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세상의 모든 꽃들이 좋아졌습니다. 꽃무늬가 새겨진 원피스에 손이 먼저 가고 노트에도 꽃그림이 있으면 구입하게 됩니다. 과일과 음식을 놓을 때도 꽃 모양 패턴으로 펼쳐놓습니다. 테이블마다 생화를 꽂아놓은 식당에 가면 주인장의 정성이 두 배로 다가옵니다. 며칠 전 처음으로 간 동네 카페에서 꽃 모양 라테아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시는 내내 행복했답니다. 언젠가 선물드린 꽃다발 속 안개꽃을 쓰다듬으며 이제는 작은 꽃들이 좋다고 속삭이시던 엄마가 생각납니다. 나도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3월이 시작되면 바닥이 낮고 손잡이가 달린 양동이를 들고서 화훼단지로 향합니다. 꽃가게마다 입구에 펼쳐놓은 화려한 꽃들의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노란 팬지와 수선화, 빨간 칼랑코에, 보랏빛 패랭이와 하얀 데이지 등의 작은 화분들과 이른 장미, 색깔별 튤립들도 기다란 목을 내밀고서 예쁨을 자랑합니다. 10개 정도의 작은 화분으로 양동이에 모둠 지어 넣고 장미와 튤립도 잘 세워 집으로 향합니다. 꽃들을 채운 자동차는 만화영화 자동차 붕붕이처럼 꽃향기로 가득 채운 채 조심스레 운전해 집으로 돌아옵니다.
꽃이 가득한 양동이만 두어도 어느새 거실은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책상에는 장미를 놓아두고 안방에는 튤립을 세워봅니다. 집안 이 곳 저곳을 다니며 꽃구경하는 2주간은 꽃샘추위 겨울 날씨가 기승을 부려도 따뜻한 봄이 됩니다. 올 해에는 칼랑코에 꽃이 다 졌는데도 새롭게 꽃줄기를 내고 꽃이 피었습니다. 꽃을 사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세 아이들을 한꺼번에 유치원에 보내고 뒷바라지하느라 꽃을 사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10년이 훨씬 넘은 일인데도 남편의 쑥스러운 얼굴과 내민 손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선릉역 길가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께 샀다는 빨간 장미는 영자신문에 조심스레 돌돌 말려 있었습니다. 퇴근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꺾이지 않도록 온갖 신경을 쓰며 들고 왔을 남편의 마음이 더욱 감동되었습니다. 식탁에 꽂아둔 장미는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콧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에 작은 힐링을 누리게 해주는 꽃의 힘이란... 남편은 그 이후로도 가끔씩 선릉역 꽃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부산에 이사 온 이후 매년 3월 10일쯤 되면 날씨와 매화 만개 시기를 확인하고 이른 아침 1시간을 운전해 여행을 떠납니다. 순매원... 약간은 선선한 날이지만 가장 먼저 꽃을 피워주는 양산의 매실농장입니다. 원동 매화마을은 특별한 장면을 볼 수 있어 많은 사진작가들이 출사를 나옵니다. 낙동강 옆으로 10여 분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나갑니다. 사진기 화면의 프레임 속에 낙동강과 기차 그리고 매화를 모두 담으면 그림엽서 같은 예쁜 장면이 됩니다. 영화 같은 장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근처 카페에 앉아 그 마을 특산물로 만든 딸기 주스를 홀짝거리고 있노라면 이른 봄을 온몸으로 느끼며 얻는 특별한 행복감이 몰려옵니다. 순매원 농장에 들어서 매화꽃 아래로 걷다 보면 매화의 보드라운 꽃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추운 날 가지를 뚫고 나온 단단한 매화는 가지를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암팡지기만 합니다.
3월 말이 되면 해가 잘 드는 부산의 온천천 공원으로 시작해서 벚꽃터널을 이루고 달맞이길과 황령산에도 온통 벚꽃으로 만발합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도 상춘객들을 맞이합니다. 4월이 되면 왕벚꽃으로 유명한 경주의 불국사에서 따뜻한 꽃놀이를 즐깁니다. 오늘도 꽃의 힘을 믿으며 나비처럼 꽃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