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과 수능 논쟁에 대한 의문

by 정진

내신에 대한 선생님들의 의견을 볼 때면 드는 의문이 있다. 알튀세르를 빌려 굳이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학교란 가장 전형적인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ISA)로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위해 설치되고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이 오히려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대변하고 시민으로서의 주체성이나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수능은 획일적 교육의 상징이며 경우에 따라 교육 현장을 무력화하는 제도로 비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경기권 일반고를 기준으로 학생이 정시를 택하는 경우 선생님들의 냉소나 반발을 사는 케이스도 개인적으로 목격한 바도 있다. 물론 보통교육에는 복지적 측면이 강하게 있으며 국민의 기본적 교육과 돌봄, 사회 질서의 유지, 최소한의 실질적 훈련 등 여러 중요 기능을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문과 교육에 집중해 본다면 학교는 전적으로 '개인의 교육'만을 위한 기관이 아님을 부정하긴 어렵다.


국내 고교 교육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역시나 내신/수시 - 수능/정시의 대립구도일 것이다. 편의를 위해 다소 뭉뚱그려 말하자면 전자는 많은 현장 선생님들이 선호하며 균형교육, 인성교육, 전인교육, 절대평가 등의 평등 기반 가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육과 관련한 여러 담론, 기사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수능/정시의 경우 수월성과 경쟁교육을 상징하며 공정성 담론을 대표하기도 한다. 특히 정시 100%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정성 이슈에 집중하는 듯 하다. 이 중 사교육 과열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딱 잘라 나눌 순 없겠지만) 전자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내신/수시와 연결된 가치들은 교육에 대한 리버럴한 생각처럼 보인다. 이 틀 안에서 수능이나 여타 일제고사 체제는 학생들을 '공부 기계'로 만들고 더이상 효용없는 지식 암기적 공부를 강요당하는 불행의 씨앗일 것이다. 이런 체제는 학생을 능력에 따라 한 줄로 세울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모두를 같은 경쟁, 그것도 딱히 쓸모없는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지만 상당수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이다. 그런데 나의 의문은 이것이다. 내신은 아닌가?


대부분의 경우 내신 시험은 한 명, 혹은 소수 선생님들이 출제하고 평가한다. 내신은 많은 경우 여전히 상대평가이며 여전히 객관식 시험이다. 객관식 시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내신 시험은 상대적으로 말해 오히려 암기와 반복학습에 의존하는 경향이 수능보다 더 심하다. 영어를 가르쳐본 내 소박한 경험에 따르면 내신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현장의 가장 좋은 방법은 본문을 암기하는 것이다. 로컬에서 성적 향상으로 명망높은 학원들은 거의 항상 장시간 암기를 비결로 삼고 있다. 이때 학생이 텍스트의 의미, 주제, 전후 사정은 물론 언어 내적인 원리나 질서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풍부하진 않을 것이다. 경기권 일반고를 나오고 담당해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많은 학교 선생님이 이를 '요구한다'.


게다가 문법적으로 이론이 있을 수 있는 경우, 텍스트적으로 다른 근거 추론이 가능한 경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이것이 선생님의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비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개인적 경험을 하나만 말하자면 고등학교 영어 시험 중 'exploit'이 빈칸에 정답인 단어로 나온 적이 있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다르지만 부정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끝까지 이용하고, 이용해 먹고, 착취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해당 문제는 단지 '이용하다', '활용하다'의 패러프레이즈를 통해 출제된 문제였다. 난 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외부 지문의 양, 교과서의 암기를 전제하지 않으면 텍스트적 추론이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 구성 등 무작정 암기에 기대는 문제 출제는 내신에서 더 흔히 감지되는 문제이다. 수능은 아닌가? 많은 경우 아니다. 언어과목(국어와 영어)에 한정해 말하자면 문제 출제와 정답의 근거는 대부분의 경우 사실 일치에 기반하고 있다. 특정한 해석과 정답만을 강요한다고 하기엔 가치적 판단을 애초에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비형식적 논리에 해당하는 약간의 추론은 있을 수 있지만. 문학적 해석의 경우에도 그렇다. 물론 문학적 해석의 '입장' 자체를 다면적으로 다루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수능 문학 지문의 경우에도 판단이 되는 텍스트적 증거가 존재해야 하며 '보기'를 통해 문제를 위한 특정한 입장 제시해주기도 한다. 다시말해, 기본적으로 수능은 언어과목에 한정한다면 학생에게 '주어진 글을 잘 읽고, 문제의 요구를 파악하여, 답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특정한 입장이나 정답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언어의 논리적 전개나 형식적 구성에 집중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학생이 이를 대비하기 위해 엄청난 기계적 암기를 한다면 넌센스이다. 따라서 기계적 암기와 주입식 교육의 문제로 본다면 도저히 내신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내신의 다른 면인 수행평가는 어떤가? 수행평가는 우선 선생님 개인의 기획과 판단에 의존한다는 내신시험의 문제를 공유한다. 게다가 수행평가의 상당수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포함했다. 이 목록은 내가 겪거나 만나본 학생들에게 들은 것이라 전체를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령 플립 러닝 등 이 틀에서 벗어나는 유의미한 사례도 많아 보인다.)


1. 영어 쓰기시험: 자신의 꿈, 사회적 이슈 등에 대해 미리 글을 작성한 뒤 이를 외워서 수업시간중 다시 쓰기.

2. 영어 말하기 시험: 대화문 외워서 친구와 발표하기, 스크립트를 통해 선생님과 대화하기.


이에 나는 다소 의아함을 느끼게 되곤 한다. 왜 전인교육, 시민교육, 비 획일적 자기주도학습 등 리버럴한 가치를 내세우는 입장이 오히려 내신을 강화하라는 요구로 이어질까? 내신시험은 학생 입장에서 본다면 소수의 평가권력이 자신을 평가하는 체제이자 이의 제기가 어려운 방식이다. 게다가 기계적 암기라는 고전적 문제에서 가장 불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비판의 대상인 수능은 내가 생각하기에 형식상 대량 평가가 가능한 시험 중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기계적 암기를 통한 대비가 어려운 시험이다. 물론 모든 종류의 학습이 그렇듯 암기 자체는 필요하지만 그 경직성이 덜하다. 교사의 평가권이 있어야 교육 현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실용적, 실무적 고민이라면 당연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신에 근거한 평가가 민주적 가치나 창의적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글쎄,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니 오랜 기간 지속되는 논쟁일 것이다. 내 글을 읽고 하나도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현실을 고려하면 입시는 (지금처럼) 수시, 정시는 물론 논술, 실기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 체제를 유지하는게 최선일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일괄적 평가 체제를 벗어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추천서 시스템을 더 도입할 수도 있다.


이 글이 정시가 무조건 옳다고 옹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내신이 옹호되는 근거와 내신 시험의 체제가 불일치하는 현상이 의아함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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