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망고를 키워나가는 여정
나는 이십 대를 지나오며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곧 받았다. 나 스스로를 자격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기 일쑤였으며, 새드엔딩으로 끝날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사람처럼 자주 패배감에 젖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한계를 긋는 건 늘 나 자신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무서웠던 걸까? 원하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란 감각이 내게는 아예 없었던 것 같다. 그 속에서 나는 상황의 피해자로 남은 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무기력하게 되풀이하며 그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다가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위빠사나 수련 경험은 삶을 대하는 나의 수동적인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님나무 씨앗을 심으면 님 열매가 열린다는 사실, 님 씨앗을 심어놓고도 모른 척 망고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 지난 삶의 흔적이었다. 이는 분명 뼈아픈 자각이었지만, 위빠사나는 결코 나를 책망하거나 조소 섞인 비난을 가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구나. 그럼 이제부터 망고나무 씨앗을 심으면 되지.’ 그렇게 나는 느리지만 확신을 갖고 나만의 망고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이 바로 대학원 입학이었기에 나에게 있어 위빠사나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는 일은 이 다사다난했던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행위인 동시에 내 이십 대 이야기의 수미상관을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연구를 진행하며 참여자들과 관계 맺고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위빠사나 명상은 나와 참여자들 모두에게 보편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그것은 받아들임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삶의 주체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보편성 안에서도 각자의 독특한 경험들이 드러났고,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가히 마음을 울릴 만한 것이었다. 연구자로서 그들의 이야기가 최대한 훼손되지 않고 오롯이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나, 과연 그 노력이 성공적이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다해 이해하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참여자들이 내게 들려준 놀라운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내가 잊을 때마다 삶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일깨워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심은 각자의 망고나무가 언젠가 적절한 때에 아주 탐스런 열매를 맺게 되기를,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때에 망고를 수확하여 그 달콤함을 마음껏 맛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위빠사나는 내 삶에 있어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때때로 길을 잃은 채로 방황할 것이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하며 만사를 내팽개치고 싶을 때도 올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든 새 시작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더 정확히는, 그런 힘이 원래부터 나에게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것, 가능성의 길을 언제나 깨끗이 닦아두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 위빠사나를 수련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여 논문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이 일련의 과정은 내게 충만한 배움 그 자체였다.
때때로 홀로 앉아 명상을 하며
이 모든 것을 이치에 맞게 행하라.
생존 속에는 근심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저 광야를 걷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위빠사나에 관한 글은 나의 석사학위논문에 수록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앞선 세 편은 논문 서문에서, 해당 편은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지고 왔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위빠사나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는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용기를 속삭이는 일이었다.
반전일 수도 있지만 나는 수련을 다녀온 이후로 명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참여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명상을 일상으로 가지고 와 그 속에서 생활하면 이렇게까지 변화될 수 있구나, 내가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들이 모두 실제로 가능한 거구나.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명상 수련을 꾸준히 하지 않았음에도 꼭 위빠사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었던 것은, 이 수련 경험 자체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글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는 참여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의 증언을 통해 내가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계를 대리경험하게 되었고, 그 덕에 이전보다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내게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위빠사나와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고, 언제고 다시 수련을 시작할 용기도 얻게 된 것이다.
담마는 담마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한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망고나무를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