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특히 가지 나무와 새로 심은 오이가 그랬다. 열매를 많이 따낸 가지 나무는, 끝물이라 작고 비틀어진 열매만 맺고 있다. 오이는 여름과 달리 열매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거라 한다. 물론 경험 많은 이웃들의 말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잘못된 판단인가 싶어 종일 속 상했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초보의 마음이다. 작은 것에 연연한다.
결국 새로운 모종 심을 공간 확보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뽑았다.
노랗게 꽃을 피운 오이 모종 네 그루, 보라색 꽃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매달고 있는 가지 나무 두 그루, 아직 초록 빨강 열매가 남은 열 개의 고추나무, 넓은 공간에 일렬로 어깨를 펼친 방울토마토 나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토마토 나무 그리고 아직까지 부지런히 여기저기 손을 뻗고 있는 호박 덩굴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 접고, 멀리 추수 때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두 손 가득 붙들고 있으면, 더 큰 수확과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올해 내게 주어진 땅은 여섯 이랑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이다. 각각 상황에 따라 주어진 환경과 역량을 따라 계산하고 사용해야 한다. 농사를 짓는 것처럼 추수 때를 위해 조절하고, 절제하고,때로는 과감히 잘라내기도 한다. 내게는 벌여 놓은 여러 가지 일과 취미가 그렇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배움과 성과가 미미한 시도들은 이제 멈춰야겠다.
남편은 삽을 들어 땅을 뒤집었다. 나는 갈퀴를 들어 돌을 고르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고구마와 땅콩이 자라는 곳을 뺀 세 개 이랑에는, 봄날 마주했던 텃밭 처음 모양대로 돌려놓았다.
뒤집어 갈아엎으면서, 뽑아낸 식물들을 포기하니 한편으로 속이 시원하다.
땅속에 있던 굼벵이도 보이고, 놀래서 도망가는 집게벌레도 눈에 띈다. 부드러운 토양을 만들기 위해, 아래에 있던 흙을 위로 올린다. 마음 판을 만드는 일도 똑같다. 때로는 뒤집고 갈아엎어 새 마음을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일수도... 풀 한 포기 없이 흙만 남아, 그 어떤 것도 심을 수 있는 땅이 되었다. 배추를 심으면 배추밭이 되고 무를 심으면 무밭이 되겠다.
네 가지 모종과 한 가지 씨앗을 어떻게 나누어 심을지 구상했다. 다 자라났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차지하는 공간을 고려해 배치해 본다. 배추, 양배추, 비트, 케일 그리고 무가 풍성하게 뒤덮을 가을 텃밭을 기대한다.
검정 비닐을 펼쳐 잘 고른 땅을 덮었다. 잠시 밭은 휴식기를 갖은 후 다시 키우는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잠시 쉬는 일은 땅에게도 필요하단다. 새로 시작하는 가을 농사에 절반은 땅의 몫이다. 뿌리를 잘 붙잡아주고 영양분을 제공할 흙이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마음밭에 좋은 책과 글귀들로 다독여본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2
찬바람과 함께 9월 아침을 시작하며, 갈아엎지 못한 계획과 감정을 정리한다. 가을 마음 농사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