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수치심의 공간
그날은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개월을 기다려온 날치고는 비교적 차분하고 음울하게 시작된 하루였다.
5년간 살던 집에서 드디어 이사가는 날이었다.
말하자면 그 집은 우리 가족이 '망하면서' 등 떠밀리듯 이사오게 된 집이었다.
기존에 살던 넓고 쾌적한, 채광이 잘되어 늘 실내가 밝고 산뜻했던 이전 집에서 산지 딱 10년째 되던 해에 그렇게 우리는 쫓겨나듯 급히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그 집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졸업했다. 10년 동안 살면서도 그 집이 특별히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당연히 앞으로도 쭉 그곳에서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래서 그 갑작스런 이사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이사가 결정되어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맞은편 벽을 바라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이 집이 너무 아까웠다. 그냥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우리 집이 한 순간에 남의 집이 될 거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의 소중함을 몰라준 것 같아서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 집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한참을 울며 밤잠을 설쳤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랬다.
새 집으로의 이사가 마무리되자 한층 더 심란해졌다. 앞, 뒤, 옆 다른 건물들로 꽉꽉 들어찬 골목에 위치한 우리의 새 집은 단 한 줌의 빛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곳에 처음 들어가서 느꼈던 절망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늘 어둡고 음침했던 그 집에서 나는 거의 항상 우울하거나 울적했다.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그 집은 거의 악몽과도 같았다. 화창하고 맑은 날에도 집에 있으면 몸이 움츠러들고 어딘가 모르게 참 쓸쓸했다.
집에 있는 것이 더 이상 휴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상처가 집 여기저기에서 갈 곳 잃은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그 후로 내 유일한 소망은 하루빨리 이 집을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살아보니 집의 크기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채광과 위생이었다.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는 곰팡이와의 전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데, 승리자는 늘 내가 아닌 그쪽이다. 실로 빛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게 무려 5년을 살았다. 이사는 이전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갑작스레 결정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집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은 존재한다던가? 결국 우리 가족은 5년만에 다시 채광 좋은 곳으로 이사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삿날이 드디어,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날씨는 흐려도 이삿날 내 기분은 날아갈 것처럼 행복할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곧 집에 도착해서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내 지난 삶의 흔적들을 깡그리 빼다 나를 것이라 생각하니 무언가 기분이 요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피했다.
확실히 난 그 집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로 인해 하루하루 기분이 좋은 적은 있었겠으나, 집에 대한 내 감정은 한결같았다. 생각해보라. 이런 감정을 지닌 공간에서 내가 쌓아올린 부산물들은 과연 어떤 모양이었을까? 그 집에는 우리 가족의 아픔과 눈물이 서려있었다. 세 명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고통을 투영하고 있던 그 집, 그 처참한 몰골을 타인에게 여과없이 공개한다는 사실이 정말 달갑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당시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수치스러웠다. 마치 지난 5년간의 게으름과 무기력과 우울을 타인에게 심판받는 기분이었다.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었던 내 치부를 속절없이 들키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이삿짐을 싸는 그 현장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도망치듯 나와 새 집에 와 있었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새 집은 묘한 아늑함을 선사했다. 그곳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 생각했다.
지난 5년간 집안 구석구석에 우울함을 켜켜이 쌓아두고 있었던 것은, 오롯이 내 선택이었구나. 내가 상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나를 지배하도록 냅두고 있었구나. 집에 대한 내 감정과는 별개로 그 안을 구성하는 분위기는 언제든 바꿀 수 있었는데, 내 미숙함은 차마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저 집을 핑계로 내 분노와 우울함을 정당화하면,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수 있으니 손쉬운 그 방법을 선택했던 것일 수도.
새 집에 이사를 온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사실 이 글은 이사를 오고 두 달 뒤에 썼던 글이다. 당시에 이 글을 쓰는 것은 이전 집에서의 해묵은 감정들을 소화시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다 쓰고 나니 어딘가 구질구질한 느낌에, 또 다른 수치심을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아 발행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해버렸다.
그 2년 동안 우리 강아지는 이 집에서 13년 간의 생을 다하여 떠났고, 이사와 동시에 시작한 상담사라는 새 직업은 이제 조만간 그만두게 될 예정이다. 이사 당시에는 새 집으로의 이동이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인생사 늘 그렇듯 이사 후에도 집으로 인한 이만저만한 사건들로 케케묵은 감정들을 대면하는 일들이 만연했다.
사람에게 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대체 무어길래 이토록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보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