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한국 회사 직장인 현 유럽 항공사 승무원
저는 한국에서 사무직 토탈 이년 조금 안되게 하다, 항공업계로 이직한 지는 벌써 만 팔 년이 넘은!!! 구 년 차 승무원입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에 비해, 유럽에서 항공사 다니며 내 모습 달라진 게 많아서 써보는 오늘의 비행일기.
저번에 썼지만 잠에 굉장히 예민해졌다는 건 더 말 안 해도 될 것 같고요!
좋게 변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먼저 시간 관리하는 능력. 스테이동안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24시간, 48 시간, 72 시간 체류 등) 효율적으로 쓰게 되고, 우선순위 정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예를 들어 머리 자르기와 염색을 둘 다 하고 싶은데 그럼 한 세 시간 정도 걸린다. 근데 그날 저녁에 친구 생일이 있어 거기 가야 해! 그럼 커트랑 뿌염 둘 중 급한 것 하나만 골라한다.
아님 24시간짜리 쿠웨이트를 갔는데 수영장에서 태닝 하며 잡지 읽고 싶기도 하고, 전통 시장을 구경하고 싶기도 하다. 뭘 해야 쿠웨이트 찜통더위를 피하면서도 알찬 레이오버를 보낼까?
수선집 옆에 올리브영 있으니까 옷 먼저 맡기고 잠깐 들러서 화장품 떨어진 거 사고, 그 건물에 있는 한의원 들러서 손목 치료받고 그때쯤 옷 수선 됐을 테니 그거 받아서 헬스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등등.
그리고 짐 싸기 정말 잘하게 됐다.
상비약, 안경이랑 렌즈, 핸드폰 충전기, 책 한 권은 꼭 들고 다니는 가방에 넣고 다닌다. 체크인 가방에 넣어놨다가 가방이 안온 적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건 항상 손안에 있다. 예상치 못한 긴 딜레이나 새벽 세시 갑자기 깬 호텔방 안에서 배고플 때 나를 구해줄 간식도 항상 가방에 들어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이 한정되다 보니 하나 가지고 여러 용도로 쓰기도 한다. 작은 클러치 백에는 화장품이나 매니큐어 등 곱게 담아서 짐 부치고, 호텔 도착해서는 내용물은 방에 놓고 놀러 나갈 때 클러치만 들고나간다. 오일도 하나 가지고 머리에도 바르고 바디로션에 섞어서 몸에도 바르고 자기 전에 발 뒤꿈치에도 바르고.. 잠옷으로도 입고 추운 날에 속에도 껴입고 가는 발열내의는 겨울날 비행 필수품이다. 일할 때 신는 기내화는 검정 플랫 슈즈 모양이라 외출할 때 신어도 어색하지 않아 좋다. 멀티 유즈 제품 최고야!
그리고 혼자 보내는 me time이 정말 많아진다. 혼자 레이오버 보내거나 호텔방에서 잠 못 이루는 날들, 오프 때 친구들이랑 시간 안 맞거나.. 심지어 나는 베를린에서 베이스 공항으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혼자 비행기 타는 시간도 많다. 처음 일 시작했을 때는 이 넘쳐나는 잉여 시간들에 밀린 잠 만 자기도 하고, 멍 때리고 있을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블로그도 하고 책도 더 많이 읽고 다른 공부도 째끔씩 하고 이런저런 시도도 하고 등등~ 독일어 공부 빼고 다 하죠~~ 제일 어렵지만 뭐라도 하려고 한다. 입사 초반에 선배님께서 우리가 쉴 때는 진짜 오래 쉬니까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루틴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한 이년 지나고 나니까 공감이 엄청 됐다.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시간의 대가가 너무 크더라고요~
이제 곧 오프가 끝나고 다시 on the track 모드! 레이오버 어떻게 보낼지 계획 짜고, 짐 알차게 싸고, 출퇴근 때 비행기 값만큼 책도 읽고 하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