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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Jun 01. 2023

가끔씩 일부러 시간을 세어본다

시간을 세는 것들

시간을 세는 것들...(타임스탬프 앨범, 다이어리, 달력, 시계, 핸드폰 화면 디데이, 나이)


하루에 몇 번씩 일자와 시간이 표시되는 타임스탬프 앱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침에 기상해서 해가 뜰 때면 예쁜 하늘을 향해 렌즈를 들이민다. '5'라는 숫자를 남길 수 있는 그런 날은 무조건 기상 인증을 남긴다.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는 날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부지런한 시작이라고 나에게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책을 읽을 때, 시간인증을 남긴다. 오늘도 잉크가 묻은 책장을 넘겼고, 전자책이라도 몇 페이지 읽어 내렸다는 결과물로도 중요한 일을 해 낸 기분이다. 시간이 꽝하고 찍힌 책장의 사진은 한 달 또는 일 년간 독서의 유무와 책의 종류를 그대로 보여준다. 책 읽기를 스스로 격려하기에 딱 좋다.


샐러드로 식사를 챙길 때 사진을 찍는다. 건강을 위해 야채와 과일로 한 끼 식사를 챙기려 마음먹은 뒤로는 예쁘게 접시를 채우고서 사진을 찍는다. 점심식사 시간과 섭취한 영양소를 파악할 수 있어 좋다.


일만보를 완성했을 때 인증사진을 찍는다. 2년이 지나도록 지속하고 있는 일상이다. 긴장하고 신경 쓰지 않는 날에는 금세 걸음수가 줄어들기에 무조건 저녁시간에는 일만보를 인증하려 한다. 물론 잠들기 전 일만보를 채우지 못했어도 사진을 찍어둔다. 스스로 인증하는 일들은 혼자서 진행하는 계획들을 지속케 한다.


화면을 켜고 글을 쓸 때면 꼭 커피 한잔과 함께 스탬프사진을 남긴다. 오늘도 짧은 글을 한 편 쓰려고 애썼다고 혼자서 다독인다. 컵이나 냅킨에서 보여주는 로고는 어디에서 글을 썼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시간과 장소를 남기는 것이 내게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오늘 하루와 일주일을 기억하는 일이 어려워진 요즘은 내게 중요한 도구다.


올 한 해 가득 채워진 스탬프 사진들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2020년 10월 제주여행부터 모아둔 사진들이 3년 반 동안 내 역사들을 보여준다. 5천 개의 이미지들을 넘기다 보니 다양한 일상들이 보인다. 매일 시편 필사를 했던 150장의 노트사진, 매일 아침 물 한 컵 마시기를 습관들이던 컵 사진, 체중계의 변화를 찍은 사진들은 오랜만에 보니 새삼스럽다. 전국으로 해외로 돌아다닌 여행지들, 가족들과 보낸 생일과 명절, 반갑게 만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계절과 분위기를 본다. 새겨 넣은 글씨들로 방문한 장소들을 기억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남겨진 메모와 사진들이 또 다른 기쁨과 추억들을 주는 순간이다.


가끔씩 아이들은 기억 속 일자를 알고 싶을 때 어김없이 내게 묻는다. 다이어리를 펴고 중요한 사건들을 찾아보면 메모로 남아있어, 아이들을 도울 때가 종종 있다. 메모로 남겨둔 작은 습관들이 새삼 소중해진다. 한 해에 주어진 열두 달 그리고 365일의 작은 빈칸들은 나의 1년을 한눈에 보게 한다. 몇 개의 빈칸을 빼고는 빼곡히 가득한 것을 보면 부지런히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듯해서 만족스럽다. 빈칸이 생길 때면 무엇이라도 적어 넣는다. 스스로 반성하자고 ‘lazy~ㅠ’라도...


핸드폰의 화면에는 매년 새로운 사진과 문구를 올린다. 될 수 있으면 1년간은 대표 사진과 문구는 바꾸지 않는다. 결심을 나타내는 듯한 이모티콘으로 화면도 꾸민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성 움티와 커피 한 잔이 올해 내 화면이다.


매일 날짜를 세기 위해 D+날짜를 한 구석에 공간으로 만들고 이름을 붙였다. ‘매일이 선물’. 오늘의 날짜로 2023년은 D+152, 2023년을 일백오십이일 살아왔다. 213일이 남은 오늘도, 뭔가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가끔은 아주 중요한 날에 D-day를 센다. 40여 일 전부터 여행을 떠나는 날을 세며 비행기 하나 띄워 놓으면 삶이 또 즐거워진다. 날짜가 줄어들면서 흥분과 긴장이 올라가니 좀 더 부지런하면서도 기대하는 마음을 잠시 누리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 좋다.


뭐... 매번 이렇게 시간과 날짜를 세고 사진으로 찍겠냐마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다.


나는 오늘도 커피 한 잔에 글을 쓰면서 시간과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2023년도 시간을 세며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나이는 가끔만 세면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어버릴 때 늙는 것이다." -새뮤얼 울먼의 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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