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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Jan 02. 2024

창작, 그리고 돈 낭비 안하기

앨범을 내며 저지른 금전적 실수들

나는 지난 몇 년 정도 'airo(아이로)' 라는 이름으로 음원을 내고 있다. 사실 이전에는 '정진' 이라는 본명에서 성만 뗀 활동명으로 두 장의 싱글(혹은 EP)을 냈었는데 새로운 느낌을 내고 싶어 다른 이름을 만들었다. 작곡 레슨을 받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기획하고 (사실 초반엔 이게 '기획' 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다) 만들었기 때문에 첫 앨범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서비스 종료를 요청한다든지 꽤나 비싼 컨셉 프로필사진을 촬영하고서 결국 사용하지 않는 등 그닥 넉넉하지 않은 예산을 결국 활용하지 못 할 곳에 투입하는 실수가 있었다. 싱글 앨범을 4장 (서비스되는 싱글 개수로는 3장) 발매한 지금 돌아보면 이런 예산상의 실수가 있었고, 거기서 많이 배우긴 했지만 그 실수가 없었다면 더 많은, 그리고 의미있는 앨범을 발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뮤직비디오


사라진 첫번째 싱글...한 번만 보고 잊어주시길


내 첫 싱글 <Story, Behind>는 현재 서비스 종료를 요청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 (그래야만 한다...) 일단 내가 노래를 너무 못불렀고,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내가 뭘 표현하고자 하는지 전달하지도 못했다. 사실 뭘 표현하고자 했는지 그 원안이 되는 아이디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을 준비하며 일어난 최악의 예산낭비는 뮤직비디오였다. 소정의 출연료를 준비해 학내 커뮤니티에서 연기자를 모집 (!) 하고 전문적인 장비를 빌려서, 무려 이틀동안, '도'가 다른 장소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그러면서도 두루뭉술한 이미지 말고는 기획의도가 뚜렷하지 않아 결과물도 애매했다. 뭘 표현하고 싶었는지, 그걸 위해 어떤 수단을 써야 효과적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막연하게 접근했던 패착이었다. 만약 기획 의도와 전달방안을 확실히 하고 같은 예산을 적절하게 배분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면 결과가 달리졌을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첫 작품이지만 막연하게 '좋은'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를 위한 깊은 고민 보다는 예산을 들이붓는 방법을 써 버렸다. 저런...


2. 프로필 사진


<Faces of Blue> 앨범아트, 내가 보는 나는 역시 좀 부담스럽다


비교적 최근에 낸 싱글 <Faces of Blue>의 경우 내가 들어도 들을만하게, ’감상‘ 가능하게 만들자는 생각 아래에 만든 앨범으로 스스로 돌아볼 때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곡 작업을 하기 전 내가 준비한 곡이 각각 앨범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서로 어떤 분위기로 연결되는지, 곡 내부적으로 자연스러운지 등을 여러번 생각했다. 작곡에 있어서는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협업에 있어서 생각한 부분을 레퍼런스나 묘사를 동원해 전달했다. 나름 기존 작업에 대한 자가 피드백을 반영했고 진전을 이루긴 했으나 이때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다.


나는 음악과 함께 비주얼적 느낌을 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지금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걸 실현하는 과정에서 좀 미숙했던 건이 바로 프로필사진 촬영이었다. 프로필사진을 계획하며 결과물을 소년스러운 느낌으로 잡고 푸른 빛이 돌게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포토그래퍼분과 컨택했다. 사진 촬영은 한두시간정도 스튜디오를 빌려 진행했고 온갖 아련한 포즈와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새로운 경험이라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과물을 받아 본 후였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받아본 사진은 훌륭했고 너무 잘 찍어주셨다. 받아 본 사진의 퀄리티가 문제가 아니라 앨범 기획, 나의 이미지, 곡의 분위기와 프로필 사진이 어울리는지의 문제였다. 특정한 사람(나)이 특정한 앨범을 낼 때 그 의도와 느낌이 적절한지와 사진이 좋은지는 다른 문제라는걸 결과물을 받고, 사이트에 등록한 뒤 깨달았다. 사진이 너무 '상큼'했다. 그게 나쁜가? 아니다. 그런데 나에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 후 내가 직접 찍은 다른 사진으로 바꾸었다. 그 사진은 문틀 위에 올려놓은 아이폰 하나로 찍은 사진이지만 (퀄리티와 별도로) 더 어울린다.


3. 세부사항을 잘 체크합시다


"유영" 애니메이션 일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있어 내가 생각하는 최대 약점은 바로 일정, 요건 등 세부사항을 흐릿하게 혹은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Faces of Blue>에는 원래 리릭 비디오 (가사 비디오)를 위한 루프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루프 비디오는 합리적 가격으로 (엄청 싸진 않지만)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다른 분들도 왕왕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애니메이터 분께 분위기와 의도, 레퍼런스를 잘 전달했고 원활한 소통 과정을 통해 작업물을 받았다.


그런데 절차적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뮤직비디오를 정식으로 유통하기 위해서는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작사' 부분을 잘못 기재하여 심의를 신청하는 실수가 있었다. 나는 루미넌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유통사를 통해 앨범을 유통해오고 있는데 이를 '제작사'에 기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심의가 완료되어 그냥 '틀린' 심의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 심의로는 해당 영상을 유통할 수 없었고 같은 영상으로는 재심의도 불가능했다. 물론 이 영상을 쇼츠를 통한 곡 프로모션에 활용하긴 했으나 세부사항을 더 잘 확인했다면 같은 영상을 더 여러 채널에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이같은 일들을 통해 나는 예산을 가지고 사용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창작도 경영적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걸 잘 하면 똑같은 작업도 더 쉽거나 더 좋게 만들거나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 게다가 자원의 현명한 분배와 거기서 나오는 약간의 제한은 의외로 더 창의적이고 좋은 작업으로 이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예산의 많고 적음은, 어느정도 자원이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결과물의 퀄리티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효과적인 창작을 위해 고민하다 보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이 무엇이고 이를 적절히 표현할 장치가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Passing Things>

나의 경우 가장 최근 낸 싱글 <Passing Things>의 앨범아트가 그런데, 이것은 예산이 거의 하나도 투입되지 않은 그냥 사진이지만 여태 만든 앨범아트 중 가장 만족하는 결과물이다. 겨울의 따듯한 느낌이 잘 느껴져 좋아하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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