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트라우마
난 둘째 딸이다.
동생이 다섯이나 된다.
그렇지만 난 그들과 친하지 않다.
맘속의 거리감, 적개심이 어디서 생겼을까?
언니는 순했고 느리고 집안일을 못한 반면 난 재바르고 일 잘하고 눈치가 빨랐다.
엄마는 일하러 가면서 동생을 늘 내 등에 업혀주었는데 행여나 동생을 떨굴까 봐 숨이 탁 막힐 만큼 포대기를 꽁꽁 졸라맸다.
설거지를 하면 백 원을 주겠노라는 솔깃한 제안도 꼭 빼놓지 않았다.
'왔다 껌' 한통에 십원이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부엌을 상상하면 안 된다.
물부터 우물에서 길어와야 하는 설거지는 노동 그 자체였다.
동화 속 콩쥐보다 전혀 나은 게 없는 환경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할머니가 부엌 아궁이와 소죽 끓이는 아궁이 둘 중 하나에 불을 지피라고 시킨다.
동생을 업었으니 앉을 수도 없고 때론 연기가 역류해서 눈이 매워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비에 젖은 볏단은 잘 타지도 않고 연기만 잔뜩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언니처럼 일 못하는 척이라도 할 것을 왜 잘난 척을 해가지고...)
덩치가 나와 비슷한 수탉을 포획할 때도, 창고에 쥐를 잡을 때도 엄마는 늘 나를 찾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선택된 것에 으쓱해하며 당당하려고 애썼다.
추운 날 동네 아줌마를 따라 기저귀 잔뜩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반달샘으로 빨래하러 간 것도 나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키가 작다. 심지어 엄마보다 작다.)
우물은 얼거나 너무 차가워서 집집마다 샘에 모여 빨래를 했는데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차갑지 않았다.
어디서 솟아나는 물인지 몰라도 두 평 남짓한 동그란 반달모양의 샘은 오랫동안 동네 빨래터였다.
동생 낳은 지 얼마 안 된 엄마를 위해 그리고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난 항상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콩쥐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언니나 동생이 일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일할 때 그들은 뭘 했을까?
아침 먹기 전 나락 뒤집어놓기, 타작할 때 볏단 나르기. 콩밭매기 등은 같이 했지만 집안일을 같이 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끼리 다투면 엄만 나만 쏙 빼서 창고에 가뒀을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이런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언니랑 싸우고 동생이랑 다투면서 어린 나는 그렇게 살림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내가 제일 못되고 별나다고 나무라면서 타임아웃을 시켰다.
일도 제일 많이 시켰으면서 꾸지람과 부지깽이 매타작도 일등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작은 일에 맘 상해하고 억울해한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덜 아픈 손가락은 분명 존재하고 그리고 하필 그게 나였던 것이다.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에 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 열등감이 개인의 성장발달의 원동력이라는 말이 있다.
일부분 맞는 말이긴 하나 성공했다 한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이뤘다고 한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상처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며 평생 원인을 알 수 없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된다.
인식하고 있어도...
충분히 이해해도...
트라우마 치료는 어렵다.
그래서 트라우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