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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졌다.

혼자 여행 떠나고 싶다.

by Jina가다

왕복 9 천보... 일주일에 한 번씩 일부러 걷는 이 코스가 나는 좋다. 에코백에 반납할 책들을 담고서 운동화를 신는다. 유채가 핀 천변을 걷고 맛집이 즐비한 상가들을 지나쳐 사거리 신호등을 건너면 좁은 주택가다. 한참을 직진해 걷다 보면 꽤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3층 도서관에 도착한다. 800번대, 300번대, 100번 대에서 책을 고르고 3층의 다문화 도서코너에서 영어책을 한 권 집어 가방에 담았다. 누구와도 마주칠 일 없이 도서카드 한 장이면 기계와 대면해서 모든 것들을 해결한다. 입구에 앉은 관리인에게 인사라도 한 마디 나눌 걸 그랬나 보다.



집에 돌아가는 길 사거리를 지나면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보인다. 간판에 쓰인 대로 젊은 부부는 두 살 차이인가 보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서 창 쪽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보면 부부가 조리하는 말끔한 주방 테이블이 훤히 보인다. 벽에 붙은 자석 칼꽂이에는 일곱 개가 넘는 모양 다른 칼들이 주인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주문이 많은지 크레이프를 구워 케이크로 층층이 쌓느라 바쁘다. 나무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준 케이크와 커피를 먹으며 주섬주섬 오늘 빌려온 책들을 꺼내본다.


71세 멋진 할머니 이야기가 반갑다. 핸드폰에 30분 타이머를 누르고 목차부터 읽기 시작했다. 지난번 경주 여행 중에 서점에 들렀다가 표지색이 쨍하고 제목이 멋져 사진 찍어두었던 책이다.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끈다고 말하는 할머니가 멋지다. 책 표지에 보이는 할머니의 그림에는 여행용 모자에 목걸이를 걸고서 주름치마와 낮은 구두를 신은채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인다. 70대 멋쟁이 할머니의 신나는 여행이 궁금해 서둘러 본문을 펼쳤다. 일본, 스위스, 중국 등 러시아 횡단 열차까지 혼자 그리고 같이 20여 개국을 여행 다닌 할머니의 모험을 구경하면서 너무나 신이 났다. 노년의 시선으로 본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건망증과 노년의 느린 적응, 실수까지도 아름답게 보였다. 80여 페이지를 읽고 나니 옆자리에서 조용히 수다를 나누던 엄마들과 2층 다락방을 드나들던 초등학생 아이들은 어느새 자리를 비우고 빈 잔들만 남겨 놓았다.



타이머가 시간을 알리지만 알람을 끄고 다시 읽던 행을 찾았다. 한 참을 읽다 보니 저자는 부산에 사는 할머니로 여행을 다니느라 자주 부재중이라며 블로그 주소에 얽힌 사연을 알려준다. 덕분에 블로그 주소를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맛깔나게 글을 써 놓은 저자가 궁금하다. 핸드폰을 켜고 블로그 이웃을 신청했다. “지금 이 시간 ‘진짜 멋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블로그 이름에 ‘~항상 부재중’이시라니 답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가끔 할머니 작가의 블로그에 방문해 보려 한다.



책을 읽다가 저자의 블로그나 인스타, 브런치에 이웃을 신청하고 추가한 일들이 제법 있다. 내 이웃 중에는 글쓰기 책들을 출판한 작가들, 번역서를 출간한 몇몇의 번역가들 그리고 여행서를 시리즈로 출판한 여행가들이 있다. 직접 작가들과 댓글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영광스럽고 놀라운 세상이다.



100페이지 넘어 절반을 읽고 나서 자리를 정돈하고 가방을 챙겼다. 밖으로 나오니 보슬비가 내린다. 편의점에서 투명 비닐우산이라도 살까 잠시 고민하다가 니트 조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다. 지나는 창문에 비춰보니 모양새가 마녀님 모자인 듯 얼추 괜찮다. 지나치는 상가 쪽 반찬가게에서 비빔밥용 나물 3종 세트를 사서 천변으로 향한다. 도로변 큰 나무들 아래로 잦아진 비를 피해 걸으며 혼자인데도 신이 난다. 65세 이후 혼자 여행을 시작한 할머니처럼 혼자만의 여행도 멋질 것 같다. 항공권을 검색하고 여행을 계획한다는 할머니의 취미가 제법 멋져 보인다. 혼자만의 여행이 그리워지는 봄날이다.

커피 한 잔에 멋진 할머니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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