다가 온갖 글루텐, 너트 등 알러지는 어찌나 많은지.


하지만,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걸 시키고는 웬만해서는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남았을 때 음식을 싸가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코로나 동안 비행이 없어서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손님이 다 먹은 것 같아 치우러 가면 밥 한 톨 없이 빈 접시가 태반이었다. 혹시라도 다 못 먹었을 땐 남은 걸 싸가게 포장 용기를 요청하는 손님이 많았고,

음식이 남은 접시를 치울라치면 너무 맛있었는데 양이 많아서 다 끝낼 수 없었다라고 대부분 말을 덧붙였던 기억이다. 한 번은 빈 접시를 치우면서 접시가 참 깨끗하다! 하니까 한 독일인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식탁에 올라온 건 수저 빼고 다 먹어야 한다고 했어!”

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사는 베를린 집 근처에 한식당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온 단체 손님들이 다녀간 날이면, 식당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나에게 종종 묻곤 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먹지도 않을 걸 시키냐고… 출장 와서 법카로 음식 잔뜩 시켜놓고 감자탕도 볶음밥도 김치전도 한가득 남기고 가는 걸 자주 봤다. 냉장고나 조리 시설이 구비된 숙소가 많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본인의 양을 알 텐데...


기내식 싫어해서 도시락 싸다니는 나…



어느 날 비행에서 “8A, 8C 손님들이 음식을 거의 다 남겼네. 맛이 없나? 뭐가 문제였나?”라고 묻던 독일인 동료. 한국에선 음식 남기는 게 어쩌면 너무 당연했던지라 나는 그런 궁금증을 크게 가져본 적도 없어서 당황했다. 물론, 비행기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다. 탑승 전에 라운지에서 배불리 먹었을 수도 있고, 기내식이 항상 맛있는 것도 아니니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건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나 어릴 적 음식 문화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기도 했던 것 같다.

알러지나 음식 제한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섬세하지 않았고, 나는 우유를 전혀 마시지 않는데 우유 급식을 무조건 신청해야 했었다. 정해진 시간에 다 함께 우유를 마신 후, 선생님은 빈 우유갑을 머리 위에 뒤집어 ‘정말 다 마셨는지’ 확인하곤 했다. 나는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는데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태도, 그리고 식탁 위의 작고도 깊은 존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행일기] 청량음료가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