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감꽃
촌 아이들은 대개 늦잠을 자지 않는다.
일찍 자기도 하지만 여름날 아침은 전선줄에 혹은 빨랫줄에 앉아 지저귀는 제비소리의 요란함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참새는 나락을 까먹어서 그렇지 딱히 시끄러운 존재는 아니었는데 제비는 아침에 정말 시끄러웠다.
기와집 처마에 보통 두 세 집을 지었으니 새끼까지 합하면 수십 마리는 족히 되었다.
흙과 지푸라기로 열심히 부부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가 자라는 걸 우린 아무 감흥도 없이 지켜보았다.
작년에 살던 집을 부수지 않았는데 꼭 새 집을 짓는다고 난리법석......
수고하지 않고 헌 집 대충 청소하고 살면 될 것을 왜 굳이 새 집을 고수했는지 묻고 싶다.
강남에서 보물품은 박씨?하나 가져다 주었더라면 제비를 그렇게 성가셔하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감꽂이 많이 떨어지는 6월 말이 되면 논에서 애벌레를 물어오는 제비보다 우리들이 먼저 기상했다.
왜냐고?
마을에서 제일 키 큰 아주머니 마당에 떨어지는 어마무시한 감꽃 때문이었다.
주인을 닮아 키가 크다고 우리끼리 키득거렸지만 그 나무는 해 걸이도 하지 않고 매년 감이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고 얼핏 보면 감히 감나무라고 상상하지 못할만큼 외관도 웅장했다.
적어도 어린 우리 눈엔 잭과 콩나무에 비길만한 멋진 나무였다.
아침에 후다닥 일어나 그 감나무 아래로 달려가면 이미 줍고 있는 나보다 더 부지런한 아이들....
다이소에 파는 천 원짜리 소쿠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플라스틱 용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우린 치마에, 바지 주머니에, 혹은 상의를 좍 펴서 감 꽂을 마구마구 퍼담았다.
개미가 달라붙어 있어도 흙이 묻어도 개의치 않고 이쁜 놈으로 한가득 주웠다.
한 열명 남짓한 아이들이 휩쓸고 가면 뒤에 오는 아이들은 별로 주울 게 없었다.
평상에 따 온 감 꽂을 좌악 펴놓고 생생한 놈으로 골라 이불 꿰맬 때 쓰는 굵은 실에 하나하나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아껴 먹으면 갈색으로 변하고 모양이 이쁘지 않기에 골목에 나가 일단 자랑하고 나면 후닥닥 먹어야했다.
물론 애당초 감꽃은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억수로 맛나지도 않은 그냥 풀 맛?이지만 남기거나 버리는 법은 없었다.
하나하나 곶감 빼먹듯 아껴 먹는 재미에(그래서 굳이 목걸이로 만들었나?) 간식거리는 눈을 닦고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는 시절이었기에 감 꽂은 딱 2주간의 선물이었다.
감 꽂을 먹고 자란 시골친구들이 흔하진 않은데 우리 동네 아이들은 감꽃에 환장을 했으니 아마도 동네 어른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