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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Jun 19. 2023

경주 왕릉을 거닐며

짧은 인생, 오늘도 안녕하게

'움직이는 액자인걸?'

카페 창 옆으로 봉긋한 대형 무덤이 보인다. 기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무덤이 보이도록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젊은이들은 신라시대 복장을 대여해 차려입고 멋진 포즈를 취한다. 길이가 긴 상의와 치마를 입고 허리를 묶은 복장을 비슷하게 입은 친구들이 나란히 걷는다. 절반 머리를 묶어 예쁜 모습으로 걷는 것을 보니 신라시대 공주들의 의상인가 보다. 남녀 커플로 손을 잡고 다니는 전통의상의 모습은 눈에 띄게 예쁘다. 무덤들 사이를 다정하게 걷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마시던 커피를 마저 비우고 대릉원 돌담길 사이에 새로 난 입구로 향한다.




최근 무료로 개방하게 된 경주 황남동 대릉원에는 미추왕의 무덤과 신라시대 왕과 왕비 귀족들의 무덤이 함께 모여 있다. 평지에 자리 잡은 23기의 고분들은 유적지인 대릉원의 미추왕릉을 포함해 근처 7개 장소에 군데군데 모여 위치하고 있다. 이를 대릉원 지구라 부르는데, 흔히 관광하는 첨성대 근처 동부사적지에 솟아오른 능과 다섯 개의 오릉도 포함한다.


왕들의 무덤은 언덕처럼 높고 넓다. 인생을 마감한 한 사람을 눕히기에는 거대한 규모다. 경주에 지난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적 고분 위에 올라가 눈썰매를 타기도 했단다. 2017년, 동부사적지에서 왕릉 벌초를 진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무덤 위 무성하게 자라난 잔디를 깎아내는 일을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로 정해 관광객을 위한 행사로 열었다. 당시 가위와 모자를 선물 받고 잠시 무덤 잔디 깎는 일에 함께 했다. 벌초 담당자들은 무덤 위를 오가며 길어 난 잔디를 한참 걸려서 깨끗하게 정돈했다.


신라시대 거대한 왕릉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역사 속 왕과 귀족들의 위엄을 알리는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왕의 백성이 되어 무덤의 주인을 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상당히 흥미 있는 이벤트였다. 신라시대 역사를 글로만 읽는 것보다 직접 참여해 본 아이들은 신라왕의 무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작게라도 겪어보는 것이 오랜 기억으로 남는다.


대릉원에서는 무덤을 개방한 천마총이 있다. 역사학자들은 지증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마총 입구로 들어서면 내부와 전시된 무덤을 살펴볼 수 있다. 천마총에서 발견된 말다래 뒷면에서 하늘을 나는 순백의 말 그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말다래는 말 탄 사람의 발에 흙이 묻지 않도록 말안장 양쪽에 매달아 놓은 기구다.  전시해 놓은 돌무지덧널무덤 안에는 발굴된 여러 보물들이 유리벽 안에 놓여있다. 머리맡에는 화려한 금관을 두었고, 허리에는 장식이 화려한 허리띠를, 발에는 거대한 금장식 장화가 놓였다. 당시 해외무역을 증거 해 주는 유리잔과 유리목걸이도 있다. 저 세상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솥단지와 그릇들을 무덤에 넣었다. 사후의 세계에서도 왕과 귀족으로 살도록 많은 보물들이 함께 매장된 내부를 살핀다.


세상을 떠나며 아무것도 손에 쥐고 갈 수 없었던 왕의 무덤을 뒤로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로 나왔다. 중국 진시황의 거대한 무덤과 이집트에서 보았던 피라미드가 생각났다. 수많은 보물을 안고 간 왕들보다 현재 더위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내가 더 나은 인생이라 생각되었다. 진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산들거리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날린다. 두 발로 걸으며 양산을 쥔 손은 햇빛을 가리면서 그늘을 조절한다. 양산을 젖혀 유난히 푸르른 6월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걸려 있는 새파란 하늘과 초록 소나무들, 떼가 입혀진 무덤들은 그렇게 멋지게 어울릴 수가 없다. 한 장면에 담아 사진으로 찍으면 어디서도 작품이 된다. 가는 잎사귀 잔디와 하얀 야생화들이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린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이곳 대릉원 초록 무덤은 평화롭기만 하다.


100년이 안 되는 인생을 살면서 남는 것은 무덤 하나다. 지금은 수목장이나 화장으로 인해 사람들은 남겨진 흔적이라고는 이름 하나이기도 하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갈 것을 알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싶다. 짧은 인생 오늘도 안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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