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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에 장화 신은 농부 1

초보 농사꾼 이야기

by Jina가다

농부의 아들인 남편은 텃밭 분양을 반대했다.


“난 얼굴 태우기 싫은데... 당신은 힘들어서 못할 거야. ”


이틀간 생각이 많다. 텃밭 농사를 시작했을 때 득과 실을 계산해 보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한다면 크게 잃을 것은 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일 각오만 하면 된다. 많은 이웃들이 함께 농사를 짓게 되니 비교는 되겠지만 말이다.


20년 전, 유치원에 다니는 세 아이들을 위해 집 앞 작은 텃밭을 가꾸었다. 농사를 모른 채 화초를 가꾸듯 했던 일이다. 그래도 1년 동안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과 사진을 많이 남겼다. 씨앗을 싹 틔우고 물 주고 돌보다가, 여러 날 동안은 바구니 가득 야채를 수확했다. 그 설렘이 기억났다. 그저 작은 기쁨과 글 쓸 영감을 얻을 궁리로 남편에게 결심을 얘기했다.


“난 무조건 할 거야. 너무 잘할 생각 아니어도 괜찮겠지?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하지 뭐.”

“텃밭이 몇 개 남는다는데 그럼 더 할 생각도 있어?”

“너비를 보니 크지는 않더구먼, 한 구좌에 두 고랑씩이니 한 개 더!”


잠시 농사할 땅인데도 넓게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고생은 생각지도 않고 땅을 더 확장했다. 그렇게 텃밭 번호 40, 41번 주인이 되었다.




4월 말 텃밭을 개장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든든히 아침을 먹고 밭으로 향했다. 편한 복장으로 모자를 눌러쓰고 선크림을 신경 써서 발랐다. 밭으로 모여든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1년간 가끔씩 마주칠 사람들이다. 흙 위에 발을 디디며 고생의 시간들을 보내겠다는 사람들이니 분명 부지런하고 좋은 분들일 게다.


텃밭 운영진은 제법 키우기 쉽다는 모종을 스물다섯 개씩 나눠주었다. 고추는 두 종류로 세 개씩 , 상추도 두 종류로 세 개씩, 오이, 가지, 토마토 그리고 방울토마토. 가녀리고 작은 모종은 검정 플라스틱 큐브 안에 한 개씩 뿌리를 박고 앉아있었다.


하얗고 두툼한 새 목장갑을 끼고서 호미를 잡았다. 인터넷에서 텃밭 정보라도 찾아보고 왔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들었다. 농사를 지어보겠다면서 다 큰 어른이 준비도 없이 어색한 표정과 서툰 손길이라니... 아무런 기초 지식 없이 밭에 나온 내 모습이 뻘쭘하고 민망했다. 유튜브로 공부했거나 경험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모종을 심고 밭을 손보고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온 젊은 부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 그리고 제법 능숙해 보이는 농부 옷차림의 사람들. 흙밭에서 신을 장화와 챙이 넓은 모자 그리고 편한 복장들을 눈여겨봐 두었다.


모르면 누구든 선생을 삼아 물어야지 어쩌겠나. 텃밭 행사를 진행하는 이에게 손을 들어 도움을 구했다. 모종을 심는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의 말대로, 밭을 덮은 검정 비닐에 구멍을 내어 물을 충분히 적셨다. 농작물을 키워낸다는 것이 그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눈이 아닌 손으로 흙을 만진 그 순간부터였다.


작고 여린 고추모종의 허리를 조심히 잡고서 파놓은 작은 구덩이에 넣었다. 줄기를 곧게 자리를 잡게 하고서 흙으로 뿌리를 덮었다. 공기가 통하도록 흙을 꾹 눌러 심으면 안 된다는 그녀의 말에 서툰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첫아기가 태어났을 때 어색한 두 손으로 생명을 안으면서 조심하던 그 손길이 생각났다. 연약한 아기의 몸과 손발을 큼지막한 두 손으로 세세히 다루느라 온몸에 긴장하던 그 순간.


나중 키가 커서 그늘을 만들 식물들과 키가 작은 쌈채소들을 따로 구분해서 구역을 만들었다. 키 큰 식물들의 그늘에 작은 녀석들이 가려지지 않게 말이다. 쌈 채소들은 햇빛과 물을 공급받기만 하면 잘 자란단다. 손가락만 한 상추모종이 나무처럼 계속 잎을 낸다니 기대된다. 토마토와 고추, 가지는 오른쪽에, 덩굴로 타고 갈 오이는 중간 그리고 상추는 왼쪽에 자리를 잡게 했다. 나중 일을 미리 예상하면서 자리배치를 해놓아야 농사하는 도중 곤란해지는 일이 없겠다.




작은 모종을 하나씩 신경 써서 심고 나니 허리가 뻐근해졌다. 모종끼리 간격은 적당한지, 뿌리의 깊이는 알맞은지 자꾸만 살펴보았다. 나눠준 작물들을 다 심고서, 다시 한번 조리로 물을 뿌리며 마음 가득 담아 응원했다.


"흙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잘 자라길... 제발 잘 커주렴"



농사꾼의 아들은 연필 잡고 공부만 해서 농사를 모른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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