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다정한 어투로 얘기했지만 내 귀에는 '야'라는 호칭이 거슬렸다. “아들~” 하며 부드럽게 부르다가도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하려면 “야”라고 시작한다. 몇 차례 남편에게 얘기할 때마다 고쳐야겠다말하더니, 습관처럼 입에서 나오나 보다. 그래도 신경 쓰면서 주의하다 보면 변하겠지 싶다.
"아들아!, 이쁜 딸, 공주~" 이렇게 잘도 부르면서 왜 남편의 입에는 '야'라는 호칭이 습관으로 붙었는지 의문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남편은 내게 “여보”라고 연습하며 부르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내 딸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신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따라 'oo 어머니'라 부른다. 밖을 나가면 ‘아줌마, 어머니, 사모님, 애기엄마, 고객님’ 등으로 불리며 내게 주어지는 호칭들이 참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은 내 이름을 그대로 불러 준다. 내가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의 이름을 자주 불러준다.
나와 네 살 차이 나는 동생부부는 신혼시절부터 '내 님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막냇동생 부부가 친정에서 서로를 부르는 “내 님아!”라는 호칭에, 온 가족이 어색함으로 몸을 바르르 떨며 웃음을 터뜨렸다. 15년이 지나도록 서로를 그리 부르는 모습이 이제는 온 가족에게 익숙해져서 자연스럽다. 내심 간지러운 분위기가 부럽울 때도 있다. ‘내 님아!’를 불러놓고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말은 뱉을 수 없을 것 같다. 문장을 시작하기 전, 부드럽고 예쁜 호칭은 오히려 대화가 심각해지거나 다투게 되는 상황을 누그러뜨릴 것만 같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의미 있고 듣기 좋은 호칭으로 불리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이름을 지어 평생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국가 정책으로 개명할 기회를 주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름을 바꿨다. 예쁘고 세련된 이름으로 바꾼 후 오히려 즐겁게 사는 이들이 많다. 이름과 호칭은 나를 대표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주변 엄마들이 비싼 돈을 들여 자녀들의 이름을 바꿔 준 경우가 있었다. 자녀들의 멋진 미래를 위해 이름까지도 바꿔주며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랑이라 생각된다.
나는 음식점에 가서 서빙을 해주시는 분들께 요청할 일들이 있으면, 그냥 ‘사장님’이라 부른다. 언젠가는 사장님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될 수 있으면 듣기 좋은 호칭을 불러주면서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한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그리 힘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캣츠’ 뮤지컬을 관람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고양이들은 제법 길고 멋진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대사 속에 고양이의 이름을 멋지게 지으라는 부분이 나온다. 고양이를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듯한 '나비' 말고, 각각의 멋진 이름들 말이다. 제니애니돗츠(Jennyanydots), 럼 텀 터거(Rum Tum Tugger), 버스토퍼 존스(Bustopher Jones) 등 시인 T.S. 엘리엇은 고양이들의 이름을 멋지게 등장시켰다. 매번 듣기 좋은 이름으로 고양이를 불러 준다면, 그 주인의 위치도 멋져질 것 같다.
핸드폰에 저장한 남편의 호칭을 바꾼 적이 있다. 한참 동안 ‘멋진 00 씨’로 저장해 두었다가 최근에는 ‘내 멋진 반쪽’으로 바꿨다. 동등한 반쪽으로 여기면서도 멋지게 생각하도록 말이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잊고 있던 남편의 호칭을 다시 확인한다. 물론 그렇게 소리 내어 부르지는 않지만, 눈으로 먼저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렇게 인정하려 한다. 나이 들어 갈수록 애써서 노력하는 부분들이다.
"싸울 때 첫 문장, 말의 첫 단어를 어떻게 쓰는가는 굉장히 중요해요” -김지윤 소장
가족 간에 따뜻한 첫 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신경 써야 할 듯싶다. ‘멋진 아들’, ‘사랑하는 엄마’ ‘존경하는 남편’ ‘이쁜 아들’ ‘항상 좋은 딸’ ‘따뜻하신 아버님’ ‘여전히 고운 어머님’ ‘내가 좋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