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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왕들의 미라를 만나다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4

by Jina가다

이집트 문명 박물관(NMEC)은 미라를 보러 가는 곳이란다. 이곳의 주된 전시관은 ‘왕들의 미라 전시관’(Royal Mummies Hall). 람세스 2세, 하트셉수트, 아멘호텝 1세 등 실제 왕들의 미라 스물두 구를 보존해 전시하는 중이다.


2년 전 들렀던 이집트 박물관에서는 미라를 넣었던 다양한 관만 볼 수 있었다. 15년 전 영국 박물관 이집트 전시에서도 동물과 평민의 미라를 살폈던 일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이번에는 역사에 등장하는 진짜 왕들의 미라다.


1층에서 의식주 관련된 이집트 고대 문명 전시를 둘러보고 지하로 이어진 통로를 걸었다. 왕들의 미라 전시관에서는 사진촬영을 제한된다. 어둡게 이어진 입구를 지나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3천 년 전 이집트 왕들을 만나러 가다니.


스물두 구의 미라 각각 기다란 투명 리관에 누워있었다. 아이보리 아마 천으로 몸을 가리고, 온도계를 장착한 채 작은 방마다 한두 구씩. 바닥에 그려진 하얀 화살표 방향을 따라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라 뒤로 벽에 붙은 넓은 패널에는 영어와 아랍어로 유물 소개가 빽빽하다. 주인공인 왕의 이름과 통치 기간 그리고 공적을 잠시 폈다.

3천 년 넘는 시간 동안 미라를 완전하게 보존 처리해 지금까지 남길 수 있었던 이집트인들. 그들의 과학적 사고와 기술에 계속 놀라는 중이었다.


유리관에 누워있는 150에서 160센티 신장에 새까만 인간의 형상. 두개골부터 발가락까지 뼈마디와 얇은 가죽만 보였다. 돌출된 치아와 얇은 입술, 쫙 펼쳐놓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잘 보존된 모습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몸을 움츠려 멀찍이 미라를 보던 처음과는 달리 일곱 번째 유리관 즈음에서는 애처로운 생각조차 올라왔다. 출국 전 요양원에 가서 만나고 온 시어머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릎담요를 덮어드리며 보았던 관절이 돌출된 손가락과 무릎, 식사하며 보았던 바짝 마른 입술과 치아.


‘대왕’이라 불렸던 건축 왕 람세스 2세를 미라로 만났다. 기원전 1279년에 출생해 1213년까지 존재했던 삼천이백 년 된 그의 모습. 긴 얼굴과 높은 코 그리고 주름 있는 노인의 얼굴이었다. 가슴 위에 손을 교차한 왕의 자세를 살피다가 잘 보존된 손톱까지 발견했다. 그가 바로 모세 당시의 파라오였을까?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 여왕의 미라도 보였다. 18 왕조였던 그녀는 남성 복장과 수염 모형을 착용한 이집트의 여사자였다. 당뇨와 골다공증을 앓았다는 그녀는 이빨이 빠져 있다.


왕과 왕비로 살았던 인생이어도 그 끝은 누구나 죽음으로 동일하다. 일반 백성들은 흙으로 흩어져 사라졌지만 이들은 마른 뼈만 남긴 채 수천 년을 버텨왔다. 삼천 년 전을 눈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


경주에 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운전하면서 지나치던 선덕여왕의 무덤, 부리부리한 눈의 서역인 상이 입구 좌우를 지키는 괘릉, 대릉원의 거대한 무덤들. 모두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그들이 사는 동안 왕과 왕비로 호사를 누렸지만 그 끝은 작은 관 하나. 무덤을 보고 지나치면서 인생의 허망함을 기억했다.

사후 세계를 중요하게 여겼던 이집트인들. 경주에서 보았던 무덤 속 인형이나 순장 등 비슷한 문화의 흔적을 발견해 내고는 동질감에 반가웠다.


고대를 빠져나와 현대로 터벅터벅 오는 길. 박물관 출구를 향해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 옆에서 부른다.

"안녕하세요."

십 대 여학생이 부끄러워하며 사탕 한 개를 건넸다.

복숭아가 그려진 피치색 작은 비닐.

맑고 붉은 미소는 환대로 여겨졌다. 이방인 나를 환영하는 이집트인의 따뜻한 인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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