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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Mar 25. 2024

상냥함은 오래 기억된다

206호의 따스함

때로 기억은 공간의 형태를 띤다. 나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따스함이 함께 올라오는 공간이 있다. 삼익아파트 206호, 유진이 아줌마네. 어느덧 30년 가까이 된 기억이지만, 지금도 난 종종 삶이 차갑게 느껴질 때마다 206호의 따스함을 떠올린다.


1993년,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삼익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함께 이사를 하면서 친하게 지낸 가족이 있는데, 그 집이 바로 ‘유진이네’다. 사실 그 집 딸인 유진이는 우리가 이사를 하고 4년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당시에는 ‘206호 새댁’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후 우리 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206호는 나에게 1인 돌봄교실, 206호 아줌마는 나에게 개인 보육교사 같은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엄마는 약속이 있거나 일이 생기거나 별다른 이유가 없을 때도 나를 206호에 내려 보냈고, 그때마다 아줌마는 나를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아줌마가 내게 보여준 따스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사람은 통상적으로 5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206호에서 느꼈던 상냥함은 구체적인 기억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형태로 폐부에 깊숙이 새겨져있고, 지금도 가끔 그 따스함을 꺼내보며 추억에 잠기고는 한다. 206호라는 공간은 내게 늘 온화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당시 우리 집이 몇 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6호만큼은 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엄마가 함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아줌마는 한결같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단 한 번도 내게 화를 내거나 나무란 적이 없고, 그 공간에서 나는 늘 편안함과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줌마의 늦둥이 딸 유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난 심심할 때면 206호에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그때마다 아줌마는 나를 두 팔 벌려 환대해 주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아이를,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아이를 매번 따뜻하게 맞아주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줌마라고 나를 돌봐주는 것이 항상 좋았을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때로는 불청객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유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본인 아이 육아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지쳤을 법도 한데, 아줌마는 그런 내색 없이 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감각, 완전한 타인으로부터 수용되고 사랑받는다는 감각이 당시의 어린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상기할 때면 지금도 종종 소름이 돋는다. 아줌마의 따뜻한 보살핌이 나의 정서적 성장에 미친 영향은 지금의 나조차도 다 이해하지 못할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내 삶 구석구석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향한 보호막이 조금씩 두터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확신을 느낄 때 비로소 내가 '나'로 존재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이런 감각을 느끼기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매우 귀한 일이다. 특히 아주 연약한 시절인 유·아동기에 겪는 이런 온전한 수용은 세상과 타자를 향한 신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 있어 206호에서의 기억은 내가 나로 존재해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인생 첫 가르침이었던 셈이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집과 유진이네 모두 아파트를 떠나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래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만 해도 오며가며 동네에서 아줌마를 마주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한눈에 나를 알아봐주는 아줌마는 언제나 반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일까. 우리는 이제 길가에서 스쳐지나가도 서로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멀어졌고, 이 사실을 상기할 때면 나는 조금 슬퍼진다. 어느새 나는 당시의 아줌마 나이에 더 가까워졌지만 아줌마만큼의 따뜻함은 쥐뿔도 없는 그저 지치고 기력없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다 크고 나면 나를 '나'로 있게 해준 이들의 역할을 잊게 되는 것 같다. 미취학아동이던 나에게 아줌마의 존재는 꽤나 절대적이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마치 홀로 큰 것 마냥 고고하게 독립적인 어른인 척 살고 있다. 이렇게 억지로 옛 기억을 끄집어 내어 복기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상냥함들을 잊기 십상이다. 나는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에게만큼은 조금 더, 가능하다면 최대한 자주, 상냥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스함과 상냥함은 오래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Cover: Minolta X-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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