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카페 계단을 내려오다가 원피스 입은 작은 여자 아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여섯 살쯤 먹은 아이가 무심한 듯 던진 또박또박한 인사는, 일로 조급하던 내 마음에 작은 놀램을 주었다. 아니, 멋진 장면을 만난 것처럼 머릿속으로 자꾸만 재생시켰다. 뒤를 돌아보니 노란 반팔 원피스에 분홍색 머리띠를 한 아이는 야무지게 묶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계단을 부지런히 오른다. 아이를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인사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에게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길게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고맙다고 할 걸, 원피스가 참 예쁘다고 말할걸...
그 아이에게 인사하는 좋은 습관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부모의 교육 덕분 일수도 있겠다. 인사를 나누는 것이 참 따뜻하고도 즐거운 일임을 작은 아이에게 다시 배운다.
요즘은 인사를 나누는 대상의 경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참 애매할 때가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인사를 나누는 것도 가끔은 어색하다. 그래도 노인들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하는 편이다. 젊은이들과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은 싫어할까 싶어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도 좋은 표정과 따뜻한 눈빛은 유지해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부담가지 않는 무심한 인사도 건네고 말이다.
물건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받을 때, 간단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 노력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교육을 받은 부분도 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중요성을 더욱 느끼고 배운다.
대학생이던 딸아이가 방학 동안 관광지 해변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다. 매번 부모의 섬김만 받던 아이가 다양한 사람들을 응대하다 보니 별별 일들을 보고 느낀 것들이 많더란다. 편의점 조끼를 입고서 계산대에 서 있으니 마주하는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인격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점잖게 인사하며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아 얘기해 주었다. 담배를 주문하면서 말없이 돈을 테이블에 던지는 사람, 호칭도 없이 반말을 지껄이는 사람, 눈빛으로 무시하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 그리고 아이들이 진열대 사이를 뛰어다녀도 가만 두는 부모 등이 그랬다. 딸아이는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그런 행동들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서비스를 받을 경우, 어른들이 예의 있는 어투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딸아이는 말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어른들의 작은 한마디가 종일 기분을 좌우하기도 했더란다. 그 이후로 딸은, 식당 직원에게 까다롭게 요구하는 아빠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날리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어질러진 테이블을 가볍게 정리하면서 잔소리도 더했다.
아이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 중이다. 다양한 경험으로 여러 사람들의 처지를 조금씩 알게 된 딸은 더 따듯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으로 노동을 하던 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청년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가볍게 예의를 잘 갖춘다. 어른들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우는 이들이 없으면 좋겠다.
어젯밤 남편과 자가용으로 동네로 들어오는 사거리에서 음주단속 중인 경찰들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음주단속기에 입김을 세게 부는 남편의 옆에 앉았던 나는, 담당 경찰에게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만 있었을 뿐 입 밖으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항상 머뭇거리다가 인사 나눌 순간을 놓친다. 경찰도 본인의 의무대로 행동을 마무리했고, 우리도 그의 요구에 응한 뒤 유리창을 올리고 속도를 올렸다. 간단하고도 형식적인 인사말이라도 주고받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들의 따뜻함과 고생스러움은,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아들에게 2년 동안 전달받았다. 아들은 이미 전역했지만, 그러한 인연 때문에 유니폼을 차려입은 경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
경찰서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친 사람들이다. 그들을 응대하면서 경찰관들도 몸과 마음을 다치고, 곤란해지기도 하단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횡포로 경찰관들이 부상을 입기도 하고, 우울증과 정신착란증을 가진 이가 경찰서에 들이닥쳐 사업소가 엉망으로 되는 일도 있다고 했다. 극한 분노를 표출할곳이 없어, 파출소에 와서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보았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꿋꿋하게 봉사일을 하며 국민을 지켜주는 이들이 경찰이다. 그들도 우리네 남편이나 아들 딸과 똑같이 여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미움을 받으면 서럽고, 고마움을 얻으면 행복한 그런 사람들 말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아들을 잘 챙겨준 경찰관들을 기억하면서 잊지 말고 인사하리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요리사와 그의 가족들의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 주었다고 한다. 언제나 먼저 인사말을 건네고, 사소한 일들까지도 묻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래서 그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무척 행복했다고 말이다. 좋은 어른들의 본을 보여주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길을 함께 걷고 싶어 지도록.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어른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많은 위로와 격려를 입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거친 행동과 어투 그리고 눈빛으로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무심한 인사말이어도 건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어른이고 싶다. 작은 아이가 어른인 내게 먼저 전달해 준 그 교훈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