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바쁘고 피곤한 남편이다. 책을 좀 읽으라 하면 그럴 시간이 없단다. 10분이라도 알람을 해두고 읽으면 좋겠다 했더니, 그렇게 해서는 집중할 수 없다고 한다. 아쉬움은 남지만 강요할 수는 없었다.
데일리 카네기 시리즈를 읽으면서 남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었다. 인간관계, 자기 관리 그리고 대화법이 그랬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내용들이 좋아서 세 권의 책을 남편 회사 복지 포인트로 주문했다. 그런 통로로 책을 구입하면 간단한 서평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이 책 제목과 내용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아들이 먼저 읽은 <인간관계론> 책을 펼쳐 잠시 읽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는 책을 들고 출근했다. 가끔씩 책의 내용들을 언급하며 자신이 배운 것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책에서 배운 지혜를 실행하며 얻은 성공사례들을 간증처럼 얘기해 주는 것이다.
“나 오늘, 이 책 다 읽었어.”
숙제를 다 끝내서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가방에서 책을 꺼내 흔든다. 그리고는 거실 테이블에 <인간관계론> 책을 올려놓는다.
“다음 책은 <성공대화론>이다. 어디 있지?”
“내방 책장에... 잘 찾아봐요. 꽂혀 있을 거예요.”
책상이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그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빨래하려 세탁실로 향하는데 그가 말을 이어간다.
“어제 윤처장님이 한참을 얘기하더라고... 회식자리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이야기들을 무작위로 꺼내면서 내 눈치를 보더라.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참았어. 비판하지 말라고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나더라고.”
“그렇지, 윤처장님은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좀 보여주지 말이야. 잘했네 입 다물고 잘 기다렸네 하하”
뒷모습으로만 대화를 마무리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다. 아이들에게 라면 이야기를 더 캐내도록 빨랫감을 던지고라도 귀 기울여 줬을 텐데 말이다. 그다음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번에는 책을 읽고 더 자랑할 수 있도록 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줘야겠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책 읽을 공간을 만들었다. 넓은 거실에 작은 테이블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퇴근 후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던 그가, 이제는 식사 후 거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들고 앉는다. 배부르고 피곤하니 눈꺼풀을 치켜세우며 책을 읽는 순간들도 보인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독서하는 그의 모습이 감사하다. 최근에 그가 말했다.
“당신과 친하게 지내려면 나도 책을 읽어야겠어”
“당연하지. 나란히 앉아서 책 읽자. 당신이 좋아하는 등산을 내가 함께 해주고 있잖아. 당신도 나를 위해 노력해. 나이 들어도 같이 누릴 수 있는 취미를 계속 만들자 여보.”
중년이 되어서야 같은 취미를 만드는 중이다. 물론 각자의 삶은 인정하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그가 요청하면 나는 언제든지 등산과 걷기에 동행한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애쓰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함께 걸으면서 속 깊은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그를 더 알 수 있어 좋다. 이제는 그가 아내의 좋아하는 일에 동참해 주려 노력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추천한 데일 카네기 시리즈를 다 읽어가는 그가 내게 도움을 준 일이 생겼다.
몇 차례 선을 보면서 어려움을 겪던 30대 청년이 전화상담을 요청했다. 사람들과 관계가 서툴어 가끔씩 조언을 하며 격려해 주는 친구다. 저녁 시간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약간 긴장되었다. 그저 내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잘 들어주고,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는 것뿐이다.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남편에게 상담 요청한 청년의 상황을 말하며 조언을 구했다. 남편은 요즘 읽고 있는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을 추천해 주었다. 그는 <인간관계론>과 <자기 관리론> 두 권의 책을 통해 회사 생활에 많은 지혜를 얻었다면서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늦은 밤, 청년과 전화 상담을 끝내고 <자기 관리론> 책을 카카오톡으로 선물했다.
'바쁘지만 조금씩 읽어보면서 지혜를 얻고 위로도 얻길 바래. 읽으면서 좋았던 책이에요.'
주소를 묻지 않아도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다. 청년은 감사함으로 선생의 마음을 받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