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3
“가급적이면 차 타지 말고, 집 근처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남편은 내가 길을 잃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그래도 오늘은 혼자 택시를 타보기로 했다. 우버 앱을 이용해서 박물관에 다녀오는 것이 오늘의 작은 도전.
어제는 남편이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베이글 맛집’과 '중국 식자재 마트'를 찾아 걸었다. 구글 지도를 따라 도보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시도. 선글라스를 끼고 뜨거운 태양 아래 핸드폰을 들어 목적지를 따라갔다. 작은 화면 속 검은 줄이 줄어드는 것을 자꾸 확인하면서. 빵집에서 베이글 두 개를 종이봉투에 담아 들고, 식자재 마트에선 부추 한 단을 샀다. 스스로 길을 찾고 필요한 것을 사는 데 성공.
아이들 어릴 적 돈을 쥐어주고 심부름시키고 뒤따라가던 일이 기억나 피식 웃음이 났다.
그저께는 노트북을 들고 근처 카페에 나가 혼자 앉아 과제를 마무리했다. 집 밖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보는 실험도 성공적이었다. 이왕이면, 하루에 한 가지씩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한다.
우버 앱 설치는 했지만 카드 입력은 반복해 실패다. 현금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 기대를 걸었다. 따로 모아둔 현금 봉투에서 200 파운드 지폐 네 장을 챙겼다. 목적지는 '이집트 문명 박물관'.
차량을 호출하고, 집 앞 대기 장소로 나갔다. 곧 도착 예정이라는 알림이 떴다.
도로 맞은편에 낡은 차량 한 대가 보인다. 번호판을 다시 확인하니 아랍어 숫자로 쓰인 ‘٤١٧٢’ (4172) 맞다.
뒷좌석에 올랐다. 폰으로 실시간 운행 정보를 확인하며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가슴은 두근두근, 손발은 와들와들. 이 모든 과정이 혼자서는 처음이다.
차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향했다. 에어컨이 꺼진 탓에 창문은 활짝 열려 있다. 기사에게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랍어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작동이 안 되는 듯하다. 강한 햇빛에 얼굴과 팔이 익어간다.
‘집 밖으로 나와 굳이 왜 이런 고생을 시작했을까…’
창밖으로는 황토색 외벽의 아파트, 펄럭이는 빨래, 사람들로 꽉 찬 봉고차, 트럭 짐칸에 타고 있는 어린아이들. 모든 것이 낯설고도 생생하다.
겁먹지 않은 척, 익숙한 듯 행동했다. 다행히 선글라스가 내 눈을 가려줬다.
21분 후, 박물관 입구 도착. 앱에는 ‘목적지 도착’이라 떴지만 차량은 정문을 한참 지나 주차장까지 들어갔다.
폰 화면에 표시된 요금 80 파운드를 건넸다.
“쇼크란!” (고마워요!)
이글이글 타는 햇빛 아래, 정문까지 200미터를 걸어가야 했지만 속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혼자서 해냈다는 그 사실이 더위를 잊게 한다. 돌아갈 때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