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나의 사람들이 되었기에 가족과 함께 있는 곳을 수행장이 아닌 축제의 장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당사자는 아내인 나 자신과 남편이다. 평생 끝까지 나와 동행할 사람은 자녀도 부모도 아닌 나의 반쪽이다. 그래서 여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음자세들을 바꾸려 한다. 먼저 나의 자세를 변화시키고 남편을 돕는 것이 좋겠다.
첫째는 남편과의 관계다.
오십의 중반이 된 남편은 벽 한편에 세워진 웨딩액자 속 모습과 많이 다르다. 풍성하던 모발은 듬성듬성 빈 곳이 보여 탈모를 걱정한다. 탈모약을 복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28인치이던 허리는 34가 되었다가 2인치를 열심히 줄여서 32가 되었다. 그런데도 뱃살을 고민하며 식사를 조심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볼록하니 배가 불러온다. 중년이 되면 다이어트는 여성의 것만은 아니다.
남자들에게도 갱년기가 온다더니 오십 대의 남편은 전보다 감성적이고 염려가 많다. 가끔은 나보다 이성적이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나 성인이 된 자녀들과 대화를 할 때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를 내서 스스로 불쌍해지는 순간이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반쪽인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여보 당신에게 상담할 것이 있어.”
나는 그냥 듣고 반응만 하는 것뿐인데도 그는 상담이라 표현한다. 한두 마디 조언했을 뿐인데도 그는 좋은 결과를 받아 든 아이처럼 고마워한다.
젊을 때는 세 살 많은 그에게 내가 자꾸 물었는데, 이제는 그가 내게 자문을 구한다. 더 자주 묻고 공감할 수 있도록 신뢰할 목록들을 늘려가는 중이다. 책을 읽고 뉴스를 시청하면서 그와의 대화는 좀 더 수월해졌다. 귀 기울여 듣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며, 그는 더 자주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는 더 자주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둘만의 취미를 누린다. 우리 부부는 상극의 관심사와 취미를 갖고 있지만 서로에게 맞추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져주는 연습, 마음을 비우는 연습 그리고 서로 간섭을 줄이는 연습. 그렇게 수행하다 보니 우리가 만나면 제법 축제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자녀와의 관계다.
“매주 토요일에 라인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해외 인턴으로 근무 중인 딸의 제안을 들었을 때 무엇보다 신나고 즐거웠다. 더군다나 일주일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의견은 부담이 되면서도 설레었다. '엄마는 너무 보수적이에요.', '가끔 말이 안 통해요.' 등 비수가 되는 말을 아이가 농담으로 던질 때면 조용히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말이다.
대화가 잘 통하는 부모,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 끊임없이 애써왔다. 자녀와 대화법에 관련된 영상과 책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갖었다. 교훈을 얻으면 반성하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하고 싶은 잔소리는 입술을 깨물어 참고, 입장을 바꿔 먼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끝까지 들어주는 일을 오랜 기간 훈련했다. 자녀들을 통해 우리 부부는 오히려 성장하고 변화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직장인과 대학생이 된 자녀들에게 누구보다 좋은 조언을 건넬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유쾌한 대화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도 좋은 관계만은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어른인 우리가 먼저 애쓰고 있다. 내가 친정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지금이 좋은 것처럼, 이 아이들과도 언젠가는 가능해지리라 기대한다. 수직이 아닌 수평을 계속 맞춰가는 중이다.
셋째는 부모와의 관계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한 달간 매일 아침 문안전화를 하라는 시아버님의 요청을 그대로 순종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맏며느리의 기강을 잡으려는 아버지의 욕심이었다. 자존심 강한 아버지의 성품으로 인해 우는 일도 많았다. 남편과 불화가 되는 원인은 대부분 시댁의 일이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에 서툴기만 했던 나는, 조금씩 지혜로워지고 성숙해졌다. 사고로 인해 병원생활을 하게 된 시아버지는 우리 부부의 진심을 알게 된 후 많이 변하셨다. 가족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은 세월과 애씀이었다.
불편하던 법적 부모관계는, 서로 예의를 지켜가는 중년과 노년의 부모 자녀 관계가 되었다. 상호 간에 선을 넘지 않고 기대를 낮추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조금 더 수월하다. 나는 시부모님을 대할 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선되고 있다.
시어머님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에 첫 며느리인 나를 맞아주셨다. 어머니의 인생에 내가 걸어갈 길을 투영시키며 ‘여자의 일생’을 이해하게 된다. 뇌경색과 파킨슨으로 인해 얼마 전 요양원 생활을 시작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의 미래도 생각하게 된다. 두 분의 노년을 좀 더 착하고 따뜻하게 보려 한다.
넷째는 친구들과의 관계다.
질투라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중년이 되면 좀 더 마음이 넓어지는 것일까. 남이 가진 것들에 대해 욕심부리지 않고 인정할 수 있는 따뜻한 어른이고 싶다. 중년 이후에는 비교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친절한 남편, 넓은 집, 자동차, 부동산, 자녀의 학교, 자녀의 직장, 그리고 결혼까지도... 비교할 대상과 거리들은 계속 늘어만 간다. 친구의 뜻대로 따라주는 말 잘 듣는, 아이들의 성향까지도 부러워진다. 그래서 그냥 내 것에 만족하기를 애쓰고 있다. 함께 익어가는 친구로, 서로 마음을 열고 들어줄 수 있는 친구로 말이다.
중년이라는 묵직한 단어처럼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에도 신중함과 지혜를 더하고 싶다. 나와 관련된 인간관계들을 더 따뜻하고 멋지게 세워가려 한다. 그들보다는 나를 먼저 착하고 넓은 사람으로 매일 훈련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